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그라 (Agra)
우리가 지나온 델리와 자이푸르, 그리고 아그라를 일컬어 골든 트라이앵글 (Golden Triangle)이라고 한다.
그만큼 많은 볼거리가 넘치는 역사, 문화, 관광의 핵심지대라는 의미...
특히나 세계 7대불가사의에 항상 포함되는 타즈마할 (Taj Mahal)이 있어 더 유명한 아그라...
무굴 제국의 옛 수도였던 아그라.
아그라를 말할때 무굴제국을 말하지 않을 수 없고
무굴 제국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그라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아그라는 무굴제국과 밀접한 도시이다.
아그라뿐만이 아니라 델리에서 보았던 후마윤의 무덤이나 우다이푸르와 근처의 치토르가르, 그리고 아그라에서 가까운 파테뿌르 시크리와 시칸드라, 멀리 남쪽으로 내려가는 비디샤와 산치는 물론, 카주라호 근처의 작은도시 오르차....등을 돌아볼때마다 무굴 제국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쉽게 이해할수 있고 상호관계를 재미있게 연결지을 수 있을것이다.
ㅇ 무굴 제국 (The Mughal Empure : 1526~1761)
1526년, 무굴의 시조인 바부르 Babur (1483~1530)는 로디 왕조의 마지막 술탄인 이브라함의 군대를 격파하며 델리와 아그라를 점령하였고 치토르가르에 거점을 두고 있던 메와르 왕조와 비하르, 벵갈의 술탄등을 차례로 꺾으며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다.
우리가 우다이푸르에서 가보려했던 치토르가르가 바로 이 무굴 제국에게 참담한 패배를 당한 메하르 왕조였으며 그 후 그들은 수도를 우다이푸르로 옮긴것이었다.
2대 황제인 후마윤 Humayun (1508~1556)...
뉴델리에서 찾아갔었던 후마윤의 무덤이 바로 이 사람의 무덤이다.
3대 악바르 Akbar (1542~1605)에 이르러 무굴제국은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인도 역사를 통틀어 '대왕 (The Great~)' 호칭을 붙이는 왕은 단 두사람....
통일제국의 위업을 세운 아쇼카(Ashoka)와 무굴황제 악바르 뿐이다.
악바르는 뛰어난 군사 책략가이자 합리적인 정치가였으며 다른 이슬람 지도자에 비해 타종교를 수용하는 폭이 넓은 것은 물론, 서인도의 근심거리였던 라지푸트를 혼인동맹으로 포섭해 무굴제국을 반석위에 올려놓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아그라 성(Agra Fort)을 세운 악바르 황제는 아들이 없어 애를 태우다가 파테뿌르 시크리에 있는 聖者의 예언에 따라 아들 셋을 얻게 되자 그에게 푹 빠져 마침내는 수도를 아그라에서 파테뿌르 시크리로 옮기게 되지만 물(水)이 부족하다는 결정적 문제로 불과 14년(1571~1585년)만에 다시 아그라로 옮긴후 파테뿌르 시크리는 버려지게 되었으니 인도인의 즉흥성을 지적할 때 자주 쓰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의 무덤은 아그라에서 가까운 시칸드라에 있다.
4대 제항기르 Jehangir (1569~1627)는 특별한 업적이 없었던 왕이다.
그는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으며 왕자시절이었던 1602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아버지의 눈을 피해 달아난 곳이 카주라호 근처 분델라 왕조의 수도인 오르차로 도망을 가서 그곳 마하라자인 비르 싱 데오에게 의탁하게 된다.
3년후 악바르가 죽고 제항기르가 왕이되자 그를 숨겨주었던 오르차는 하늘을 찌르는 위세를 떨치게 되지만 나중에 제항기르의 뒤를 이어 샤 자한이 황제가 되자 허무하게도 모든것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결국 1627년에 반란을 일으키지만 13살짜리 샤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앞에 무릎을 附杵?했으며 그후 급격히 쇠락하여 오늘날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하게 된다.
그는 아버지인 악바르가 시행했던 힌두교 포용정책을 수용했고, 정치적으로 큰 실책을 범하지 않아 무굴제국을 큰 위기 상황에 빠뜨리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장인인 미르자 기야스 백에게 맡긴채 마약과 술, 여자와 섹스에 탐닉한채 세월을 보낸 무기력한 왕이었다.
