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풍수기행

“생가터 기운에 증조부모 산소 동기감응”

화이트보스 2009. 1. 21. 17:29

[풍수기행]“생가터 기운에 증조부모 산소 동기감응”

<65> 대권 입지자‘3인’의 생가와 선영 (3) - 고건 전 총리의 선영


 






고건 전 총리가 생가터의 서기를 받아 생득적으로 타고난 운기를 끊이지 않고 발현케 한 선영의 발음은 어느 선대 산소에서 동기감응의 에너지를 공급 받았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필자는 고건 총리의 선영이 있는 두 지역을 집중 답산했다.

그중 한 지역은 제주고씨 문중산이 있는 전북 옥구군 임피면 술산이고 다른 지역은 선친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송천마을 뒷산의 두리봉 아래였다.

두 곳을 3회이상 다녀왔다. 그리고 주산에서 혈처까지 반드시 용맥의 행도를 실측했다.

필자가 간산했던 자료를 엄밀히 분석해 보면 고 전 총리가 대지명혈의 터기운을 받아 생득적으로 타고난 운세에 시너지 효과를 더해 그 운기의 맥락이 지속되므로 동기감응의 지기를 공급해준 선영은 술산 아래의 증조부모 산소이고 더 윗대의 선영은 15대 조모인 광산김씨의 기운이라 판단했다.

물론 고 전 총리의 선친인 고형곤씨가 직접 점혈하고 재혈과 용사에 따른 지침을 남겨 소점해 놓은 신후지지에 안장토록했다는 친산의 음덕을 전혀 도외시 할 수 없다.

그러나 선친이 적고한지 이제 겨우 2년5개월이 지난 상태인 탓에 우선 잉태와 출산은 물론 성장과 오랜 공직생활에 미친 선친의 큰 덕은 오히려 생전의 정성과 가르침의 힘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사후 발음이 발현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 할 수 있겠다.

우선 옥구 임피면 술산에 묘재를 둔 증조부모 산소와 15대 조모의 산소의 간산평을 쓰기로 한다.

<산도Ⅰ>에서 보듯 증조부모 산소와 15대 조모산소는 제주고씨 문중산에 묘재를 두고 100m 거리내외에 자리잡고 있어 간산의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15대 조모산소는 가장 오래된 입향조의 기단아래에 1천500평 정도의 넓은 혈장내에 쓰여진 윗대 산소들의 하단 중간에 위치하고, 증조부모의 산소는 드넓은 산소터를 결작하기 위해 현무봉에서 낙맥한 용맥에서 분지돼 내려오는 왼편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결혈의 용맥본원 같지만 그 위치는 다르다.

<산도Ⅰ>(가) 지점에 쓰여져 400년이 넘어서고 있는 15대조모 산소는 현무봉에서 마무리된 땅기운을 타고 내리게한 용맥이 홀연 낙맥해서 결인처의 재를 만들고 이내 비룡한 다음 좌선룡 작국에 따라 9대조의 계열에 속한 선영의 진혈을 작성한 후 드넓은 당판에서 새롭게 행도를 바꿔(변국) 우선룡으로 돌아서 이태교구작혈을 짓고는 정하게 자리잡아 청기가 서리고 있다.

그러니까 우선룡의 작국인 것이다. 고 전 총리는 이 산소의 음덕을 받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산소는 이른바 무·부(武·富)가 배출된다는 혈이기 때문이다.

#그림1중앙#

400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체백(유골)의 존속상태 여하가 더 중요하다.

흔히 말하는 발음의 선영은 직계가 더 중요하고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나, 아무리 가까운 직계라도 그 체백이 잘 보존되지 못할 경우 먼 선대의 상태가 좋은 체백의 발음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론과 이치가 곧 유전감응론의 풍수지리학 핵심이다.

이런 관점에서 간찰해 보면 아무리 먼 윗대의 15대 조모이긴 해도 체백만 그대로 보존돼 있으면 그 발음은 후손에게 영향을 줘 음덕을 입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필자의 경험으로 어느 가문의 310년된 선영의 체백은 손가락 마디까지 잘 보존돼 윤기가 나는 황골로 있는 등 용진혈적의 진혈에서 서기를 제대로 받은 것이 중요하다.

