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법관들의 죄
법(法)에서 물 수변(水)을 빼면, 갈 거(去)자가 나온다. 그래서 혹자는 법을 해석하기를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순리에 따르는 이치를 밝히는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은 갈 거(去)라는 글자는 해태(獬豸)라는 동물을 뜻하는 글자로서 거(去)는 해태의 약자(略字)이다.
- 해태는 시비(是非)·선악(善惡)을 판단하여 안다는 상상의 동물로서 해치라고도 한다.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머리 가운데 뿔이 하나 있다.
중국 문헌 《이물지(異物誌)》에 <동북 변방에 사는 짐승이며, 뿔이 하나 있고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고, 사람이 다투는 것을 들었을 때는 옳지 않은 사람을 받는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처럼 예로부터 정의를 수호하는 동물로 믿어져 고대 중국에서는 법을 심판하는 사람에게 해치관이라 하여 해태가 새겨진 관모를 쓰도록 하였다. 한국에서는 대사헌의 흉배 무늬로 장식되었다. 또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 여겨 석상을 만들어 궁전 등 건축물 좌우에 세우기도 하였다. -
우리네 민초들은 법 없이도 사는 것을 가장 올바른 삶의 자세로, 완성된 인격으로 알고 산다.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야.”
이는 법이 강제하지 않아도 법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착한 사람.
이런 사람은 흔히 상식(常識)이 통하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법과 규범이 오랜 시간을 거쳐 공동체로부터 보편성과 타당성을 얻으면 그것은 상식(常識)이 된다. 그래서 우리 일반인들은 법 없이 상식으로도 산다. 도둑질을 하지 말아야 하며, 사람을 해치지 않는 일,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 어른을 공경하는 일, 나라에 충성하는 일 모두 상식(常識)이다.
그러나 요즘의 법은 상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초들은 알 수 없는 아주 높은 형이상학 속에 기거(寄居)한다. 아주 높은 학문이어서 우리 민초들이 접근하기 어렵고, 어렵기 때문에 돈과 권력의 도움 없이는 다가갈 수 없는 고귀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법이 상식일 수 없는 위치에 있음을 종종 경험하는 일이 잦다.
우리는 근래 판사나 검사들의 요상한 구형(求刑)이나 판결을 구경하곤 한다. 특히 MBC 관련 소송에서 조사 자체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판검사들. 그리고 민주당 천모 의원의 여식(女息)이 내린 판결 같은 데서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면 인정할 수 없는 몰상식(沒常識)을 본다.
이미 좌파 변호사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민변’이라는 것은 주지된 사실이지만, 국가공무원인 판검사들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관에서 거리가 멀어졌음을, 우리는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좌익빨치산 출신 죄수를 양심수라 부르거나, 군대 입대 거부자를 양심에 따른 입대 거부로 판결하는 따위,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를 사형시키지 말자는 것도 모두 일반 상식에서 벗어난 판결이요, 주장이다.
나 역시 이적단체(利敵團體)로 이름난 전교조와 싸우다가 그들의 공판투쟁에 걸려 법정에 선 일이 있다. 그때 어느 1심 판사의 판결이 지금도 분노를 일으킨다.
“피고의 원고(전교조 교사)에 대한 모욕행위는 선량한 교사의 명예를 짓밟은 것으로 검사의 구형(벌금형)보다 더 강한 처벌을 받을 만하다.”
아무리 전교조 교사들의 비인간적인 행위와 착한 학생들과 교사들, 학부모님들을 보호하기 위한 싸움이요, 글이라고 하여도 그 판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만약 그 판사가 상식(常識)이 통하는 법을 생각하였다면, 판결의 내용은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도 5년 전 내가 겪은 상황은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좌파 판검사들은 대한민국의 상식을 뒤집는 구형(求刑)과 판결을 내리고 있다.
법의 판결은 우리 사는 세상의 결론을 장식한다. 너는 벌금, 너는 감옥, 너는 죽음이라는 결론.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결국 김정일의 적화통일전략에 도움이 되는 행위라면, 이는 반역행위이다. 판결은 인간이 행하는 가장 적극적인 의사(意思) 표현이기 때문이다.
2500만 동포를 노예로 삼고, 300만을 굶겨죽이는 북한 공산사회주의 세상. 그 김정일에 대한 도움을 주는 반역성을 대한민국 판검사들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세상의 선악을 판가름하는 해태의 주인들이 이 반역으로 하여 해태의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해태란 결국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는 어쩌면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