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풍수기행

“고흥산세 관장하는 봉두산이‘대서 양택지’결작”

화이트보스 2009. 1. 22. 11:51

[풍수기행]“고흥산세 관장하는 봉두산이‘대서 양택지’결작”

<73> 우리고장의 인물과 풍수 (8) - 고흥지역 음·양택 명당


 






고흥군의 양택명당으로 16개 읍·면중 면적이 가장 좁은 대서면으로 정했다.

그 이유는 대서면의 양택길지의 근조산이면서 고흥군의 모든 산세를 통솔하는 본원의 발조가 되는 봉두산(鳳頭山)의 한 주룡이 그 지기를 응결시켜 마침내 대지의 양택명당을 형성해 숱한 인물이 배출됐기 때문이다. 우선 대서땅에 그토록 길지의 양택터를 만든 후룡을 살펴보는 것으로 간산의 실마리를 풀고자 한다. 풍수지리학의 고전이자 그 원리를 담고 있는 청오경이나 장경 등의 산서들이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명당의 크고 작음을 보려거든 먼저 그 뒷 용세를 살피라고 했다.

고흥군을 찾아가는 길목은 보성군 벌교읍에서 비롯된다. 육로를 타고 고흥으로 통하는 길은 벌교읍 남쪽으로 내려가다 순천만과 보성의 득량만 사이를 지나는 병목의 형세가 마치 지기를 묶어 놓은 결인처와 다름없다. 이점이 매우 특이하다.

그 곳만 바다가 통했다면 반도가 아닌 섬이 될뻔했을 만큼 짤록하다. 동강면을 지나 남양면으로 통하는 장담리의 노송땅이 고흥반도에서 가장 가까이 동서쪽의 바다를 낀 지점이 된다.

지형은 그렇게 보이나 용맥의 흐름은 그런 지형적 특징과 달리, 무등산의 태조산에서 굽이 굽이 내룡해 보성군의 득량만과 겸백면의 면계를 이루며 행도를 거듭해 오다 동북쪽으로 진로를 틀어 방장산, 주월산을 뛰어 넘어 보성군내의 가장 웅봉이라 할 존제산으로 거룡(去龍)하는 바로 직전의 한 산봉(571.8m)에서 대지룡이 나눠 진다.

그 중 한 가닥은 존제산을 타고 흐르다가 한참을 북상한 후 순천시 영역의 조계산 도립공원을 통과한 후 북상을 그치지 않고 행룡한다. 그 용맥은 곡성군 목사동면과 승주땅을 갈라치는 곳에 이르러, 서북쪽의 용맥은 그 유명한 석곡 인근의 아미산을 우뚝 세운다. 다른 한 줄기 용맥은 동북방으로 흘러 광양땅 백운산을 향해 줄기차게 진행한다.



제산을 앞두고 또 다른 한 가닥이 동쪽으로 분맥돼 적지치를 지나 태봉과 가마봉을 넘어 장군봉으로 줄달음을 치다가 3개 지역 즉, 보성군의 조성면, 벌교읍과 고흥군 동강면의 경계를 이루며 분맥지점에서 동쪽으로 행룡한 끝에 순천만에서 마침표를 찍는 용맥이 동강면 일대를 커버하는 산세이다. 그 3개 지역의 분맥지점에서 서남방으로 행룡하다, 봉황이 큰 날개를 활짝 펼치고 창공으로 비상하려는 듯, 크게 개장한 모습이 마치 봉의 머리같다 해서 이름 붙여진 봉두산이다.

425.9m의 이 성신이 바로 고흥반도에 펼쳐진 모든 산맥의 본원이라할 발조산이다.

그러니까 벌교읍에서 고흥읍을 향해 달려오다가 오른쪽에 하늘을 찌를 듯이 첨예하게 솟아 오른 동강면 한천리 소재의 ‘첨산’이 고흥군 산세의 근원이라고 보기 쉬운데 그 것은 용맥의 흐름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한데서 기인한 오해다. 필자도 이전에는 그렇게 해석했다.

이렇듯 장황하게 산세의 흐름을 설명하고 지적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다 있다.

어떤 고장이든 산봉과 산맥은 존재한다. 땅기운이 서리어 감도는 혈처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이때 그 혈의 대소경중이나 발복연대를 따지려면 반드시 내룡맥의 근원과 강약 및 대소를 분별하는 안목이 있어야 간산평을 제대로 할 수 있다.

한 모금의 물을 마시면서도 그 근원을 생각하라 했거늘, 음양택간의 용진혈적과 크고 작음은 물론 그 무게를 가늠하는 절차에 있어서 더 말할 나위가 없다할 것이다.

다시 봐도 고흥땅의 모든 용세에 지기를 공급해 주는 조산은 대서면 북단에 후중한 자태를 뽐내며 봉황처럼 솟아 있는 봉두산이 맞다.

두산에서 개장한 큰 두자락의 용맥은 마치 봉황의 양 날개 처럼 활짝 펼쳐져, 좌우로 낙맥하는데 오른쪽의 한 지룡은 조성면과 대서면의 면계를 형성하면서 득량만의 해안까지 행룡하다가 그 여정의 마무리를 짓는다. 왼편의 한 지룡이 낙맥한 후 고흥군 전역의 산세를 발달시키며 마치 박 넝쿨이 뻗어 나가듯 고흥반도를 덮는다.

