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증조부모 산소 이태교구의 대지 진혈”
(69)대권 입지자의 생가와 선영(7)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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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선대 묘소는 경북 포항시와 경기도 이천시에 자리잡고 있다.
증조부모 산소와 조모산소는 포항시 신광면 만석1리 고주산 아래 주룡의 끝자락과 정상 아래 주룡맥의 상층부쯤의 만석2리에 있다.
조부산소와 친산은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송갈1리 영일목장내에 소재하고 있다.
필자는 선대 묘소중 증조부모 산소의 간산에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
왜냐 하면 포항시 흥해읍 덕실마을에 근거를 두고 있는 월성이씨의 집터는 누대에 걸쳐 살아온 보금자리이자 이 전시장의 선친 생가이면서 이 전 시장이 4세부터 6~7년동안 성장기를 보낸 양택길지임을 확인한 후 그의 선영에 대한 간산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증조부모 산소가 형기와 이기의 용세론에 가장 접근되고 재혈도 교구통맥에 맞았다.
용진혈적의 요건에 가장 부합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증조부모 산소의 주산이자 생가터(성장기터)의 근조산이기도 한 고주산(347.5m) 바로 아래 쪽에 자리잡은 조모산소를 간찰하고 나서 비학산 지맥의 상단에 위치한 법광사 인근의 9대 조부모산소까지 살펴봤다.
물론 경기도 이천시 영일목장에 있는 조부산소와 친산은 포항을 방문하기전 이미 간산을 마친 상태였다.
9대 조부모산소에 이어 증조부모, 조부모, 친산을 모두 답산했으니 이 전 시장의 발음을 받을만한 산소는 모두 섭렵한 셈이다.
필자는 증조부모 산소가 진혈에 자리잡아 그 산소의 발복에 의해 이전 시장 형제들이 시련을 극복하고 늦게 나마 출세 가도를 달릴 수 있다는 믿음이 컸다.
증조부모 산소를 제외한 나머지 선영이 진혈 대지인데도 필자의 얕은 안목과 간산 관점이 수준에 못미쳐 그 진위를 가리지 못했다면 모르되, 적어도 형기적으로 파악한 용세론이나 이기적 용세론에 입각해 내룡맥을 실측, 분석해도 증조부모 산소의 용진혈적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법광사 인근의 9대 조부모산소는 석맥이 뻗쳐 아직 강유의 법도에 접근되지 못했다.
조모산소는 언뜻 형기적으로 진혈처로 보이지만 교구가 성립되지 못해 지기가 서릴 수 없는 지점이었다.
친산은 일반적으로 평가하는 ‘무해지지’의 평범한 산소에 불과했다.
이 전 시장의 증조부모 산소를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의 증조부모 산소는 ‘처사 월성이공, 배 월성김씨’라고 표기됐다.
필자는 늘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주룡맥에서 혈처는 물론이고 근조산인 고주산까지 이르는 용맥과 성신의 본원을 먼저 살펴보기 위해 혈처에서 고주산의 용맥을 측정했다.
또 고주산은 어디로부터 본원이 발조됐는지를 세심하게 살펴봤다.
작년에 전·현직 대통령의 생가와 선영의 테마로 간산기를 쓸때 대구시 용진마을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터를 찾다았가 크게 도움을 받았던 임순만씨의 고향이 마침 포항이어서 또 다시 안내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 답산에 큰힘이 됐다. 그의 친절함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임씨와 토착민들 조차 고주산이 그 유명한 비학산에서 크게 돌아 비룡한 연후에 솟아 오르고, 거기서 증조부모 산소까지 용맥이 이어진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고, 필자와 일행 또한 그렇게 판단했다.
이곳을 다녀간 많은 풍수지리가들 마저도 이 산소를 ‘회룡고조형격’의 작혈로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주산에 올라 멀리 북쪽을 바라보고는 내룡맥의 본원이 비학산이라고 여긴 것은 큰 오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지도에 나타난 산세에서도 어김없이 그 진위를 찾을 수가 있다.
고주산이나 비학산 모두가 그 본원은 태백산맥의 간룡인 영덕군 백암산(1003.7m)에서 비롯돼 경북 청송군의 주왕산국립공원의 주왕산을 거쳐 무포산, 바데산, 내연산, 향로봉을 지나 833.2m의 매봉에 다다른다.
