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토속주재발견] 막걸리와 녹차가 만나‘웰빙’
[전라도토속주재발견] (9) 벌교 녹차막걸리
지하 암반수와 茶싱그러움 한데 어우러져
손맛에 곰팡이·효모 더해진 자연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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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문헌에는 삼국시대 이전 한해의 풍년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곡주를 빚어 바치고 가무와 술을 즐겼다고 전한다. 이같은 내용에 비춰 우리술은 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술로 막걸리(탁주), 약주, 소주가 전해지고 있다. 숙성시킨 막걸리 술독 위에 뜬 맑은 술만 떠내면 청주(또는 약주), 또 이를 증류하면 소주가 만들어진단다. 제조방법으로 미루어 막걸리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리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조상들이 즐겼던 우리의 술,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술은 바로 막걸리. 막걸리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농주(農酒)였다. 맥주, 양주, 소주 등에 밀려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21세기형 ‘웰빙 막걸리’가 탄생, 애주가들을 유혹한다.
다름아닌 보성 벌교의 녹차 막걸리. 유명한 보성녹차와 물 좋은 곳에서 빚어진 막걸리가 만났다. 예스러운 맛과 녹차의 싱그러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벌교읍 전동리 ‘벌교주조공사’. 대(代)를 이어 술도가를 운영하는 정상두씨(56)는 “전동리 물은 맛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다”면서 “예전엔 무허가로 소주를 엄청나게 만들어 마셨다. 지금도 어지간한 주민들은 대부분 소주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마을이 술로 유명하다보니 60~70년대 무렵 주민들과 세무서 직원들이 쫓고 쫓기곤 했다. 아예 세무서 직원들이 (마을에)파고 살았다”며 일화를 들려줬다.
녹차막걸리에 사용되는 전동리의 지하 120m 깊이에서 뿜어 올려지는 지하 암반수. 정 사장은 “다른 물은 3일이면 탁해지기 일쑤다. 그렇지만 전동리 물은 정수기에 두고 오래동안 먹어도 변질이 안된다”며 술 대신 물자랑이다.
정씨가 술도가를 물려받은 것은 선친이 작고한 후 50년대부터. 정씨는 지난 89년께 장흥에 있던 술도가를 물 맛 좋다는 벌교 전동리로 옮겨왔다.
그는 맥주, 양주에 밀려 점차 막걸리가 설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그래서 작심하고 개발한 것이 녹차 막걸리. 지난 99년 3월 산학연구로 순천대(김용두 교수팀)와 공동연구, 2000년 2월말에 기술개발후 ‘녹차성분을 함유한 탁주제조방법’에 대한 특허 출헌, 2003년 4월에야 등록했다. ‘녹주’ 등 5종에 대한 상표 등록도 마쳤다.
녹차 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말 그대로 막걸리에 녹차가 어우러졌다. 알콜도수 6%. 녹차는 100% 보성산이다. 보성 봇재의 다원에서 공급받고 있다.
막걸리는 술 담그는 사람의 손맛 뿐 아니라, 곰팡이·효모가 어우러진 자연의 합작품. 제조법은 여느 막걸리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전공정 자동화를 실현했다. 과정은 자동화됐으나 손 맛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로 빚어진다. 일반 막걸리는 4~5일이면 숙성되지만 녹차막걸리는 숙성기간은 1주일이다. 제선기로 넘겨져 2단계 여과 후 병에 담아낸다.
무엇보다도 녹차를 넣는 과정이 까다롭다. 정씨는 “녹차가 몸에 좋다길래 듬뿍 넣었더니 제대로 발효가 되지 않아 망치기도 했다”면서 녹차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비법중의 비법’이란다. 주모(효모)와 고두밥가루, 녹차분말 등을 혼합·숙성중인 사입탱크에 부글부글 올라온 거품은 녹차빛깔이 완연하다.
공장의 대형 시루는 쌀 30가마를 한꺼번에 고두밥으로 쪄낼 수 있다. 한때는 매일 쪄냈지만 요즘엔 막걸리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2~3일에 한번씩 쪄내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이는 입밧의 변화도 원인이지만 외지 막걸리의 잠식도 큰 요인이다. 인근 주조장은 물론 멸균후 유통기한을 늘려 전국에 공급되는 막걸리들의 공세도 만만치 않기 때문.
그는 생 막걸리를 고집한다. 정씨는 “막걸리는 곰팡이를 이용한 발효주다”면서 “곰팡이를 죽이는 멸균은 바로 막걸리 고유의 맛을 죽이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녹차막걸리의 전국에서 찾는 애주가들도 많다. 인터넷 거래와 택배 등을 통해 해남 광주는 물론 강원도 원주, 서울, 대전, 제주, 부산 등지로 팔려나간다. 입소문 타고 직접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있다.
정 사장은 “지난 12일께 낙안읍성~고흥을 찾은 서울 관광객들이 한사람당 20~30통씩 구입하기도 한다”면서 “제주는 항공료가 비싸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며 웃는다.
술도가는 이제 아들 형관씨(31)가 “할아버지, 아버지가 이어온 가업으로 이어야지 않겠느냐”며 대물림을 자처하고 나섰다. 아들 박씨는 “노하우를 전수받아 녹차막걸리에 전념하고 있다”면서 “현재 다른 종류의 술도 개발하고 포장 및 마케팅 방안 강구중”이라고 했다.
취재 후선물로 얻은 막걸리를 들고 벌교 읍내 Y식당으로 갔다. 고막이 제철이라 안주엔 제격일 듯 싶었다. 출출했던 터라 고막 안주삼아 한잔 주욱 들이켰다. 아니나 다를까. 제철맞은 벌교 고막에 녹차막걸리. 제맛이다.
정겨운 옛 얼굴들이 그리울 때, 마주하는 자리에 막걸리 한잔 곁들이면 정은 더 커지리라.
강승이 기자 pinetree@kjtimes.co.kr 벌교/박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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