아픈역사에서 배운다/티베트

佛心 가득한 신비의 땅

화이트보스 2008. 10. 5. 19:01

佛心 가득한 신비의 땅

 

 

 

 

 

티베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오색의 룽다. 

“더 늦어지면 안 돼. 좀더 지나면 티베트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할지도 몰라.”


재작년 가을, 시리아를 함께 여행하던 독일 친구 페터는 나에게 하루라도 빨리 티베트에 가보라고 권했다. 중국 한족 때문에 티베트의 순수함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세상에서 가장 맑은 영혼들을 만날 수 있다는 티베트. 강요에 가까운 친구의 조언을 따른 것은 그로부터 1년이 훨씬 지난 뒤였다. 오랜 망설임과 달리 결정은 갑작스러웠고, 아무런 준비 없이 그야말로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티베트의 중심 라싸로 향했다.


금단의 땅 티베트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공가공항에 내리자 살을 파고드는 햇살이 가장 먼저 나를 맞이했다. 손을 뻗으면 금세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구름과 파란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 누구 하나 이곳이 티베트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티베트 땅에 서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라싸에 도착한 첫날, 다이어리의 ‘오늘의 할 일’란에 ‘물 많이 마시기’와 ‘숨쉬기에 충실하기’라고 썼다. 라싸의 해발은 3500m.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예전에 킬리만자로와 쿠스코에서 겪었던 악몽으로 인해 고산병의 위력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탓이다. 가슴속까지 시원해질 것 같은 라싸 맥주도,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줄 샤워도, 내가 좋아하는 빨리 걷기도 이곳에서는 모두 금지였다. 이렇게 높은 지대에서는 그저 느릿느릿 걷는 거북걸음과 물고기처럼 끊임없이 물을 마시는 것이 최고다.


숨쉬기가 편해진 이틀째. 아침 일찍 티베탄(티베트 사람들)들이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여기는 조캉 사원으로 향했다. 눈을 못 뜰 정도의 햇살은 사라지고 어스름한 안개와 향 냄새만이 나를 사로잡았다. 희미한 시야 사이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음성들. 조캉 사원 입구는 이미 “옴마니밧메훔(연꽃 속의 보석이여, 영원하소서)”이라고 읊조리며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머리와 양 팔꿈치, 양 무릎 등 다섯 부분이 땅에 닿도록 납작 엎드리는 티베트 사람들. 그들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적립식 펀드와 부동산 이야기에 열을 올렸던 나를 일순간 멍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끊임없이 엎드리는 것일까. 티베트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줄 부처가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신실함 때문에라도 부처는 꼭 존재해야 할 것만 같았다.


새벽녘 조캉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순례길 바코르를 돌았다. 티베트 사람들의 평생 소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체투지로 조캉 사원까지 오는 것. 그들은 길거리에서 받은 보시들을 모아 여비를 해결한다. 다리가 없어 목발을 짚고 있던 허름한 차림의 행인이 바코르를 돌던 할아버지 순례자에게 다가가 얼마 안 되는 돈을 두 손에 쥐어주는 모습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티베트 어디에서나 불심으로 가득 찬 기운을 느낄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세라 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생생함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라싸에서 5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세라 사원은 1419년에 세워진 티베트 불교 발전의 구심점이다. 세라 사원이 유명한 이유는 오후 3시 토론의 정원에서 벌어지는 학승들의 열띤 토론 때문이다.


 

세라 사원에서 토론하는 학승들(왼쪽), 티베탄들의 성지, 남초 호수. 


수백 년 된 사원과 세속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


토론 모습을 엿보기 위해 찾아간 세라 사원. 토론의 정원이 어디인지 몰라 헤매고 있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 학승들이 빨간 방석을 하나씩 들고 총총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따라간 그곳은 역시나 토론의 정원이었다. 수백 명의 학승들이 서로 짝을 이뤄 손뼉을 쳐가며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토론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갔다면, 싸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들의 목소리와 몸짓은 과격했다.


서로 토론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진리라고 믿는 티베트 불교. 그 수업 방식의 독특함과 힘찬 에너지에 또 한 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라싸에서 190km 떨어진 남초 호수. 남초는 사원이 아니면서도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볼리비아의 티티카카 호수(해발 3810m)보다 900m 정도 더 높은 남초 호수(해발 4718m)는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인해 호수 주변이 시끄럽긴 했지만, 남초 호수의 은근한 신령스러움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간체에서 돌아오는 길에 티베트의 평범한 가정집을 구경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살림이었다. 벽에는 겨울에 쓸 야크 똥이 빼곡히 붙어 있었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는 태양열로 물을 끓이는 장치가 마련돼 있었다.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지, 티베트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 자체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티베트에서의 마지막 아침. 건조한 티베트 땅에 촉촉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최소한의 물질을 가지고 풍요로운 영혼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티베트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 나도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드릴 때가 되었나보다. 옴마니밧메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