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적진향해 힘차게 도약하는 말 형국의 수혈”
<61> 우리고장의 인물과 풍수 (3) - 곡성 통명산 정기 머문 음택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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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군 전역에 지기를 공급하는 통명산(765m)은 양택 명당인 죽곡면 봉정마을의 비란포란형만을 결작하지 않고, 그 출중한 기세와 용맥의 장원함에 걸맞는 음택 명당도 결혈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금수강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국 도처에 살기좋은 마을터와 음택 명당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전남·북도와 광주시를 합해 이른바 호남8대 명혈이 1품부터 7품까지 모두 56개소로 알려져 전해오고 있다.
56대 호남대지(여기서는 음택명당만 가리킴)중에서 곡성지역에만 3개소가 있고, 국중 수혈 또한 석곡 아미산 아래에 매화낙지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 명혈 가운데 이번 주제와 접근되는 수혈 2개소를 택해 그 형세의 특징과 간산 소감을 쓰기로 한다.
그 중 하나는 통명산에서 발조해 수십리가 넘게 섬진강쪽으로 행룡해 곤방산을 중심으로 길고 긴 여정을 마치고, 약마부적형(적진을 향해 힘찬 도약을 하는 말의 형국)을 이루고 있다.
또 하나는 전회에 소개한 봉정마을을 형성하기 위해 힘찬 행도를 하며 내닫는 강세룡이 그 지기가 넘쳐 행룡의 도중에 작혈해 놓은 장군대좌형(적진을 향해 출정하는 장군이 위세 당당히 앉아 있는 형국)의 명혈이다.
약마부적형의 음택 명당은 호남 56대혈 중에서 2품 계열의 5순위에 드는 대지이고, 장군대좌형은 1품 4순위에 속하는 난형난제의 수혈들이다.
먼저 섬진강변 가까이 몸을 숨기고 있어 그 진혈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약마부적형에 대해 소개한다. 약마부적형의 천장지비 명혈을 맺기 위한 용맥의 행도는 그림을 참고하면 된다.
통명산에서 크게 3개의 내룡맥이 나눠지는데 그 중 한 줄기 대지룡은 크게 열두절을 넘도록 낙맥해 진둔치를 만들어 결인목을 형성, 그 준령 어딘가에 군과 관련있는 명혈이 있음을 암시해 준다.
큰 결인처, 즉 재를 지나 명혈을 지으려면 그 재의 이름부터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의 외우형 명혈을 예고하는 우슬재, 기러기가 날아가는 형국의 평사낙안형이면 안치 등 이름도 다양하다. 진둔치는 군대와 관련이 깊은 장군대좌형과 약마부적형의 명당을 만드려고 나아가는 용맥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군대가 머물러 진을 치고 있음을 상징하는 진둔치에서 30여절을 기복, 위이, 과협, 박환을 거듭하다가 주부산 뒷켠의 높은 산봉에 이르러 다시 분지점을 이룬다.
그 분지점에서 곤괘룡(남서쪽에서 북동방으로 뻗은 맥)으로 크게 낙맥한 용맥이 바로 곤방산 부근에 약마부적형의 큰 명당을 만드려고 나아가는 대 지룡맥이다. 사진에서 보듯 그 힘찬 용맥의 행도는 가히 대지 명혈을 지으려고 용틀임치면서 내닫는 한 마리의 용을 방불케 한다.
옛날 남원의 방씨 문중에서 중국까지 만리의 대장정을 마다하지 않고 약마부적형의 명혈도를 구해오다가 결국 압록강을 건너오는 도선에서 배가 움직이지 않자, 뱃사공이 “또 누군가 하늘이 감춰둔 천하대지의 혈도를 숨겨 가져온 모양인데 이 강을 안전하게 건너고 싶으면 당장 그 지도를 강물에 던지시오”라고 소리쳤다. 이 소리에 깜짝 놀란 방씨 문중 사람이 얼른 산도를 꺼내 눈에 익힌 후 압록강물에 던지고 만다.
이후 고향에 돌라온 방씨 문중 사람은 명지관을 대동하고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의 한 곳에 1년 넘게 머물며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다시 그린 산도를 길잡이로 삼아 약마부적형의 명당이 있을 만한 곳을 찾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사연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곤방산을 坤方山이라 표기하지 않고 困方山(방씨를 울려 곤혹스럽게 만든 산)이라 속칭했다고 한다.
