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토속주재발견]짙어가는 녹음속 나른함 한잔 술로 다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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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주인 대잎술.
순한 맛에 독특한 향이 일품이다. 대잎술은 대나무의 푸르름 만큼이나 ‘싱그러운’ 술이다. 전국 약주 가운데 유일하게 대나무 잎의 색인 초록빛깔을 띠고 있는 대잎술. 도자기 잔에 따르자니 제 맛이 아닐 듯하다. 소주잔이나 청주잔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예 와인잔에 담아 냈다. 와인 잔에 비친 연초록 대잎술은 마치 담양의 색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듯하다. 대잎술을 바라보고 있자니 청량한 대숲 바람이 불어올 것 같다. 알코올도수 12~15도 수준으로 목넘김도 부드럽다. 어느 민속주와도 다른 독특한 맛이다.
대잎술은 좋은 물, 맑은 공기, 그리고 장인정신이 빚어낸 담양의 대표 전통주. 술도가 ‘추성고을’은 농림부로부터 명인(제22호)으로 지정된 양대수씨(48·군의원)가 운영한다. 대잎술은 현재 3가지 정도. 지난 2000년 5월 대나무축제에 알코올함량 12% 대잎술이 첫 선을 보였다. 이듬해 3월에는 42~50㎝ 왕대나무에 술을 담아 ‘십오야(十五夜)’(알코올함량 15%)를 출시했다.
지난해 9월 대잎술 매니아 뿐만 아니라 대중화를 한 차원 끌어 올리기 위해 알코올함량 13% ‘대나무의 향취-죽청마루’를 선보였다. 죽청마루는 ‘대나무 꼭대기의 푸르름’이란 의미. 얼핏 보기엔 주스병이다. 골프장이나 낚시 등 나들이할 때 잔 없이도 가볍게 마실 수 있도록 용기를 줄였다. 알코올함량도 13%로 낮추고 맛도 소비자 기호에 맞게 달착지근하게 했다.
이 가운데 왕대나무 통에 담는 15도짜리 대잎술 ‘십오야’가 인상적이다. 술통도 아예 푸르름을 더하는 왕대나무다. ‘그런데 술은 어떻게 담았지?’ 술을 어떻게 담았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또, 술 주입구를 찾는 일이란 마치 보물찾기나 다름없다. 뚜껑도 따로 없다.
양씨는 “대통술을 마시다가 어디로 담았는지 내기를 하고 술도가에 전화로 물어보는 이들이 있을 정도”라고 말한다. 대통을 잘 살펴보면 술을 담는 구멍은 찾을 수 있다.
술을 마시려면 젓가락으로 대 마디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 술은 오래 묵어야 좋다는 인식과는 달리 대통술의 유통기한은 여름철 15일, 겨울철이나 냉장보관시 1개월 정도다.
양씨는 “대통술은 제조일로부터 15일 이내에 마시는 것이 낫다”면서 “대통은 숨을 쉬기 때문에 15일 이후부터 용량이 줄어들어 100~150㎖ 추가 주입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나무통 술은 2002년 3월께 특허(실용신안등록)를 냈다. 일반 유리병에 담은 것과는 달리 대나무통은 통 자체가 호흡하다보니 술 맛이 부드러워지고 대나무 특유의 향을 스며들어 맛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큼직한 왕대나무에 담긴 술을 선물받아 장식장에 보관하거나 다른 곳에 선물을 하다보면 대통의 술이 없어지거나 상하기 일쑤.
술도가를 돕고 있는 딸 소영씨(26)는 “제조일로부터 15일, 냉장보관 등에 대한 주의사항을 붙이고 포장에 넣는 등 입이 닳도록 얘기를 했는데도 술이 없거나 상했다며 항의해오면 무척 난감하다”고 말했다.
용기로 이용되는 왕대는 담양 뿐만 아니라 경상도 등지에서 들여온다.
나무라서 수급조절 및 세척과정이 힘들다. 대나무는 수분 흡수력이 빠르다. 이 때문에 장마철 같은 경우는 건조 등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유사 대통술도 문제다. 대개 식당에서 대나무통에 다시 술을 담아 판매하는 것은 100% 유사품. 대나무는 수분에 약해 세척후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일부 식당에서 버젓이 유사 대통술이 팔리고 있다.
입소문을 타고 애주가들의 호응을 더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담양 대나무술의 명성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로부터 담양지역 가정에서 대나무 잎을 원료로 빚은 ‘죽엽청주’는 진상품으로 그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담양의 별칭인 청죽골의 청자를 따서 죽엽청주라 했다.
대나무 잎의 효능을 보면 약주로 꼽힐 만하다. ‘동의보감’에는 대나무 잎이 상한증이나 고열, 갈증의 해소와 더불어 정신안정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연구자들에 따르면 죽엽에는 고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회분, 비타민C가 풍부해 대장암의 방지와 당뇨병, 심장병 등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10여가지의 약재로 빚어지는 대잎술은 대잎에서 추출한 천연 색소로 푸르름을 더한다. 4, 5월의 짙어가는 녹음속에 딱 어울리는 술이다.
강승이 기자 담양/박석순 pinetree@k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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