바로 두 지룡맥의 오른쪽에 흐르는 용맥이 낙맥, 결인, 비룡, 이위, 과협의 주룡맥의 윤서를 밟아나가면서 양택명당인 계명마을, 미암마을, 평촌마을, 안동마을 등을 작혈한다.

이 양택명당의 마을에서 텃기운을 받고 태어나 성장기를 보냈거나 출향한 사람들이 출세길로 나아가 자역사회는 물론 나라의 동량으로 그 몫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4개 마을 모두 풍수지리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결과 그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용지혈적의 명당이 분명했다.

다시말해 진행된 행룡의 상태가 생왕룡의 형세를 갖추고 있음이 용세의 형기적 관점과 이기적인 관점에서 진혈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또 봉두산을 근조산으로 삼아 마을의 명당터에 지기를 서리게 하기 위한 입수룡은 영락없이 이태교구 이상의 음룡·양룡의 배합을 정확하게 이루면서 마을로 진입하고 있었다. 마을터를 포옹하는 청룡백호가 좌우에 발달해 있으며 마을앞에는 내명당이 평면으로 전개되고 전면의 건너편에는 안산과 조산이 조응하며 마을터에 서린 지기를 잘 에워싸며 지키고 있다.

뒷쪽의 용세가 생기있고, 마을터의 작국이 제대로 형성된 탓일까.

마을마다 많은 인물이 배출됐다. 필자와 동행하며 이번 간산기에 도움을 준 고흥 토박이 이경국 선생의 안내로, 대서면의 양택길지에서 배출된 인물편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송경옥 전 대서면 부면장을 만나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었다.

또 먼거리를 운전해 준 이계연 선생도 많은 힘이 됐다.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송경옥 선생은 대서면의 명당터는 역시 봉두산 오른쪽 산맥의 굽이마다 자리잡은 계명, 마암, 평촌, 안동마을로 보는 것이 옳다고 했다. 그 것은 풍수지리학의 이치를 따지기 전에 그 마을에서 배출된 인물로서 충분히 입증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계명마을에는 인동장씨가 주류를 이루는데 장종현 부장판사를 비롯 장친익 교수, 장병석 교장, 장기종 대한항공 광주지점장, 장병태 동강중 설립자, 요즘 신지식인으로 각광받고 있는 전통요리사 송인식씨 등 많은 인물이 배출됐다.

암마을에서는 송동석 변호사를 비롯 의사 2명과 군 장성출신 등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나왔다. 평촌마을은 4개마을 양택명당 중 거출한 인물이 배출된 제일의 양택지로 알려진 곳이다.

여산송씨 집성촌으로 한 집안에서 4명의 남매가 사시, 행시합격자를 탄생시킨 명당의 집터가 이곳 평촌에 자리잡고 있다.

필자는 물론 동행한 사람들 모두 이 집터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남매 고시합격자가 나온 집터를 한번쯤 적시해보기 위해 마을로 내룡한 용맥을 실측한 결과, 서서북방맥으로 낙맥하던 행룡이 30도를 틀어 서방맥으로 진로를 바꾼 다음, 60도를 틀어 서남남맥으로 안착한 지점에 빨강색 양철지붕의 가옥이 이태교구의 용진혈적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집이 양택명당의 핵심이라 여겨져 이웃에 사는 사람에게 확인한 결과 필자의 가설이 적중했음을 확인했다.

신비스럽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다시한번 도선국사의 “산가 통맥을 모르면 만산을 돌아봐도 진혈을 찾기 어렵다”는 경고를 재 음미했다.

그 가옥이 앞서 말한 예의 4남매 고시합격자를 배출했던 곳이다.

송영길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사시합격)과 그의 장형 송화성(경제기획원 예산심의실위원, 공정위원, 경기도 교수)씨, 사시합격 후 부산고법 부장판사로 재직중인 송영철씨, 행시 합격후 현재 KT에 근무중인 누이동생 송경희씨 등이 주인공이다. 실로 놀랍고도 신비한 명당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다. 송영삼 법무부 부이사관과 송승석 교대 교수, 송영석씨, 송정석씨 등 3 형제 모두 관계에 진출했다.

송병근 전대 의대 교수, 송보현 서울청과물도매상인협회장, 장봉현·송채길 교장 등 수많은 인물이 배출된 곳이다. 이렇듯 평촌마을에서 유독 많은 인물이 배출된 것은 그 뒷룡, 즉 솟아 있는 취령산을 주산으로 삼아 용트림치듯 힘차게 내룡해서 다시 솟은 현무정이 다른 마을과는 그 산세가 다른데 기인됨을 이번 간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근조산인 봉두산이 바닷가에 이르러 마침표를 찍듯이 지기를 응결시킨 양택길지 안동마을은 2명의 교수를 비롯 국문학 박사, 송귀근 행자부 신도시개발단장, 송동은 부산항만청장, 송동휴 전 교육장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

자연환경이나 거주지로써 크게 여건이 차이가 없는 고흥땅에서 대서면의 봉두산 정기를 받고 태어난 마을에서 이토록 많은 인물이 나온 것은 어떤 연유일까.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필자 정 일 균

풍수지리학연구회 효풍학회장

금호교육문화회관 풍수지리 강의




[ 기사 목록으로 ]     [ 프린트 서비스 ]      [ 메일로 보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