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 <72>우리고장의 인물과 풍수
(7) -불갑산아래 함평의 음·양택 길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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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지역 음택명당중 결록에 전해오거나 필자의 조사로 선정한 4개소의 명혈을 분석 소개할까 한다.
호남대지 56대 명당에 속하는 단 1개소의 길지 ‘손승조배형’ 또는 ‘손승예불형’과 함평군에서 제일승지로 꼽히는 ‘맹호출림형’, 그리고 마을 이름에 연유돼 전해오는 ‘복치형’에 이어 인구에 회자된 것을 필자가 찾아낸 ‘노서하전형’ 등 4개형이다.
이 중 손승조배형을 밀착 취재해 소개하고 맹호출림형도 산도만을 제시하지 않고 비교적 상세히 쓴 다음 나머지는 간단히 넘어가기로 한다.
손승조배형은 어린중이 부처님께 예불하는 형국의 음택길지는 함평군 신광면 동정리 신려마을 왼편에 자리잡고 있다.
71회에서 제시한 산도 처럼 함평군 관내의 산세 분포는 불갑산에서 그 발원처를 찾을 수 있다.
불갑산에서 이위, 기복, 과협, 낙맥, 결인, 비룡의 과정을 거쳐 함평군 신광면과 영광군 군남면 용암리를 가르는 경계지점에 405.5m의 군유산이 실려온 땅기운을 크게 응결시켜 출중한 기상을 뽐내면 솟아 오른다.
이 군유봉에서 한자락은 노승봉을 향해 오던길을 재촉하며 생기찬 용의 행도를 이어가고, 군유봉에서 다른 한 대지룡이 동남방으로 크게 낙맥해 <산도>와 <사진>에서 보듯이 빼어난 성신(산봉)을 세번에 걸쳐 우뚝 세운 다음 신려마을의 들녘에 다달아서는 달려온 행도를 멈추면서 가만히 멈춰선다.
청룡, 백호는 물론 혈전에 펼쳐진 내명당과 안산, 조산의 아름다움은 눈을 비비게 한다.
현무봉 아래 평탄해진 곳에는 명문대가의 산소로 보이는 묘소가 촘촘히 쓰여져 있고, 국풍이라 자처한 어떤 풍수가는 적덕군자의 친산을 이 곳에 소점해 줬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이 곳을 이번까지 다섯번에 걸쳐 간산했다. 갈때 마다 혈처에서 보이는 왼쪽 동북방(간방)의 드높은 학의 봉이 혈처를 누를 만큼 고압하고, 청룡의 어깨에 해당된 그 산봉이 혈처를 누르면 자손에게 흉화가 되지만 혈처와 서로 조응하는 관계가 형성되면 간방(艮方)의 원봉이 대지를 입증시키니, 혈처는 분명 고혈로 맺혀졌을 것이라는 믿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리고 답산 결과에서 실측한 용맥을 교구통맥법에 따라 분석해 봐도 혈처는 상당히 높이 있다고 믿었으나 필자의 개인적 견해임에 지나지 않는다.
혈처에 앉아 나경 6층으로 측정해 보면 불갑산이 정확히 갑방에 위치하니 손승예불형과 불갑산은 그 이름과 향방에 있어 불과분의 관련을 맺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크게 봐서는 회룡고조격이다. 다시와 보고 싶은 수혈임이 분명하다.
이만하니까 호남 56대혈중 5품4위에 속하는 함평군 유일의 음택대지일 것이다.
이제 맹호출림형, 즉 용맹스런 호랑이가 숲에서 뛰쳐 나오는 형국의 음택명당을 찾아 나선다.
이 명당길지는 함평군 대동면 금곡리 북방 철성산에 소재한다.
철성의 옛 성터가 있었던 산이라해서 붙여진 이 철성산도 역시 불갑산에 본원을 두고 있다.
불갑산에서 군유산으로 진행해 행도하던 용맥이 노은재를 지나 남쪽으로 분지된 지맥의 한 자락으로 발달해 낙남하면서 동쪽의 해보면과 서쪽의 신광면의 경계를 이루다가 329m의 병풍산을 세우고 남남동쪽으로 내려와 나산면과 대동면 경계를 이루면서 생기에 찬 내룡을 계속한 다음 낙맥된 맥이 법음사 인근에서 결인목의 재를 형성하고는 크게 솟구쳐 비룡하기를 300여m 끝에 264m의 철성산 정상을 세운다.
그 내룡맥이 과협하는 과정에서 오른쪽으로는 여러 지맥자락을 내려 보내 크고 작은 혈을 짓기도 하고, 왼편으로 큰 지맥이 분지돼 이미 소개된 옥동의 양택길지를 결작시킨다.
