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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 꼬불 논둑길 걸어 가며는/ 고개 밑에 조그막한 토막집 하나/ 낮이면 나무하고 아기도 보고/ 저녁이면 공부하는 우리 야학소/ 저녁마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부지런히 공부하고 씩씩하여라/ 글 모르면 어리석고 어두웁단다. <강진군 대구면 수동리에 구전되는 ‘야학소 노래’>
▲사진(1)=400여년의 역사를 거스르면서 강진 정신문화의 요람이 됐던 강회정(講會亭). 이 정자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도 그 형태를 달리하면서 민족의식 고취의 산실로 자리매김해왔다.
▲사진(2)= 이 지역 선비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이택정. 선비들은 이 정자에 모여 시문을 읊고 촛불처럼 흔들리는 나라의 앞날에 대해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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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강회정
황량한 겨울 들판엔 진눈깨비가 간간히 뿌렸다. 논둑길을 가로질러 얼마나 걸었을까. 꽃뱀의 허물처럼 나뒹구는 논둑길을 따라 주막집 촌로(村老)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강진의 강회정(講會亭). 정자 주변으로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가 겨울바람에 부딪혀 울고 있다. 마치 배 고파 칭얼대는 동생을 등에 업은 열 예닐곱 앳띤 처녀의 한 맺힌 콧노래처럼….
강진군 대구면 수동리에 자리한 강회정, 이 정자의 역사는 15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이 마을에 터를 잡은 해남 윤씨(海南尹氏) 윤시성(尹時聖)이 이곳에 초당을 세운 것이 강회정의 모체이다. 그후 이곳은 유향소(留鄕所)로써 지방 사법행정기관으로 활용되어 오다가 1600년 대에는 대동계원 자녀와 대구면 인근지역의 인재들을 불러 모아 교육을 담당했던 강학소로, 동학농민운동 때는 동학군의 집강소로, 일제 치하에서는 야학운동의 거점지로 활용되는 등 언제나 역사의 복판에서 민족의식 고취의 산실로 자리했다.
강회정이 서 있는 이 마을은 해남윤씨의 집성촌으로, 400여 년의 세월을 보듬어 온 역사 만큼이나 이 마을엔 크고 작은 역사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
특히 1672년부터 강회정을 중심으로 해남윤씨(海南尹氏) 수곡공(壽谷公) 후손들이 13대째 이어온 문중 규약과 명안 계전(名案 癸田), 대동내계안(大洞內契案, 1677년) 등의 계(契)와 향약(鄕約) 관련 수많은 고문서들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강회정과 관련된 인물 가운데는 단연 해남윤씨 일가(一家)가 많다. 그 가운데 동학농민운동 당시 강진 접장을 지냈던 절암(節庵) 윤세현(尹世縣·1859~1934) 선생의 활동이 눈에 띈다.
이곳 수동리에서 태어난 절암(節庵)은 육도(六道)라는 별칭도 있는데, 이는 6개 도(道)를 다니면서 천도교 홍보활동을 했다하여 붙여진 또 다른 호(號)이다.
절암은 포덕 33년(임진년 1892)1월 7일 천도교에 입도(入道), 이듬해인 2월 충청도 보은으로 건너가 해월신사(海月神師)를 만나 동학사상에 깊게 뿌리 내렸다.
그후 절암 선생은 갑오년(1894) 4월 수 십여명의 동학군을 모아 고부에서 참전했으며 그해 7월 고향으로 내려와 다시 동학군 수 만명을 규합해 11월 장흥 이인환과 합세, 보성·장흥·강진을 함락하는 공을 세웠다.
3·1운동 당시 절암 선생은 ‘민족대표 33인’참여할 뜻을 확고히 표명했으나 천도교 지도부는 ‘교세를 지키기 위해 절암은 남아야 한다’고 만류, 끝내 민족대표 대열에 참여치 못하고 나라잃은 울분을 삭여야 했다.
훗날 손병희 선생은 후임 교주인 박인호 선생에게 유지를 내려 절암에게 은메달과 동메달을 상으로 내려 그의 불타는 민족혼을 격려했다.
이와함께 강회정을 중심으로 벌어진 역사적인 사건에 연루된 인물로는, 절암 선생 이외에도 1927년 광주학생운동 사건과 연계해 강진군 대구보통학교 학생사건을 주동한 윤가현을 비롯 1934년 전남농민회 사건으로 윤가현, 윤이현, 윤소현, 윤경득, 윤재웅 등이 1년 동안 옥고를 치렀고, 1950년 보도연맹 사건에 20여 명이 연루돼 목숨을 잃었으며 6·25때는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될 정도로 피해가 막대했다.
겨울이라서 더욱 쓸쓸함만 감도는 강회정, 정자 끄트머리엔 어디서 날아왔는지 까치 한 마리가 소리낮춰 우짖고 있었다. 마치 한 많았던 마을의 역사를 길손에게 말해주기라도 하듯…. 그림·사진/ 서양화가 박주하
글
김선기 기자 kimsg@k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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