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43)=구례 용호정

화이트보스 2009. 1. 14. 11:15


망국의 설움 시문으로 달래서 해방 염원

-용호(龍湖)는 거울같이 밝은데/ 그 위에 정자 우뚝 서 있구려/ 복숭화꽃 따뜻한 날씨에 고기떼 뛰고/ 대나무 푸른 숲에 두견새 우는 구나/ 석가모니 문앞에는 구름이 적적하고/

저 한진(漢陳:중국 지명)땅 침침하니 비 오려나봐/ 방장산 속에 노니는 신선 있으니/ 이따끔 구절(九節)지팡이 멀출거야. <石泉 정옥현 읊음>



구례군 토지면 용두리 용두마을 산기슭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봄빛이 완연했다.

청솔모를 따라 솔 숲 우거진 오솔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산개나리며 진달래꽃… 온갖 산꽃들의 그윽한 향내음에 취한 정자 한 채가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 줄기를 내려다 보며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용호정(龍湖亭), 호수에서 용(龍)이 올랐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듯 이 곳의 분위기는 솔바람과 자연의 풍광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이 정자는 1916년에 건립됐다. 다른 정자에 비해 다소 건립 연대는 늦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용호정은 구례군의 72가(家) 인사들이 갹출, 헐리게 된 고각루(鼓角樓)를 사들여 시회소(詩會所)로 사용키 위해 현 위치에 옮겨져 건립한 것이다.

건립 당시 정계(亭契)가 조직돼 지금까지 시회(詩會)를 개최하고 정자를 관리해 오고 있으나 현대화 물결에 밀려 요즘은 그리 활발치 못한 형편이다.

이 정자는 일제 침략기때 구례지역 유지들이 모여 망국의 울분을 달래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시문을 지어 슬픔에 잠겨있는 우리 민족을 위로했다.

그래서인지 용호정에 관련된 많은 시문들이 전해지고 있다.

-바위 언덕에 터를 닦아 이 한 정자 일으켰으니/ 위태롭다 백척(百尺) 위에서 물가에 허리 구부렸어/ 섬진강에서 돌아온 돛대 가물가물 보이는데/ 오산(鰲山)에서 쇠북소리 역력히 들려오네/ 우제단(雩祭壇) 빈터에 가시덤불 푸르고/ 사도촌(沙圖村) 입구엔 연기빛 푸르누나/ 유명한 이 지역 내 토지(土地) 아닌것을 깨달았어/ 서쪽바람에 홀로서서 눈물만 흘렸다오. <芝村 권봉수 읊음>

이 시는 이곳 토지면 출신 선비인 지촌 권봉수가 1920년 께 쓴 ‘용호정’이란 시로, 구절마다 망국의 한(恨)과 민족애가 한껏 묻어나고 있어 읽는들의 코 끝을 찡하게 자극하고 있다.

이 시 옆으로 또 한편의 시(詩)가 순례자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그것은 1920년(경신년) 8월에 쓰여진 유당(酉堂) 윤종균의 글이다.

-최류(崔柳)의 정영에 밝은 달 있고/ 운대(雲臺)의 명승지에 큰 강물 흘러와/ 혼란스런 반세기에 변한 기후 남아있고/ 천년 역사 회상하여 한 잔 술 다시 마셔/ 인간의 일 일랑 봄 풀빛 같지않아/ 해마다 산기슭에 옛 난초 솟아나네.-

이 시를 읽어 내려가는 순례자의 마음은 자뭇 무거웠다. 일제 강점기에서도 우리민족의 얼과 정신이 깃들어 있는 우리말을 갈무리 하며, 소리없이 흐느꼈을 선비들의 모습이 환영처럼 번져나갔다. 당시 상기된 선비들의 얼굴처럼 석양은 그렇게 섬진강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글


김선기 기자 kimsg@kjtimes.co.kr


▲사진(1)=용호정은 구례지역 72명의 유지들이 갹출, 일제 강점기때인 1916년에 건립된 정자로써 민족의 아품이 짙게 배어있다.

▲사진(2)=이름모를 산꽃들을 헤집고 솔 숲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용호정이 나온다. 이 정자는 1920년대 시인묵객들이 망국의 한(恨)을 달랬던 시문(詩文)의 산실로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