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목적은 외부의 군사 위협으로부터 체제를 보위하고 경제를 살리는 데 있다. 이러한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대미 관계 정상화의 첫 번째 목적이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을 최대의 위협을 주는 나라로 간주한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이나 공갈을 막는 억지력으로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것이다. 유사시 주한미군을 전략표적으로 삼거나 일본과 한국을 공격한다고 위협함으로써 미군의 한반도 증원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북한이 실제로 미국의 군사적 공격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평가에 기초한다.
한미 연합훈련을 ‘북침을 위한 전쟁연습’이라고 주장하며 수시로 한미연합사령부의 해체를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북한의 우려를 현실화한 것이 9·11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 이라크 후세인 정권에 대한 선제공격이었다.
미국이 이들 국가는 ‘불량국가’이기 때문에 정권교체를 위한 군사행동을 표명했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100만 대군을 자랑하던 이라크 공화국 군대가 불과 40여 일 만에 미군에게 점령되는 상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김정일에게는 미국의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다.
북한은 2003년 4월의 미중북 3자 회담에서 핵무기 보유사실을 고백하며, 직접 대화를 주장한 것도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구실로 이라크를 침공한 데 따른 충격에서 비롯됐다. 즉, 이라크의 재판(再版)이 될까 봐 두려워한 나머지 핵무기 보유를 은연중에 내비침으로써 미국에 대해 은근한 위협을 가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대미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또 다른 목적은 1990년대 들어 자체 능력으로 회생이 불가능한 ‘경제 살리기’에 있다. 60년대부터 추진해 온 군사·경제 병진정책은 북한의 경제 성장을 둔화시켰다. 80년대 후반의 세기적 대변혁은 해외시장의 상실을 의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0년대의 연속된 자연재해는 농촌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북한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북한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간 또 하나의 요인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이었다. 미국은 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의 책임을 물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경제 제재를 가했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북한 상품의 해외 수출이 불가능했고 경제 회복에 필요한 자금을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할 수도 없었다. 북한으로서는 ‘우리식 사회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자력 갱생에 자립적 민족 경제 건설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절실했다.북한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열쇠를 미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북한은 다양한 방법으로 미국과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과 관계 정상화를 요구했으나, 제네바합의 파기 이후 북한 정권을 불신하는 부시 행정부는 거부했다.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나서게 하기 위한 협상카드를 개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6년부터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고, 핵 실험을 단행한 것과 남한에 대해 새로운 전쟁 위협을 가해 온 것도 모두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던 북한이 미국과의직접 대화를 통해 난국을 극복하려는 술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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