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에서 배운다/피로맺은 우방 한미동맹

〈1〉희생과 자유

화이트보스 2009. 1. 26. 21:22

〈1〉희생과 자유

 
“우리나라는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요청에 응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기린다.”(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ir country's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이 문구는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 기념공원의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새겨진 추모의 글이다.

1995년 7월27일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 대통령,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침략에 반대하는 유엔 결의를 지지한 21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 참전기념비가 제막됐다.

한국전쟁 발발 45년 만에 이루어진 이 제막식은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넋을 기리면서 나아가 21세기 새로운 한·미동맹관계의 발전을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은 사망 3만6940명·부상 9만2134명·실종 3737명·포로 4439명 등 총 13만7250명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그것은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em is not free)라는 기념비의 글귀처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바친 거룩한 희생이다.

이처럼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은 오랫동안 미국인의 기억에서 잊혀져 있었다. 그들 스스로 이 전쟁을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했다.
89년 당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한국전쟁은 너무과소 평가되고 이해되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 국민의 한국전쟁에 대한 망각이 이 제막식 행사로 비로소 되돌아온 것이다.

완전군장에 우의를 입은 19명의 미군 병사가 산개한 전투대형으로 행군하는 모습은 자유·평화를 위해 싸운 참전용사들의 전의와 기백을 느끼게 한다. 비록 오랜 세월 미국인들에게서 잊혀진 전쟁이었지만 한국전 참전에 대한 미국인들의 당위성과 불가피성, 그리고 그 희생의 결과로 얻어진 오늘 그 자체를 잊은 것은 아니었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들에게는 너무나 눈에 익은 우의를 입은 미군 병사들이 전쟁터를 긴장 속에 행군하는 모습의 이 기념비는 오늘 우리에게 오랫동안 잊어온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한다.
이 기념비를 건립하는 데 든 총비용 1억8000만 달러 중 80%가 10달러에서 50달러의 소액기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한국전 참전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제막식 행사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이 표현한 대로 한·미 양국이 `공동목표의 미래를 공유'했던 시절의 소중한 기억이다. 그리고 세계대전의 처참한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금 16개국의 젊은이들이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의 나라에 와서 싸운 것도 그들이 다함께 공동목표의 미래를 공유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끝난 후 자유를 위한 전쟁과 희생은 서서히 잊히고 냉혹한 실리추구의 현실 속에서 한·미 간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있어 왔다. 외교적·군사적으로는 변함없는 최대 우방이면서도 두 나라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사소한 문제로 상처받는 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기념비의 주제처럼 자유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이 시점에서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운 혈맹으로서 한·미관계를 다시 한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