그리고 그 중심맥의 주룡은 크게 기복, 이위의 용틀임을 치면서 범의 등처럼 생긴 소조산과 주산을 세우면서 내리막의 낙맥을 거쳐 마무리 결인처를 거친 다음, 다시 살며시 치켜 오른가 하면 재차 작은 낙맥의 행도를 거친 후, 좌선으로 회두해 건너편의 면구안(잠자는 개처럼 생긴 악산)을 탐하면서 길고 긴 내룡맥에 실려온 땅기운을 한 지점에 가득히 서리게 한다.
여기가 함평 제일승지로 꼽히는 맹호출림형의 명혈이다.
안산에 구슬재(개의 무릎)와 멀리 물이 모아져 빠지는 수구쪽에 놓인 퇴육사(고기 무더기로 보이는 사)는 물형론에서 강조하는 맹호출림형의 혈증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3회에 걸친 간산 끝에 찾아낸 용진혈적의 진혈처는 동북방에서 서남방으로 인입하는 이른바 간인작국으로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어떤 설에는 맹호출림형의 진혈은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고, 그 진혈처는 호랑이 목구멍에 있는 목젖을 찾아야 한다는 식의 재미있는 물형론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호랑이라는 짐승의 속성에만 의존해서 내세운 속설에 지나지 않는다.
혈처를 찾아가는 길잡이의 준거가 없고 보니, 더욱 혼란스런 속설일 수 밖에 없다 하겠다.
필자가 간산한 몇곳의 맹호출림형의 작혈은 인(범 인)방의 맥을 낀 곳에 결작하고 있음을 살필 수가 있다.
또 소가 누워있는 물형의 와우형은 축(소 축)방의 맥을 낀 곳에 결작하고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형국의 갈마음수형은 오(말 오)방의 맥을 낀 곳에 작혈하며, 쥐가 먹이를 찾아 밭으로 내려오는 노서하전형은 자(쥐 자)방의 맥을 낀 곳에 작혈하는 등 물형을 적시히는 용맥의 이름과 상당한 관련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옛 선사들이 물형에 의거해 명혈대지를 예시하고 결록에 남길때는 그 만한 근거에 의해 정립했을 것이라는 준거를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복치마을은 함평군 신광면 소재지에서 손불면 소재지로 통하는 길로 들어서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길 오른쪽에 이정표가 보인다.
복치마을이라 이름 붙여진 것은 <사진>에서 보 듯, 마을 어딘가에 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의 음택명당이 있는 것에서 연유된다.
이곳 복치형의 명혈도 그 교구통맥의 중간 선매의 용맥이 신(辛·꿩으로 불림)맥이 낀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 산의 생김새에만 의존해 단순하게 혈명을 붙인 것이 아님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복치혈을 간산하고 손불면 소재지를 향해 계속 1.5㎞쯤 달려가다보면 왼편에 저수지가 보이고, 길건너 오른편에 노적봉이 소담스레 앉아 있는데 그 우측 아늑한 지점에 5~6기의 묘소가 쓰여져 있다.
우연한 인연으로 필자와 알게된 그 산소의 당주를 통해 그 산소를 간산해 분석한 결과, 노승봉을 근조산으로 삼아 기복을 반복하며 3봉의 수려한 성신을 거쳐 삼태봉으로 비룡한 후, 천심룡을 타고 내려온 용맥이 마무리의 결인처에서 축간(북북동맥)으로 비룡 회두한 뒤, 자계맥으로 선매를 놓고 술건(북서서맥)으로 안착해 결혈하니, 그 형국이 자(쥐 자)맥을 낀 용맥이 있으니 노서하전형이 분명했다.
위선사의 의지가 강한 그의 선친이 땅을 구할때 부터 노서하전, 즉 늙은 쥐가 곡식을 찾아 밭으로 내려오는 대지의 명당이라 구전됐다고 한다.
잘 짜여진 국세나 근조산과 행도해온 용세로 봐서 맹호출림형에 뒤지지 않는 명혈로 보였다.
그 곳은 이렇듯 필자와 인연이 닿아 감괘맥(북에서 남으로 행룡)에 쓰여진 친산을 마무리 혈입수인 술맥(서서북에서 동동남으로 인입한 맥)을 찾아 개장했는데, 교구통맥법이나 혈토가 진혈임을 입증해 줘서 더 없는 보람으로 여겼다.
‘땅도 사람도 인연에 따라 만난다’고 했던가.
뜻깊은 인연이 닿아 함평땅의 명혈대지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이제 고흥땅으로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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