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전라도 이색마을

“ 왜군을 물리쳐라 ”장군의 기개‘ 쩌렁 ’

화이트보스 2009. 3. 16. 11:19

[전라도이색마을]“ 왜군을 물리쳐라 ”장군의 기개‘ 쩌렁 ’

[전라도이색마을]<8> 고흥 두원면 신송리 동신마을
임란 당시 맹활약 진무성 장군 사당 마을 한가운데
영·호남 유림 힘 모아 건립…일부 쇠락 지원 절실


2006년 04월 26일 00시 00분 입력


무열사 안에서 바라본 동신마을. 무열사의 담과 파릇파릇 잘 자란 마늘밭, 마을이 잘 어우러져 보인다. /기경범 기자 kgb@




동해 저쪽에서 파도가 들이닥쳤다. 한반도 연안에서 힘을 받은 뭍의 파도가 맞받았다. 서로 부딪혔다. 엄청나게 출렁였다. 지진이 감지됐다. 바다도 화가 났는가. 일본이 영토야욕의 침략 본성을 드러냈다. 한국과 일본간의 대치가 ‘우리 땅’독도를 사이에 두고 벌어졌다.

일본은 어쩔수 없는 ‘칼의 나라’.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도대체 참을 수 없는가. 국화의 뒤에 칼을 숨겼다 언제든지 기회가 오면 안하무인,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내질러야 직성이 풀리는가. 과거의 잘못을 들어 애써 타일러도, 국제 평화연대의 건의에도 아랑곳 없는가.

#그림1중앙#

올곧은 역사의 심판을 담아 선언을 했다. 반성없이 화해없다. 구두선에 그쳐선 안된다는 단호한 입장이 나왔다.

임진왜란때 호국을 몸소 실천했던 충신의 마을을 찾았다. 전남 고흥군 두원면 신송리 동신마을. 임란과 정묘호란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진무성(1566~1638) 장군의 사당인 무열사(武烈祠)가 마을 야트막한 곳, 중심에 서 있다.

진무성 장군은 임란이 일어나자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휘하로 자원했다. 옥포와 적진포 해전 등에서 사도첨사 김완 장군 등과 함께 왜병을 참살했다.

특히 당포해전때 적선에 뛰어들어 왜 수군의 목을 베고 함선을 불태웠다. 충무공이 장계에 이를 기록할만큼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어 1593년 제2차 진주성 싸움이 한창일 때 현장의 전세를 탐지하기위해 혼자 성안으로 잠입했다. 왜장으로 변복한 후 적진으로 뚫고 들어갔다. 의병장 김천일 등을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 또 왜병 여러명을 무찔렀다. 충무공이 맹장(猛將)이라 불렀다. 당시 나이 27세.

#그림2중앙#

종전이 된후 진 장군은 1599년 무과에 급제했다.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됐다.

동신마을 무열사에는 진 장군의 영정과 칠성검, 일산(日傘·햇빛 가리개), 무과급제 교지와 상서, 명문(明文), 통문 등 79매의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고문서가 소장돼 있다.

무열사 외삼문을 들어서면 왼쪽이 진 장군 관련 유물을 둔 유물각이 있다.

자리를 함께한 문중의 장, 진정용(85) 문장(門長)이 아직 또박또박 분명한 목소리로 설명을 해나갔다.

“일곱개의 별 모양이 박혀있는 칠성검은 진 장군이 임란때 쓰시던 검입니다. 지금의 것은 혹시 모를 도난방지를 위해 형태만 같은 것을 진열해두고 있습니다”

이어졌다. “이것은 명문으로, 장군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일종의 재산분배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유언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유씨 우장(柳氏 右掌)’이라 하여 손바닥을 그려넣었고 뒷면에는 당시 고을 원님의 확인을 받아 적었습니다. 학계에서 사료적 가치를 충분히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림3중앙#

진 문장은 특히 “진 장군의 무과 급제 이후 아들들을 포함해 이후 30여분이나 무과에 급제해 무인의 혼을 이어갔다”면서 “작금 바다건너 일본정부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보면서 왜인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끔 해준 장군의 높은 기개에 머리가 숙여진다”고 말했다.

무열사 관리를 맡고 있는 진기환(75)씨는 “2월대제와 8월대제, 시월시제, 탄신기념일인 9월25일 모두 네차례 제를 올리지만 재원이 부족해 어려움이 많다”면서 “호남 유림의 발의와 영남 유림의 협찬으로 1882년에 이전 용강사를 계승해 건립한 무열사의 관리가 수월치 않다”고 토로했다.

진씨는 이어 “특히 철이 되면 초·중학생들의 역사체험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수도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지않아 곤란한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가문에서도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림4중앙#

지방자치단체의 의미있는 지원이 절실하다. 역사는 반복된다. 살고 있는 이들에게 좋든 싫든, 호의적이든 그렇지않든간에 되풀이된다. 국사 역시 마찬가지.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운 맛이 제대로 든 마늘 밭이 마을을 휘감고 있다. 마늘 맛을 보여줄 때다.





우성진 기자 u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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