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백두대간을 가다

[백두대간을 가다] 6구간 하 - 삿갓재∼무룡산∼동엽령∼백암봉

화이트보스 2009. 1. 24. 16:10


[백두대간을 가다] 6구간 하 - 삿갓재∼무룡산∼동엽령∼백암봉



대간(大幹)의 밤은 그윽했다. 산장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기 소리를 제외하면 산사람들의 나지막한 얘기가 전부다. 대간을 타는 객(客)들의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도 골짜기에 숨어들었다.


대간(大幹)의 밤은 그윽했다. 산장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기 소리를 제외하면 산사람들의 나지막한 얘기가 전부다. 대간을 타는 객(客)들의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도 골짜기에 숨어들었다. 다만 멀리 야간 산행을 하는 이들의 헤드랜턴 불빛이 눈에 띈다. 불빛은 두 개다. 부부일까. 둘도 없는 죽마고우일까. 그도 아니면 주말에라도 속세를 등지고픈 이들일까. 곧 밤을 가로질러 고요에 묻힌 산장에 이르리라.

정원이 70명인 삿갓재 산장에 사람이 많이 들어 포개어 잠을 청했다.

#그림1중앙#

날이 밝았다. 6월13일.

그 많던 이들이 모두 떠나고 없다. 종주팀은 약간 여유있게 아침을 정리하고 출발했다. 오전 8시.

짐은 약간 줄었다. 그러나 이번 구간에 우물이 없다는 얘기에 물을 충분히 준비했다.

몇분 오르자 헬기장이다. 아침구름이 걷힌 각 줄기들은 늠름했다. 모두 초록빛으로 보였지만 난이도는 달랐다. 멀수록 희미했다. 가까울수록 선명했다. 그러나 힘은 골고루 갖고 있었다. 눈에 들어왔다. 온 몸을 돌았다. 팔과 다리에 힘이 솟고 어깨는 가벼워졌다. ‘자∼ 출발’, 종주팀장의 목소리에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던 여성대원들이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봉우리 두 개를 잇따라 넘었다. 능선을 왼어깨에 두고 부지런을 떨었다. 완만한 곡선을 따라갔다. 삿갓재 산장을 떠난지 1시간. 눈 앞에 평전(平田)이 펼쳐졌다. 나무를 덧댄 계단이 길다. 계단 옆 길을 따라 올랐다. 숨을 고르고 좌우 골짜기를 감상했다. 키 큰 나무가 없다. 낮은 키의 풀들이 서로 스치며 스억스억 울었다. 그 가운데 수만그루의 떡갈나무 군락이 사열을 받듯 서있다. 탁 트인 점점이 바위지대에 올랐다.

#그림2중앙#

바위 위에서 떡갈나무 군락을 헤아렸다. 아가멤논이 이끄는 수만의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군이 요새 트로이를 향하던 형국이 이랬을까. 아니면 양만춘이 버티고 선 요동의 심장부 안시성을 도모하려던 오십만 당 태종 군(軍)이 이랬을까.

상념에 빠져들었다. 대간의 끝은 백두산. 백두산에 이르기전 함경도 마대산서 압록강 하구쪽으로 뻗어나간 청북정맥(淸北正脈). 정맥을 타고 내려서 압록강을 건너면 요동이다. 고구의 땅이고 한민족의 얼이 깃든 곳이다. 곳곳에 산재해 있는 유물과 유적이 우리 것이다. 이를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미명아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대간의 강력한 기운이 7세기 중엽, 당시 요동을 지켰으리라. 당 태종 이세민이 수십만개의 창과 화살로 안시성을 공략했다. 양만춘은 벌써 고구려 요동 방어선인 개모성과 요동성, 백암성이 함락돼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음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민족의 기개와 측량할수 없는 지혜로 당 태종의 한쪽 눈을 전리품으로 챙겼다. 당 태종은 물러갔다. ‘혼을 잃으면 나라를 잃은 것’이라던 일제강점기 한 독립지사의 일갈(一喝)도 머리를 스쳤다.

#그림3중앙#

10여분 능선을 탔다. 무룡산(舞龍山) 정상. 해발 1천492m. 이정표에 ‘남덕유 7.1㎞, 향적봉 8.9㎞’라 쓰여 있다. 덕유능선의 중간쯤이다. 다시 내리막. 평평한 능선을 30여분 가다 오른쪽으로 꺾어 20여분 가면 돌탑이 있는 봉우리가 있다. 기원을 했다.

완만한 내리막과 오르막이 이어졌다. 철쭉능선이었다. 바람의 흔적이 분명했다. 동해에서 시작, ‘대차게’낙동정맥을 넘고 낙동강을 건너왔다. 대간의 골짜기와 몇겹의 봉우리, 능선을 섭렵하면서 사나워지고 때론 부드러워졌을 바람. 이 바람이 철쭉능선 ‘철쭉’의 맨살을 고스란히 할켰다. 바람 부는 쪽은 하얗게 맨살을 드러냈다. 반대쪽은 살집이 여전했다.

철쭉능선은 곧 산죽(山竹)능선이었다. 철쭉의 키가 산죽보다 컸다. 고도가 높아 질수록 키가 작아진다는데 철쭉은 정반대였다. 사그락사그락 산죽이 노래를 부르면 철쭉은 귀찮다는 듯 말이 없다. 지난 5월, 진홍빛과 붉은 빛으로 뽐내던 자색을 추억하고 있을 터.

#그림4중앙#

무룡산을 출발한 지 두시간여. 동엽령 정상에 섰다. 해발 1천260m.

왼쪽으로 전북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가 보이고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뚫려있다. 오른쪽은 경남 거창군 북상면이다.

#그림5중앙#

봉우리를 거슬러 온 산바람이 살랑거렸다. 산행 내내 온몸에 들어온 후텁지근한 기운을 말끔히 씻어냈다. 여유있게 30여분 가자 동엽령 삼거리가 나왔다. ‘향적봉 3.3㎞, 남덕유 12.7㎞, 칠연폭포 3.1㎞’라 쓰인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부터 목적지인 백암봉까지는 살풋한 오르막이다. 쉬엄쉬엄 발을 내디뎠다. 대간에선 뜸 하던 인적이 제법 많아졌다. 하루 일정으로 향적봉에 온 이들이다. 덕유평전이 볼 만해 찾아들었을 것이다.

#그림6중앙#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평전을 가로질렀다. 마지막 오르막을 올랐다. 백암봉(1천490m)이다. 바위산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꺾으면 덕유 최고봉 향적봉(1천614m)이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대간의 줄기가 이어진다. 대간의 길목에 ‘광주타임스 백두대간 종주팀’ 리본을 달았다. 종주팀은 향적봉으로 하산했다. 향적봉의 겨울은 눈 쌓인 구상나무와 주목, 바람에 흩날리는 눈보라가 장관이다.

#그림7중앙#



사진/기경범 기자 kgb@kjtimes.co.kr


글/우성진 기자 usc@kj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