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77)=영광 탁염정

화이트보스 2009. 1. 16. 16:55

 

 

 

▲영광 탁염정

“무릇 사람이 태어날 때 반드시 태(胎)를 씻는 것은 수명을 받고 처음으로 잠을 자기 때문이요, 죽을 때 시신을 목욕하는 것은 천명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삼가하기 위함이라.” <정종초 선생의 자서 中>



◀사진=이슬처럼 살다간 조선의 선비 정종초. 정 옹은 초야에 묻혀 ‘탁염정(濯染亭)’이란 초막을 짖고, 나라를 욕되게 한 조상의 죄를 씻으며 지역 인재양성에 힘썼다.

 

 

 

 

 

4월의 문턱을 넘었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황사(?)로 술렁이고 있다. 정치판이 그러하고, 우리네 인간살이가 또 그러하다. 세상사람들은 온통 정신을 잃고 부초처럼 떠돌고 있는 듯하다. 마치 황사처럼 말이다. 이럴 때 문득, 회초리를 든 근엄한 목소리를 소유한 어른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지금으로 부터 400여년 전, 영광출신의 한 선비가 나라를 욕되게 한 조상의 과거 행실을 부끄럽게 여기고, 족보를 칼로 떼어내 따로 떨어져 나와 가승(家乘)을 만들어‘사람의 도리’를 다했다는, 다소 소설같은 이야기를 찾아 길을 나섰다.
영광군 군서면 덕산 마을에 자리한 탁염정(濯染亭). 현판에 쓰여진 ‘탁염(濯染)’이란 글자만 올려다 보아도 한결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속에 물들어버린 모든 오염을 깨끗히 씻었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정자의 주인은 진주정씨(晋州鄭氏) 정종초(鄭鍾初) 옹이다.
자세한 기록이 없어 정종초 옹에 대한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남아있는 ‘탁염정기(濯染亭記)’에 따르면 정 옹은 성품이 의롭고 사람됨이 남달라 지역 유림들의 추앙을 받은 선비로 기록하고 있다.
정 옹은 다른 정자의 주인들처럼 높은 벼슬을 지낸 인물도, 국난에 처해있을 때 의병을 일으켰던 의병장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오늘날까지 뭇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때 자신의 조상들이 나라를 욕되게 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평생을 은둔하면서 조상들의 죄를 씻어 선비상을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정 옹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을 기본 사상으로 지역의 동량들을 모아 강론, 나라와 임금에 대해서는 충성을, 부모에 대해서는 효를 근본으로 가르쳤다. 정 옹의 이러한 사상은 그가 남긴 자서(自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하늘이 구름에 가리워지면 해와 달이 청명하지 못하고, 땅이 안개에 가리워지면 산악의 본 모습이 어두워진다.-
얼핏 보면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가만 곱씹어보면 이처럼 큰 울림의 말은 없다.
정 옹의 정신에서 비롯 됐음일까. 정자를 끼고 마을 뒷편을 오르면 망곡비(望哭碑)가 눈에 들어온다. 이 비(碑)는 고종이 승하하자 덕산 마을 주민 33명이 동쪽을 향해 망곡(望哭)을 했다는 데서 연유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400여년 전 한 인물의 정신적 체취가 라일락 향기보다 더욱 진하게 다가온 수요일 오후다. 글/ 김선기 기자
kimsg@kjtimes.co.kr 그림·사진/ 한국화가 장복수

 

 

 

 

 

 

 

 

 

 

 

 

 

 

 

▲영광 탁염정

“무릇 사람이 태어날 때 반드시 태(胎)를 씻는 것은 수명을 받고 처음으로 잠을 자기 때문이요, 죽을 때 시신을 목욕하는 것은 천명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삼가하기 위함이라.” <정종초 선생의 자서 中>





◀사진=이슬처럼 살다간 조선의 선비 정종초. 정 옹은 초야에 묻혀 ‘탁염정(濯染亭)’이란 초막을 짖고, 나라를 욕되게 한 조상의 죄를 씻으며 지역 인재양성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