5대 샤 자한 Shah Jahan (1592~1666)은 건축광으로 알려져 있다.
아그라의 타즈마할과 델리의 랄 낄라, 자미 마스지드등 수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특히 부인인 뭄타즈 마할의 무덤으로 세운 타즈 마할은 22년이나 계속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큰 공사였지만 아들인 아우랑제브에게 왕위를 빼앗긴후에는 7년이나 아그라 성에 갇힌채 타즈마할은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죽게 된다.
샤 자한의 불효자인 아우랑제브 Auranzeb (1618~1707)가 왕으로 등극한 뒤엔 흰두교인과 이슬람교인 사이의 반목이 재현됐다.
아우랑제브는 인도의 이슬람화가 인생의 목표였던 인물로 흰두교인은 물론이고 비이슬람교인이면 누구나 탄압의 대상으로 삼아 인두세 징수나 공개 처형등을 서슴없이 자행했다.
그러다보니 그에 대한 반발이 거세고 주변에서의 신흥세력들이 강세를 보이면서 결국 우랑제브 사후 무굴제국은 델리 근교의 소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ㅇ 아그라 성 (Agra Fort)
자이푸르에서 새벽 6시 출발 열차는 1시간이나 연착된 7시가 넘어서야 출발하였으며 낮 12시 15분에 아그라에 도착하였다.
릭샤 2대에 나눠타고 타즈마할 근처 타즈간즈 지역에서 숙소부터 찾아 헤매야했다.
숙소는 많았지만 대부분 맘에 들지 않았고, 옥상 전망이 좋아 타즈마할이 보인다고해서 올라가보면 그다지 좋지도 않았다.
그저 지내기 편안한곳을 찾아 정하고 라면을 끓여 늦은 점심을 먹은후 아그라 성부터 가보기로 했다.
아그라 성은 1566년 무굴의 3대 황제 악바르 Akbar가 지은 성이다.
무굴 제국의 위세를 떨치려 크고 높게 튼튼한 요새로 지었지만 샤 자한은 건축광답게 아그라를 궁전으로 변모시켰다.
특히나 타즈마할을 지어 놓고는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 이곳 아그라성에 갇혀서 멀리 타즈마할을 바라만 보다가 7년뒤에 비참하게 죽고 마는 아이러니한 샤 자한의 일생이 생각나는 곳이다.
<아그라 성의 외부 모습....>
<연못을 파서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한 해자....>
<아그라 성 남문.... 아미르 싱 게이트....>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아그라 성은 섬세한 조각으로 치장된 외벽이 아름답다...>
<제항기르 팰리스 (Jehangir's Palace).... 어렵게 얻은 아들 제항기르를 기려 악바르 황제가 지은 건물이다.>
<제항기르 하우즈 (Jehangir's HAUZ) 1610년...
둥근 보울(Bowl) 형태의 단일체로 외부와 내부에 계단이 보이며 높이 5피트, 직경 8피트, 둘레 25피트에 이르는
이동용 목욕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아그라 성 옆으로 흐르는 야무나 강 저 멀리 보이는 하얀색 타즈마할의 강 건너편에 검은색 대리석으로 자신의 무덤을 지어서 타즈마할과는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다는 샤 자한....
그렇게 완공되었다면 지금보다 더 멋진 모습의 인류 문화유산이 되었을텐데....
결국 이곳 아그라성에서 타즈마할을 바라만보다가 죽어야 했으니 자식에게 당해야했던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그라성에서 바라 보이는 타즈 마할...>
<샤 자한이 7년간 갇혀지내면서 타즈마할을 바라보던 무삼반 버즈 (Musamman Burj)... '포로의 탑'이라는 뜻이다.>
<아버지 악바르에게 반역을 꾀하였던 제항기르의 옥좌 (Throne).... 검은 대리석이다>
<디와니 카스 Diwan-i-khas ... 왕의 개인 접견실이다. 그 유명한 공작좌가 처음 있던 곳....>
<디와니 암 Diwan-i-am... 왕의 공식접견실, 1628년 샤 자한이 지었는데 붉은 사암에 흰 회칠을 덧칠했다.>
<THE TOMB OF ETIMAD UD DOULAH.... 1628년이라 쓰여 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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