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천석·주필
같은 나라를 상대한 전쟁이라도 아버지 조지 H W 부시가 주도했던 91년 제1차 이라크전쟁에 대한 평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후(厚)하다. 동맹국(영국·프랑스)들은 뭉쳤고, 옛날의 적국(소련·중국)은 미국의 행동을 눈감아 주었고, 현재 적국과 같은 이슬람국가(이집트·시리아·파키스탄)까지 군대를 파견해 다국적군 깃발 아래서 미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다.
그러나 그 부시도 훗날의 비판을 완전히 비켜가지는 못했다. 91년 이라크전쟁 승리로 미국의 위신이 아랍권에서 한껏 높아진 것을 지렛대 삼아 미국의 화근(禍根)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뿌리를 미리 잘라버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만일 그게 성공했더라면 아랍권의 미국을 향한 증오가 지금 같지 않았을 테고, 알카에다의 9·11 테러 그리고 9·11의 연장선상에서 아들 부시가 무리하게 제2차 이라크전쟁으로 달려가는 일도 없었으리라는 가정(假定)이다. 카터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거쳐 요즘은 미국 외교의 현인(賢人)으로 대접받는 브레진스키의 말이다.
사실 잘못을 저지른 것을 그 즉시 깨닫기도 쉽지 않다. 아들 부시의 전쟁처럼 뒤탈이 곧 나타나는데도 그렇다. 그러니 먼 앞날의 후유증을 미리 내다보고 당시에 일을 단단히 챙긴다는 건 그보다 몇 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지도자 노릇이 힘든 것이다.
얼마 전 일본 교토(京都)에서다. 20년 만에 다시 찾은 교토는 그때의 교토가 아니었다. 일본 제1의 역사도시는 시든 꽃처럼 향기와 생기(生氣)를 잃어가고 있었다. 엔(円)화 강세 때문에 외국 관광객이, 불경기로 국내 관광객 숫자가 크게 줄기도 했다. 그러나 반드시 그것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숙소 앞 골목, 버스, 절과 문화유적지, 식당, 박물관 등 어디서나 마주치는 얼굴은 온통 노인들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70대 후반에서 80대에 걸친 연배들이었다. 어린 얼굴, 젊은 모습이 그리워질 정도였다. 노인의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노인 도시의 버스는 느릿느릿 움직였다. 그제서야 '아, 노령화(老齡化)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실감이 왔다.
20년 전 일본의 정치인·관료·언론인·학자·소설가·시인·배우·극작가들은 한 입으로 노령화시대의 도래(到來)를 이야기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일본은 생산자의 나라에서 연금(年金)생활자의 나라로 변해 세계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들 했다. 당시 영국 언론인이 쓴 '해는 다시 진다(The sun also sets)'는 책이 화제였다. 가라앉는 노인의 나라 일본이 주제였다. 그때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오늘 우리와 엇비슷한 11% 부근이었다. 노령화의 발걸음은 다가오는 군화(軍靴)소리만큼 가차 없다. 일본의 노령화 비율은 80년대 말 11%, 95년 14.5%, 2007년 21.5%로 차올랐다. 2008년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10.3%, 이게 2030년이면 현재의 일본보다 더 높은 24.3%로 치솟는다.
2009년 노인의 도시 교토에선 2.9명의 젊은이가 노인 1명을 부양한다. 젊은이들 등이 휘고 도시가 활기를 잃을 법하다. 2030년 한국 젊은이들 어깨에 오늘 일본 젊은이가 지고 있는 꼭 그만한 무게의 짐이 얹혀진다. 일본보다 낮은 출산율, 일본보다 더 빨리 늘어나는 기대수명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노인의 나라로 더 성큼 다가설 게 틀림없다. 준비 없이 맞는 개인의 노년처럼 대책 없이 들어서는 한 나라의 노인 시대 역시 비참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태평(太平)한 나라 대한민국에선 무릎 높이로 차오르는 노령화의 물결 앞에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놀란 표정을 짓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 다들 더 급한 용무가 있다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고 어디론가 걸음을 재촉한다. 지도자다운 지도자 가뭄인 이 나라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어디 노령화 시대의 임박(臨迫)뿐이겠느냐만 어둑어둑한 황혼을 향해 대책 없이 갈지(之)자 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마저 갑갑하게 만든다. 이러다 우리는 불황의 터널 끝을 빠져나오자마자 노인 나라의 기운 햇살과 마주하게 되는 건 아닐까.
'경제,사회문화 > 사회 ,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산 물 을 마신다 (0) | 2009.03.29 |
---|---|
강희락 "놀고먹는 경찰서장 다 바꾼다" (0) | 2009.03.29 |
살아있는 권력’에 비겁한 검찰 (0) | 2009.03.28 |
아프간 파병과 國益 (0) | 2009.03.28 |
방송대’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0) | 2009.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