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가 총리에 취임한 1959년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400달러였다. 자원 하나 없는 척박한 땅이라 마실 수돗물조차 이웃 나라에서 사와야 했다. 그나마 식민종주국 영국의 원조·교역에 80%를 의존하던 싱가포르 경제는 1960년대 중반 영국군이 철수하면서 공황으로 빠져들었다. 이웃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와의 교역도 격감했다. 싱가포르가 붙든 구명줄은 '개방'과 '수출'이었다.
▶싱가포르는 20년 만에 동남아 최고 무역허브로 성장했다. 세계 다국적 기업과 손잡은 수출 산업화전략이 들어맞았다. 다국적 기업들이 동남아에 수출하는 화물 보따리를 싣고 와 풀어놓은 뒤 동남아 생산기지에서 만든 상품을 끌어모아 세계로 재수출하는 연결고리가 됐다. 싱가포르는 GDP 두 배가 되는 상품을 파는 수출대국이다. 5000여 외국기업과 220여 다국적기업의 아태지역본부가 서울 면적보다 조금 큰 싱가포르에 들어와 있다.
▶싱가포르는 1997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외환위기도 별 탈 없이 넘겼다. 당시 리콴유는 "싱가포르는 아시아적 가치, 아시아적 생산모델의 선두주자"라며 IMF를 향해 "아시아적 모델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큰소리쳤다. 그도 이번엔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경제체제를 지닌 싱가포르가 수출이 빠르게 줄면서 경제 전체가 주저앉고 있다"고 했다. 내수 기반 없이 수출에만 의존하는 성장모델의 위험성,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