그랬을 경우 중국의 곽박선생이 밝혀낸 생기론 즉 유전감응론이 효험을 발현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 들어 맞는 선영중 직계 선대의 산소가 곧 그의 증조부모의 묘소다. 일찍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그 산소의 발음에 의해 그렇듯 젊은 나이에 전남도백의 요직을 맡게 됐다고 볼 수 있겠다.

특히 필자의 간산 결과 고 전 총리의 선대 산소중 교구통맥과 용진혈적에 들어 맞아 아직도 서기가 가득 서려 있는 묘소는 이 증조부모 묘였다.

호남 제1승지를 만드려는 생기에 찬 용맥이 복구혈을 짓고는 술산 소재지를 좌선으로 빙글돌아 회룡한 뒤 200고지 가까운 수봉을 세우고 낙맥해 15대조모 산소터로 가기전 건해룡(서북방에서 동남방으로 내룡한 맥)의 한자락이 임자룡(북방에서 남방으로 진행한 맥)으로 박환하는 마디에서 가만히 한자락이 이어나가 좌선으로 빙글돌아 건해, 임자, 간인(서북방-북방-동북방 행도맥)의 이태교구의 야무진 혈을 결작했다.

국세 또한 잘 짜여졌다.

용호는 물론 안산과 그 앞에 취수된 저수지 등 용, 혈, 사, 수가 두루 잘 갖춰진 진혈이다.

그러나 증조부모 산소가 진혈이지만 오른쪽의 규모가 큰 조부모 산소를 배역에 자리잡게 된 형세를 만들었으니 애석하다.

10m도 채 못되는 거리에서 진혈의 증조부모 산소와 그 배역에 자리한 조부모 산소는 풍수지리학적으로는 하늘과 땅 만큼의 위상을 두었으니 일희일비가 아닐 수 없다.

필자의 관점과 간산평이 정확하다면 조부모 산소는 수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성 싶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가 보편 타당한 관점으로 받아들여질지 의문스럽다.

이제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 고 전 총리의 친산을 살펴볼 차례다.<산도Ⅲ>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교구통맥과 용진혈적의 준거에 입각해서 아직도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 이에 관한 간산평은 산도로 대신한다. 다만 확실하게 밝힐수 있는 것은 본혈을 맺기 위한 주룡의 용세는 천하대지를 맺기 위해 달려온 특립특출의 성신과 생기에 찬 용맥의 행도라는 점이다.

관음산에서 주금산을 거쳐 철마산에서 송라산으로 이어지는 중간 대목에 그 유명한 천마산(안동김씨 옥호저수형, 여흥민씨 회룡고조형, 홍릉과 유릉을 작혈함)을 분지해 주고 곧장 진행하다 학고개에서 살기를 털어내고 두리봉으로 치켜오른 다음 낙맥, 결인, 비룡해 372.7m의 현무봉을 끝으로 그 길고 장엄한 여정을 마무리한다. 이 만큼 대지명혈을 예비한 용세도 썩 드물다.

고 고형곤박사가 소점한 진산은 수봉중의 특출한 기상을 가득히 간직하고 있어 그 접근에는 성공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왜 용진혈적의 핵심이치가 되는 교구통맥에 대한 것은 배제했을까. 더 깊은 이치가 있음을 깨우치지 못한 필자의 미숙함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또 소점할 당시 다시 현무봉까지 올라봤을까. 그리고 그 용맥을 호리의 오차없이 측정하며 용맥의 행도를 밝혔을까. 어느 월간지에 실린 메모지를 분석한 결과가 정확하다면 경태룡(서쪽에서 동쪽으로 진행하는 맥)에서 용맥의 간찰과 분석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윗쪽의 낙맥한 술건룡(서북방에서 동남방으로 내룡맥)과 더 윗쪽의 미곤룡(남남서방에서 동북북으로 진행한 맥)은 실측하지 않았어도 형안으로 유추해석이 가능했을까.

만약 그 용맥을 타보고 정확한 측정이 됐다면 왜 산소의 (A)지점과 (B)지점은 물론 또 다른 미곤맥은 지나쳤을까. 너무 많은 의문점이 필자의 미혹함을 되돌아보게 했다.

필자의 간산자료와 객관적 평가를 받게 된다고 가정 할 경우 고 전 총리의 생가터가 매우 큰 수혈인 반면 선영의 산소는 생가터에 비해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면 보다 큰 수혈만을 추구하는 필자의 속성일까.

이런 점을 스스로 되돌아 보면서 박근혜 전 하나라당 대표의 생가가 있는 대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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