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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심전도 등 몇 가지 검사를 한 뒤 “심장 혈관에 문제가 있으니 빨리 큰 병원에 가라”고 권했다.
그는 태어날 때 심장 박동에 불필요한 전기회로가 있어(WPW 증후군) 부정맥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10년 전 문제의 회로를 제거한 뒤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런 경험이 있던 차에 심장병이란 말을 들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로 근처 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 응급실 의사는 “심장병이 있으니 정밀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일이 바빠 동네 의원에서 두 달간 약물치료를 받았는데 차도가 없었다.
지난달 24일 결국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이 병원 심장내과 김효수 교수는 “심장 혈관이 좁아졌을 때 발생하는 협심증 증세가 있고 좌심실 움직임이 좋지 않다”며 입원치료를 권했다.
1 김효수 교수가 심혈관 조영술로 확인된 심장 상태와 스텐트 삽입 계획을 환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 교수 뒤로 최동현 전임의와 황세희 기자. 2 시술 전날, 입원실에 회진 온 김 교수가 환자에게 성공 가능성이 90%쯤 된다며 안심시키고 있다. 3 김 교수가 왼쪽 심장 동맥을 넓히는 데 성공한 뒤 화면으로 확인하고 있다. 4 시술이 끝나자 전임의·간호사 등 의료진 5명이 마무리를 하고 있다. [사진=이상원 프리랜서] | |
#1 가슴 답답해 병원 입원
3일 오후, 김씨는 서울대병원 92병동에 입원했다. 키는 1m71.8㎝, 체중은 94㎏으로 체질량 지수(BMI,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것)가 31.8인 고도비만이었다. 이상적인 몸무게(68㎏)보다 훨씬 많이 나갔다.
“언제부터 뚱뚱했나요?”
“서서히 진행한 것 같아요. 기름진 고기는 멀리하고 있지만 간식을 즐기고 운동을 거의 안 하고 살았습니다.”(김씨)
잠시 후 김 교수의 회진이 시작됐다. 김 교수가 “혈관이 많이 좁아진 것 같은데 평상시 불편한 점은 없었느냐”고 묻자 김씨는 “딱히 불편한 점은 못 느꼈고 좀 무리한다 싶으면 체한 듯 답답한 증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심장 혈관과 운동 상태를 보면서 막힌 혈관을 뚫어야 하는데 확률이 90% 정도인 것 같다”는 김 교수의 말에 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가 “입원해서 시술을 받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그는 “다 잘될 것 같아 떨리지 않다. 원래 낙천적인 편이다”고 말했다.
#2 최첨단 기법으로 수술
간호사가 혈압을 체크하고 가슴엔 심장 박동을 재는 실시간 심전도를 붙였다. 카테터(혈관에 들어가는 가는 관)는 오른쪽 허벅지 동맥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혈관을 타고 심장 혈관에 도달한 카테터를 통해 혈관을 넓혀주는 시술을 하려는 것이다. 김 교수를 보조하는 의료진은 카테터가 들어갈 주변을 열심히 소독하고 필요한 기구를 준비했다.
이윽고 11시가 되자 김 교수가 시술대에 자리를 잡았다. 본격적인 시술이 시작된 것이다. 김 교수의 손길이 바빠지면서 간호사·전임의 등 김 교수를 보조하는 5명의 의료진도 손길이 바빠진다. 환자의 심장 상태를 잘 보여주기 위해 주입되는 조영제를 수시로 갈아주고 김 교수의 지시에 맞는 기구를 준비한다.
화면을 통해 심장 상태를 관찰한 김 교수는 환자에게 “초음파로 볼 때보다 심장 혈관이 더 많이 막혔다. 혈관 세 개 중 한 곳은 아예 막혀서 뚫을 수 없는 상태고 나머지 두 곳은 가늘게 좁아져 있다. 좌심실 움직임이 좋지 않다”고 설명한다.
환자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냐”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김 교수는 “혈관 중간에 길을 내고 스텐트(stent·그물망)로 넓혀줘야 하는데 혈관이 딱딱하게 굳어 있어 길 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왼쪽 심장 혈관이 뚫릴 확률은 50% 정도”라고 설명한다. 환자는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한다.