필자가 맨 처음 곤방산을 오른 코스는 섬진강변을 지나는 국도에 표기된 송정마을의 이정표를 보고 무작정 계곡으로 들어서 곤방산의 중출맥이라 짐작가는 도로의 왼편 산등성이에 올라 그 용맥을 타고 곤방산까지 오르면서 대지의 요건을 갖출만한 용맥의 행도를 측정했다.
이렇듯 10년 넘게 곤방산을 오르면서 어디에 무슨 나무가 있고, 어디에 어느 문중의 산소가 자리잡고 있는 지 등 주변 상황을 모두 메모해 둔 탓에 잘 알고 있다.
이번 곤방산의 약마부적형 명혈을 찾기 위한 답산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큰 원칙을 미리 정하고 지인 몇 사람과 함께 큰 지룡을 모두 밟아봤다.
다시말해 대지명혈이면 이태교구 이상의 정밀한 교도에 의해 용맥이 마무리돼 작혈할 것이고, 말(馬)과 관계되는 명혈이자 명사들에 의해 결록이 작성된 것이니, 이괘룡 즉 병오룡(좌선룡의 결적인 경우)이나 오정룡(우선룡의 결작인 경우)이 선매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혈을 기준으로 곤방산의 준봉이 남서쪽에 놓일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가설을 정해 놓고 그에 적중되는 혈처를 찾아 나섰다.
특히 곤방산의 위치에 관한 관점은 필자의 체험에 의한 터득이기도 하다. 구례군의 입구 섬진강변에 필봉처럼 눈에 잘 띄는 산을 일러 병방산이라 부르는데 구례읍에 중심을 두고도 병방(남남동쪽)이 아니고 어디에서도 타당할 만한 산 이름의 근원을 찾기가 힘들던 차에 지리산 견두산에서 거의 100리가 넘게 내룡해서 구례군 섬진강을 만나 그 행룡을 멈춘 산이 하도 수봉이어서 몇번의 답산 결과 선인단좌형의 명혈을 만날 수 있었다.
또 그 곳에서 우연히 병방산을 건너다 보고는 그 형국이 필봉(화성체)이 아닌 금성체로 다정히 보여서 그 방위를 확인해 보니 정확히 병방에 놓인게 아닌가.
이 뿐이 아니다. 함평군에서 제일 승지로 꼽히는 손불면 소재의 손승조배형 또는 손승예불형을 심룡해 건너다 보이는 산이 그 곳에서 갑방에 놓인 영광땅의 불갑산인 것을 비롯, 몇군데서 그런 사례를 찾아 깨우친 후로는 이런 사례의 관점도 참고하면서 명혈을 찾아 확인하곤 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저런 관점과 가설적 준거에 따라 세세히 심룡, 심혈한 결과 나름대로 그 준거에 완전히 일치된 혈처를 발견하고는 우리 일행은 기쁨과 경외의 탄성을 울렸다.
어느 누구의 검증이나 인정의 절차가 없어도 좋았다. 또 안타깝게 약마부적형의 명혈이 아니어도 그만이었다.
그렇게 국세까지 조화롭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혈처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드디어 섬진강이 은빛 처럼 반짝이고 외명당의 드넓은 곳에는 크고 작은 산봉이 마치 적군의 군막처럼 눈에 들어온게 아니던가. 그리고 몇번을 실측해도 이른바 말룡이라는 오정룡을 낀 3태교구 우선룡의 결작이었고, 좌청룡의 깃발모습의 사격(탁기사)은 누가 뭐라해도 군대와 관련 있는 약마부적형이라는 믿음이 갔다.
또 그 곳에서 손에 잡힐 듯 지근거리엔 곤방산이 남서쪽에 단아하게 앉아서 혈처를 옹위해 주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답산에 흠뻑 빠져들면서 자기모순으로, 스스로 가국이 수혈로 보여 기고만장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간산결과도 필자와 일행만이 만끽하는 성취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점이 뚜렷하고 교구통맥은 물론 형기적으로도 흠이 없으니 그저 기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다시보니 내룡한 용맥의 힘찬기상에 비해 너무 볼품 없어 보인 그 혈을 보고는 용장혈졸(龍長穴拙)의 깊은 뜻을 되새겨 봤다. 다음회는 장군대좌형을 찾아 나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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