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백두대간을 가다

[백두대간을 가다]제3구간 - 흐드러진 철쭉에 땀방울도 잠시

화이트보스 2009. 1. 24. 16:00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핀 새맥이재에서시리봉에 오르다보면 솔향 물씬 풍기는소나무숲을 만난다.

 

[백두대간을 가다]제3구간 -흐드러진 철쭉에 땀방울도 잠시
사치재-시리봉-아막성터-복성이재-치재-봉화산

4월24일 아침 8시 산행에 나선 일행을 가로막는 것은 사치재를 관통하고 있는 88고속도로.

사치재에서 복성이재로 가려면 88고속도로를 건너야 한다. 건너는 방법은 주민들이 다니는 지하의 우회로를 이용하면 되고, 2km를 돌아서 고가도로를 지나면 된다.

대구행 차선에 내려진 일행은 고속도로변에서 내려 백두대간 3구간 산행을 시작했다.



몸이 덜 풀린 무거운 발걸음으로 비교적 가파른 길을 20분 가량 오르니 사치마을과 오늘 우리가 걸어야할 능선길이 한눈에 보이는 봉우리에 올랐다.

그러나 가슴이 아팠다.

사치재의 허리를 끊은 88고속도로도 안타깝지만 지난 1994년과 1995년 연이어 산불이 난 탓에 새까맣게 타들어버린 나무들이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파온다.

그나마 능선 곳곳에 잡목들이 미약한 생명의 끈을 내밀고 있고, 겨울이면 억새가 무리지어 몸부림친다는 입소문을 위안삼아 새맥이재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속옷이 땀에 살짝 젖을 정도의 발걸음으로 40여분 오르고 내리면 잠시 쉬었다 가도 좋을 새맥이재가 나온다. 옛날 우마차가 다녔다는 새맥이재에서 복성이재로 가는 길은 이번 산행의 백미로 꼽을 수 있다.



#그림4중앙#



향기로운 솔향이 느껴지는 소나무숲을 지나 약간 급경사의 길을 50여분 가다보면 시리봉(777m) 옆을 거치게 된다.

여기서부터 오늘 산행 목적지인 봉화산까지는 철쭉밭이 계속된다.

사람 키 만큼 자란 철쭉이 일제히 꽃망울을 피워내 ‘다리’가 아닌 ‘눈’으로 산을 오르는 곳이다.

등산로 주변에 자리잡은 싸리나무가 이따금 발걸음을 옮길 때 ‘쓰르륵 쓰르륵’미세한 효과음을 내며 지천에 피어난 철쭉 향기와 함께 공감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산도, 사람도, 하늘도 온통 꽃길에 묻혀 오르기를 1시간, 눈앞에 아막성터가 보인다.



#그림1중앙#



이곳은 삼국시대 당시 백제와 신라가 국운을 걸고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로 4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던 곳이다.

역사서를 보면 백제에서는 아막성으로, 신라에서는 모산성으로 불렀다는데, 지금은 무너져내린 돌덩이들이 당시 전투를 펼쳤을 나이 어린 군졸 처럼 잔뜩 움츠리고 있을 뿐이다.

아막산성 너머로 보이는 긴 길이 바로 복성이재 도로다. 일행은 복성이재가 바라다 보이는 능선에서 점심을 먹고 1시간동안 비교적 가벼운 발검음속에 치재를 만났다.



#그림2중앙#



치재에서 1시간30분여를 내리고 오르면 봉화산이다.

이곳 또한 전체가 철쭉군락지로 큰 나무 하나 없이 초원위에 붉디 붉은 꽃들이 일행을 반긴다.

바람 탓인지 이곳의 철쭉은 키가 낮아 복성이재에서 첫 눈을 맞췄던 철쭉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또 능선 곳곳에 두릅이며 갖은 산나물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어 꼭 ‘두 손에 담을 만큼’만 따낸다면 산행이 더욱 즐거울 것이다.

이제부터는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한 내리막이다.

정상에서 남원군 아영면 구상리 마을이 손에 잡힐 듯이 위치하고 있다.

10여분만 내려서면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을 연결하는 4륜구동차량의 운행이 가능한 임도가 나온다.

인간의 편리에 위해 길을 크게 닦아 놓았지만 그리 좋지는 않다.

산은 오솔길이 더욱 어울릴것이라는 생각속에서 산행의 종착지를 향해 발을 내딛는다.계속되는 내리막 구간은 길 찾기가 쉽고, 완만하지만 식수가 없고 햇별을 가려줄 만한 그늘이 없어 일행을 조금 지치게 했다.

봄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1시간 이상을 내려 가다보면 아담하게 자리잡은 남원군 아영마을이 우리를 반긴다. 마을에 도착한 일행은 이곳의 특산품인 똥돼지고기에 소주를 곁들여 아쉬운 이날의 산행을 마감했다.



#그림3중앙#



지리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 산행은 어느덧 경남과 전북의 경계인 작은 마을에서 잠시 쉬어갈 여유를 줬다.

신라와 백제가 생사를 걸고 다퉜던 아픔의 현장을 지나 광주로 되돌아 오는 일행의 마음 속에는 아직까지도 우리 역사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경상도와 전라도 벽이 소리없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다.


오광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