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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북한의 ‘설 명절’(음력설)

화이트보스 2009. 4. 24. 20:02

<53>북한의 ‘설 명절’(음력설)
김일성·김정일 생일에 밀려 ‘썰렁’

북한은 음력설·정월대보름·추석을 3대 민속명절로 지정해 지내고 있다. 민속명절은 제도화된 휴일이기보다 그때마다 상황에 따라 당국이 지정한다. 음력설은 1967년 공산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나는 것으로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의 지시로 철폐되고 양력 설 하나만 허락했다. 이후 남북 교류가 증가하면서 89년에 음력설이 민속명절로 지정됐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음력설을 쇠기 시작한 것은 김정일이 “음력설을 양력설보다 더 크게 쇠라”고 지시한 2003년부터다. 이에 따라 달력에도 공휴일을 의미하는 붉은 글자로 표시돼 있다. 공식명칭은 ‘설 명절’이고, 사흘을 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음력설 지내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양력설을 지내는 데 익숙해져 있다.

최근에는 행정기관의 홍보와 통제 등으로 음력설을 쇠는 주민들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음력설보다 ‘민족 최대의 명절’로 규정된 김정일 생일(2월 16일) 준비에 치중하기 때문에 특별히 명절다운 분위기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올해의 경우 음력설 9일 뒤가 김정일 생일이기 때문에 더욱 썰렁하다.

남북이 분단된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북한 주민들의 설을 쇠는 모습은 남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성껏 마련한 음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친지와 이웃의 어른들을 찾아 세배한 뒤 세뱃돈을 받고, 형편에 따라 떡국과 약밥 등 설 음식을 준비해 내놓기도 한다. 북한에서의 떡국은 지방마다 차이가 있지만 인절미라고 하는 절편을 썰어서 국에 넣어 먹는다.

하지만 경제난이 심해지면서 설 풍경도 예전 같지 않다.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어르신들 댁이나 친구집에 놀러가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설 음식을 준비하지 못하는 집도 있고, 지방이나 도시 주변으로 갈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한다.음력설에 북한은 각 지방마다 자체 민속경기와 윷놀이·농악무·민족음식 품평회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씨름경기를 개최하는 등 명절 분위기를 돋우기도 한다.

청소년·학생들은 김일성 광장과 주체사상탑, 전승광장 등 여러 곳에서 팽이치기와 연날리기·줄넘기·썰매타기 등의 민속놀이를 즐긴다. 젊은이들은 모여 술을 마시거나 주패(카드)놀이로 명절을 보낸다. 그러나 막상 대다수 주민들은 민속명절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설 명절이라고 고향을 찾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사는 곳에서 설을 쇠고, 버스와 기차 등 교통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귀성전쟁’이란 것 자체가 없다.

북한 특유의 설맞이 풍습도 있다. 가정마다 걸려 있는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에 먼저 절하는 것은 우리에게 낯선 풍경이다. 또 새벽부터 사람들이 전국 각지의 김일성 동상을 찾아 꽃을 바치고, 각종 정치 행사에 동원되는 것도 별다르다. 북한에서 주민들이 진짜 명절로 여기는 것은 명절의 중요성과는 상관없이 배급을 많이 주는 날을 최대의 명절로 꼽고 있다.

양력설(1월 1일)과 김정일·김일성 생일(2월 16일·4월 15일) 그리고 정권수립일(9월 9일)·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이다. 이들 5대 명절에는 특별배급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김일성·김정일 생일에 배급이 가장 많이 나오기 때문에 민족 최대의 명절로 기다려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