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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권력’에 비겁한 검찰

화이트보스 2009. 3. 28. 10:37

살아있는 권력’에 비겁한 검찰



검사는 무서운 존재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아본 사람들은 안다. 아무리 강심장인 사람도 ‘고양이 앞의 쥐’가 될 수밖에 없다. 지위와 명예가 높아도, 돈이 많아도, 언변이 좋아도, 나이가 많아도 소용없다. 조사를 받는 동안 수갑과 구속, 교도소 같은 단어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이렇게 불평등이 심한 갑()과 을()의 관계도 별로 없을 것이다.

권력에 약한 검찰, 정권도 공동 책임

그러나 이곳에도 예외는 있다. ‘살아있는 권력’이다. 최고 권력자 및 정권 실세()와 그 친인척, 이들에게 돈을 주고 권력을 빌린 기업인 등은 검찰의 칼을 비켜가거나 방향을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헌정사는 검찰 수사 측면에서 보면 전 정권과 현 정권의 대립의 역사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뀌면 예외 없이 전 정권의 실세들이 줄줄이 교도소로 끌려갔다. 목하 지금도 그렇다.

국민의 이목이 노무현 정권의 재정적 후원자 역할을 했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입에 쏠려 있다. 그는 여야 정치인과 각 분야 고위 공무원에게 ‘5000원’ ‘5000원 두 장’씩 줬다며 검사 앞에서 그 이름들을 토해내고 있다. ‘5000원’은 5000만 원, ‘5000원 두 장’은 1억 원을 뜻한다. 알선수재 혐의로 먼저 구속된 노건평 씨도 박 씨 돈의 정거장 역할을 한 혐의가 추가로 드러났다. 노 전 대통령까지 소환을 받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은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성이 생명이다. 역대 검찰총장 치고 그 점을 강조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어느 대통령이나 검찰 수사에 간섭하겠다고 말한 경우도 없다. 그런데도 검찰은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원인과 책임이 검찰에만 있는 걸까, 정치권력의 영향도 있는 걸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지기 어렵지만 상관관계는 분명히 있다.

양쪽 모두에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본다. 역대 정권과 당시 요직을 차지한 검사들의 출신지역을 살펴봐도 그렇게 판단된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는 TK(대구 경북), 김영삼 정권 때는 PK(부산 경남), 김대중 정권 때는 호남, 노무현 정권 때는 호남+PK가 검찰 요직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많을 때는 30∼40%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뿐 아니라 상당수 국민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마저 생겼다.

최고 권력자가 동향 출신 검사들을 요직에 앉히려는 이유는 뭘까. 대선자금, 정치자금을 비롯해 친인척 비리, 정권 실세들의 부정부패 같은 문제에 자신이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적당히 잘 처리해줄 것으로 믿는 기대심리로 볼 수 있다. 인사에서 우대받은 검사들은 권력자에게 보답하려고 애쓰기 십상이다. 전 정권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수사 굿판이 새 정권 초기에 벌어지는 이유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뒤늦은 ‘박연차 수사’ 일종의 직무유기

검찰은 이제부터라도 죽은 권력보다 살아있는 권력에 더 크게 눈을 떠야 한다. 살아있는 권력을 감시하고 수사하는 데 역점을 둬야 정치발전도 가능하다. 현 정권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부패를 알면서도 다음 정권 출범 후로 수사를 미룬다면 비겁한 일이다. 이것은 정치적 중립도, 수사의 독립도 아니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왜 이제야 벌어지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검찰이 노 정권 당시 박 씨의 행각을 알아챘으면서도 권력한테서 올 후환이나 검찰 인사에 대한 박 씨의 영향력이 두려워 눈을 감고 있었다면 중대하고 비겁한 직무유기다. 대검 중앙수사부와 전국 각 지검의 특별수사부가 전혀 몰랐다 해도 큰 문제다.
야당은 ‘표적 수사’니 ‘야당 탄압’이니 하며 검찰 수사를 비난한다. 한나라당도 과거 야당 시절엔 같은 소리를 했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주저 없이 수사했다면 지금 그런 소리를 들을 리 없다. 검찰은 돈과 권력의 악취 나는 관계를 뻔히 보면서도 방치해 왔다는 점에서 박연차 사건의 방조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