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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생존의 힘, 용서는 발전의 힘

화이트보스 2009. 3. 28. 10:29

복수는 생존의 힘, 용서는 발전의 힘



◇ 복수의 심리학/마이클 맥컬러프 지음/김정희 옮김/400쪽·1만6000원·살림

2002년에 러시아 여객기가 스위스 민간 관제소의 관제사 피터 닐센의 실수로 화물기와 충돌한 뒤 폭발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이 비행기에 탄 아내와 두 아이를 기다리던 러시아 건축가 비탈리 칼로예프는 2004년 스위스 취리히 근교에서 닐센을 죽였다.

심리학자들은 복수심이 칼로예프처럼 고통받는 사람의 분노가 표출된 심리적 질병이라고 말한다.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복수가 악하거나 성격 이상인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비정상적 행위라는 기존 학설에 이의를 제기한다.

저자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인간 행동도 동물과 다를 바 없이 생물학적 진화 법칙의 결과라는 진화생물학을 내세웠다. 복수는 인류의 조상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며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해온 보편적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다.

복수가 인간 본성이니 복수를 정당화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저자는 용서도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이라고 말한다. 복수와 용서가 본성으로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면 복수보다 용서 본능을 자극하는 사회제도와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복수가 인간 본성이라니. 설명을 들어보자. 저자는 인류의 조상들에게 복수는 한 번 공격을 가했던 개체들로부터 두 번째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사회심리학의 한 실험이 이런 가설을 뒷받침한다. 남자 대학생 참가자들이 에세이를 쓰고 연구자가 고용한 다른 사람이 이 에세이를 평가하면서 실제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참가자에게 모욕적인 평가를 줬다. 참가자들은 다음 날 버튼을 통해 평가자에게 다양한 강도의 10가지 충격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참가자 절반에게는 나중에 평가자와 역할을 바꿔 실험할 것이라고 알려줬다. 보복 위협이 없다고 믿은 참가자들만이 강한 충격을 줬다.

복수는 잠재적 가해자들이 공격 행위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법과 제도가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피해를 당하고도 복수하지 않는 사람은 만만한 사람으로 인식됐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들은 미국 남부 백인이 동북쪽 백인보다 총기 폭력의 비율이 높은 이유가 남부에 정착한 백인들이 목축을 생계 수단으로 삼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농부에 비해 목동들은 생계수단인 가축을 도둑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도둑질에는 반드시 복수한다는 의식이 강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욕설을 들은 뒤 반응하는 실험에서도 남부 참가자가 북부 참가자보다 더 공격적이었다.

복수는 집단에 협력하지 않는 구성원을 벌하는 데도 유용했다. 복수는 인간 집단이 다른 집단과 경쟁하면서 집단 사회를 유지하는 데 유용한 진화론적 선택이었다.


용서는 인간이 협력을 통한 사회 집단으로 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저자는 유전적으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복수 사례가 드물다고 말한다. 다윈의 자연선택론으로 생존하는 것은 실제로는 유전자인데, 친족에 대한 복수는 자신과 관련된 유전자를 없애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친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복수로만 일을 해결하려면 얽히고설킨 복잡한 집단 내 사회관계를 복수할 때마다 깨야 하는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 개인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할 때마다 협력 관계에 있던 파트너를 적으로 삼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해를 입힌 사람과 나빠진 관계를 바로잡는 것이 장기적으로 생존에 유리하다.

저자는 상대를 용서해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더 많은 이득을 얻는 용서 본능이 진화해 오늘날 인간 종을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1954년 미국의 사회심리학 연구는 이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연구자들은 캠프에 온 소년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서로 적개심을 갖게 만든 뒤 두 집단이 함께 협력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적개심을 품었던 소년들이 친구가 되는 과정을 증명했다.

다양한 심리 실험 결과와 복수, 용서의 사례가 퍼즐처럼 제시됐다. 원제 ‘Beyond Revenge’(2008년).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