카테터가 왼쪽 심장에 위치하자 김 교수가 풍선을 넣고 압력을 가해 혈관을 넓혀 본다. 하지만 딱딱해진 혈관은 별 반응이 없다. 김 교수는 전임의에게 절단기(cutter)를 달라고 요구한다. 혈관에 길을 열어주기 위해 막힌 혈관 내부를 절단기로 일부 제거하기 위해서다.
다시 절단기가 장착된 카테터로 혈관 길을 넓힌 뒤 풍선에 압력을 주입한다. 이번에는 성공이다. 연이어 넓힌 혈관을 고정시키는 스텐트가 2개 삽입됐다.
오른쪽 심장 혈관 역시 같은 방법으로 2개의 스텐트가 장착됐다.
#3 불과 1시간 만에 수술 성공
수술에 걸린 시간은 1시간도 채 안 됐다. 만족스러운 시술 결과를 얻은 김 교수가 “다행히 스텐트로 혈관은 넓어졌다. 가슴이 따끔거리죠”라고 묻는다. 김 교수는 이런 증상이 3~4시간은 족히 지속될 거라고 설명하며 환자를 안심시켰다.
스텐트 시술을 한다고 반드시 병이 완치되는 것은 아니다. 환자의 10%는 재발한다. 그래서 환자는 시술 후 2년간 집중 관리를 받는데 통상 시술 후 9개월과 2년이 되는 시점에 심장 조영술로 재발 여부를 확인한다.
“혈관 상태가 왜 그렇게 나빴을까요.”(환자)
“30년 이상의 흡연을 했고 심한 비만인 점, 혈관 노화가 이미 진행된 50세라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심장 혈관을 막은 것 같아요.”(김 교수)
하지만 심장 질환에 있어 무엇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체질이다. 김 교수는 “혹시 가족 중에 심장 질환으로 돌아가신 분은 없느냐”고 질문했다. 김씨는 “선친이 67세 때 낮에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선친은 저와 달리 아주 말랐다”고 회상한다. 김 교수는 “날씬하셨기에 67세까지 사신 거다. 환자분처럼 뚱뚱했으면 더 일찍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위로한다. 김 교수는 “환자분도 이번에 시술받지 않았으면 조만간 심장마비 위험이 왔을 것이다. 이제부턴 심장 혈관 건강을 지키기 위해 금연은 물론 음식 조절과 운동을 통해 체중 감량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씨는 5일 오후 1시쯤 한 달 후 외래 검진을 예약한 뒤 가벼운 마음으로 퇴원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심장병 남성 40세, 여성 50세면 정밀검사 받아야
성인 심장병은 국부(國富)와 비례한다. 고칼로리 식사와 운동 부족이 혈관에 노폐물을 쌓아 놓기 때문이다. 이미 서구인의 질병으로 알았던 성인 심장병(협심증·심근경색증)이 우리나라 사망 원인 2위로 올라섰다.
조기 발견이 힘든 것도 문제다. 심장 혈관이 70% 이상 막힐 때까지 불편한 증상이 없다. 계단을 오르거나 무거운 물건을 드는 등 힘든 일을 해야 가슴을 죄는 통증이 발생한다. 일상생활이 힘들어 병원을 찾았다면 심장 혈관의 90% 이상 막혀 있다고 봐야 한다.
대한순환기학회는 2005년 1년간 40~70세 3253명을 대상으로 심장 건강을 평가했다. 그 결과, 69.8%가 ‘심장 5적’으로 불리는 심장병 위험인자 다섯 개 중 한 개 이상을 갖고 있었다. 심장 5적이란 고혈압, 당뇨병, 복부 비만, 높은 중성지방, 낮은 HDL(좋은 콜레스테롤) 등 심장 혈관을 손상시키는 인자들이다.
일단 심장병이 발생했다면 남자 40세, 여자 50세 이후부터 심장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여성의 검사 연령이 10년 늦은 이유는 여성호르몬이 심장을 보호해 주는 덕분이다. 실제 여성 환자의 90% 이상이 폐경 이후에 나타난다.
검사상 혈관이 일부 막혔을 땐 스텐트 시술을, 완전히 막힌 경우엔 다른 부위의 혈관을 떼어내 대체하는 혈관 우회수술을 한다. 최근 조기 검진과 치료술의 발전에 힘입어 심장병 환자의 사인은 심장질환이 아닌 ‘암’으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시술 효과가 우수하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