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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팔 배낭여행 (3)... 올드델리 ②

화이트보스 2009. 2. 24. 15:41

인도-네팔 배낭여행 (3)... 올드델리 ②
  2009/01/17 08:16
김신묵      조회 1175  추천 0

ㅇ 자미 마스지드 (Jami Masjid)

 

찬드니 촉에서 붉은 성을 보고 걷다보면 오른편으로 커다란 사원이 보인다.

사암(沙岩)으로 지어져 붉은 빛이 감도는 이스람 사원인데 샤자한 최후의 걸작품으로 일컬어 진다.

1644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그가 죽은 후인 1656년에 완성된 인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이다.

이슬람사원을 모스크라고 하는데 자미 마스지도도 일반명사인듯 곳곳에 있다.

 

입장료를 끊고 들어가는데 카메라 입장료가 따로 또 추가된다.

문에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신발을 보관하거나 정리해주곤 돈을 받는다.

내가 들고 다니겠다고 하고 들어갔는데 첨탑을 올라가려니 다시 신발을 보관하라해서 결국 돈을 주어야 했다.

배낭에 비닐봉지나 쇼핑백을 들고가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이 주변은 이슬람교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책자나 관광안내서에 따라서는 자마 마스지드 (Jama Masjid)라고 되어 있는데 그 차잇점을 모르겠다.

 

<사원의 동쪽... 붉은 성 방향의 출입구이다.>

 

<계단을 올라 입구로 들어가는데 여기에서부터 신을 벗어야 한다.>

 

<사원의 모습... 두개의 뾰족탑은 미나렛(Minaret)이라 불리우는데 높이 40m.... 입장료를 내고 올라갈 수 있다>


 

<아주 좁고 답답한 나선형 통로를 따라 올라 간다.>

 

<미나렛에 올라가서 내려다 본 모습... 우리가 들어온 방향인데 날이 흐려서 붉은 성이 잘 안보인다.>


 

ㅇ 붉은 성 (Red Fort)

 

무굴 제국의 수도를 아그라에서 이곳 올드델리인 샤자하나바드로 옮긴 5대황제 샤 자한이 심혈을 기울여 지은 왕궁이다.

올드 델리의 대표적인 유물로서 현지인들은 랄 낄라 (Lal Quila)라고 부른다.

 

당시 왕궁이나 성문을 공격하는 코끼리 기병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깊게 파놓고 물을 채웠던 해자의 위용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성문도 코끼리가 달려와서 부수지 못하도록 90도 꺾어서 문을 세우는등 설계 당시의 의도를 엿볼 수가 있다.

이곳 역시도 사암(沙岩)으로 지어져 붉은 빛이 감돌기에 붉은 성이라고 부른듯 하다.

찬드니 촉에서부터 걸어서 자미 마스지드를 돌아보고 붉은 성까지 이어서 둘러 볼 수 있다.

 

<붉은 성 전경....>

 

<높고 견고한 왕궁 성벽과 그 바깥쪽으로 파여진 해자(垓子).... 이곳에 물을 채운다.>

 

붉은 성의 성문은 라호르 게이트 (Lahore Gate)라고 한다.

라호르는 현재의 파키스탄으로 편입이 되었는데 무굴제국 당시 델리, 아그라, 라호르를 무굴 3景이라고 불렀다 한다.

이 문의 방향이 라호르를 향하였기에 그리 부른다는 것이며, 초대 인도수상인 네루가 1947년 8월 15일 인도 해방기념일 당시 이곳에서 연설을 한 뒤 정치행사의 장으로 애용되고 있으며, 인도 창건일인 1월 26일에는 현재의 권력상징인 라즈파트에서 옛날 권력의 상징인 이곳까지 퍼레이드와 군대 사열식이 진행된다고 한다.

 

<코끼리 기병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90도로 꺾여져 세운 라호르 게이트>

 

붉은성은 라호르 게이트를 들어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곳에는 찻타 촉 (Chatta Chowk)이라하여 장신구 상가와 기념품 가게들이 좌우로 이어진다.

그 당시 성내 거주민들을 위한 상가였으나 지금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판매하고 있다.

 

<라호르 게이트를 들어서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지면 찻타 촉이 나온다... 그 입구.>

 

 

찻타 촉... 내부 상가 가운데로 지나가면 2층 건물이 나오는데 나우밧 카나 (Naubat Khana)이다.

원래는 황제나 왕자등이 지나가면 음악을 연주하던 건물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그 2층에 전쟁박물관을 꾸며 놓았다.

 

<나우밧 카나 (Naubat Khana)...>

 

이렇게 붉은 성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디와니 암 (Diwan-i-Am)이다.

왕의 공식 접견장으로 모든 성에는 디와니 암이 입구 쪽에 지어져 왕이 머무는 동안 이곳을 사용하였다.

당시 루비와 사파이어등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고 하지만 모두 파괴되고 그 모습만 보존되고 있다.

 

<디와니 암 (Diwan-i-Am)....>

 

<화려한 대리석 옥좌(玉座).....>

 

디와니 암 (Diwan-i-Am)과는 달리 디와니 카스 (Diwan-i-Khas)는 왕의 개인적인 접견장소이다.

이곳 붉은성의 디와니 카스는 공작좌(孔雀座)로 불리우는 화려한 왕의 옥좌(玉座)로 유명하다.

 

샤 자한이 만든것으로 전해지는 공작좌는 매우 화려해서 단상까지의 계단을 銀으로 만든데다가 의자 다리는 황금으로, 등받이는 다이아몬드와 루비등의 보석으로 꾸며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고 등받이를 공작깃털처럼 만들어서 공작좌라고 불리웠다 한다.

 

그러나 이 공작좌는 비운의 운명으로 더 유명한데 이를 만든 샤 자한은 아들에게 쫓겨나 아그라 성에 유폐되었다가 생을 마감하였으며, 아버지를 쫓아내고 황제에 오른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는 재위기간 내내 반란에 시달리다가 죽었으며 그가 죽자 무굴제국도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후 이란의 샤 나데르 (Shah Nader)가 1739년 인도를 침략하여 공작좌를 탈취해가지만 그해에 크루드족에게 패하여 뺏기고 말았으며 최후의 소유자인 크루드족은 보석이 탐이 나서 공작좌를 분해해버렸다고 한다.

 

이후 이란에서는 공작좌의 모조품을 만들었는데 1941년 이란의 마지막 국왕인 팔레비가 여기에 앉았으나 결국 호메이니에 의한 이슬람 혁명으로 쫓겨난 후 객지에서 죽고 말았다는........... 공작좌에 얽힌 비운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디와니 카스 (Diwan-i-Khas)...>

 

<아우랑제브가 개인기도실로 세운 이슬람 사원.... 모띠 마스지드 (Moti Masjid)....>

 

<왕족들 목욕탕 함만 (Hamman)... 장미잎 목욕탕... 열탕, 증기탕등도 있다하나 잠겨 있어서 문틈으로만 들여다 보았다.>

 

<왕의 처소....카스마할 (Khas Mahal).... 매우 검소하다.>

 

<왕비의 처소... 랑 마할 (Rang Mahal).... 황제 처소보다 크고 화려하다.>

 

첫날 점심으로는 도사 (Dosa)를 먹었다.

하루정도 발효시킨 쌀가루를 기름 두른 철판에 넓게 펴 구워낸 음식이다.

그 안에 감자와 야채, 마살라를 넣은것을 마살라 도사라고 하고, 양파를 넣은것은 어니언 도사라고 한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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