그 대지룡맥이 ‘샘재’ 직전에서 서쪽으로 분맥돼 괘령(869.1m)을 지나 다시 남쪽으로 선회해 762.3m의 수봉인 명산 비학산을 세운다. 그리고 샘재 직전에서 분맥된 또 다른 지룡맥이 장구재(585.5m)에서 기복을 반복하다가 엿재에서 크게 결인한 다음 곧장 솟구쳐 올라 347.5m의 수봉 고주산을 우뚝 세운다.
이 고주산에서 낙맥, 비룡을 세번 거듭해 3봉의 목성체의 빼어난 성신을 조금씩 낮게 세우고는 이내 낙맥, 살며시 내려앉아 평맥으로 돌변하면서 간룡의 9대 강령의 하나인 동·정(動·靜)의 조화를 형성한다.
머지 않아 고요한 지점을 형성, 공급해온 땅기운을 서리게 하려는 징후를 보인 셈이다.<산도 참고>
필자는 고압선 철탑이 세워진 용맥 부터 철저하게 심룡했다.
아무리 후룡이 출중하고 생기 넘쳐 내룡한다 해도 그 주룡맥에 실려온 지기가 한곳에 서리게 하려면 그 용의 행도에 어김없는 규칙성이 교구통맥의 이법에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룡 낙맥한 지룡이 동남방으로 머리를 트는가 했더니, 다시 동방맥으로 전신해 상당히 길게 내려오는가 싶어 생기를 잃은것 처럼 보였으나, 지기를 추스르고 세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이른바 천·지맥(통원맥)의 하나인 계축룡(쌍금룡)으로 전변하다가 다시 북동의 룡으로 머리를 틀더니 이전의 동방맥 좌측의 파쇄된 용맥(군인 참호의 흔적)이 다시 드넓고 후덕한 맥으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또 한번 통원맥(계축룡)을 거쳐 마침내 산소에서 20~30m 지점에서 부터 재빠르게 교구통맥의 법도에 따라 북동, 동남으로 틀어서 좌선작혈의 남동맥으로 입혈해 내룡맥에 실려서 잘 간직해온 땅기운이 빙글서리는 지점에 당도해 그 길고긴 용맥의 행도에 대단원의 마침표를 찍는다.
그 지점이 바로 이전 시장의 증조부모 산소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필자의 심룡 및 심혈의 안목과 그 준거가 정통 풍수지리학의 용진혈적의 이치에 들어 맞는다고 한다면 이 산소는 분명 이태교구의 진혈대지에 드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묘소의 왼편에도 지기가 서린것이 지기탐지기로 확인됐으니 남동맥의 혈입수가 상당히 길게 뻗쳐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필자 나름대로 용진혈적의 증거를 찾고 나서야 용맥을 실측하다가 땅벌에 쏘인 손목과 손목 부위의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음 기회에 이 산소를 찾는 사람들은 주의하기 바란다.
이 산소에서 전후좌우를 살펴보니 혈전에는 곡강천이 예사롭지 않는 수량으로 환포하며 돌아가고, 좌선룡의 작혈에 우선수의 음양조화 합국으로 역관을 형성하고 있다.
광활한 들녘으로 발달해서 혈처를 옹위하며 낮으막하게 산소를 옹위하는 안산과 그 너머로 창공을 찌를 듯이 수려하게 솟아 있는 비학산이 큰 날개짓으로 혈처를 잘 포옹하고 있다.
이태교구의 용진혈적부터 대지명혈이라 했던가.
생가터(성장기터)가 명당의 양택이고 증조부모 산소가 이만하다보니 온갖 시련을 헤치고 대권입지자로서의 입지를 굳혔을 것으로 풍수지리학적인 해석을 내리며 하산길에 올랐다.
그렇지만 용맥상에 세워진 송전철탑과 군사시설로 인해 파쇄된 중간용맥의 상처가 매우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청룡과 백호가 산소를 에워싸 주지 못한 허전함은 용진혈적의 산소로서는 그리 큰 흠이 될 수 없다고 치더라도 용맥에 흉터가 있는 점은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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