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溫故知新

제1話 溫故知新 ⑮주한미군 감축과 `인계철선'

화이트보스 2009. 5. 18. 20:00

제1話 溫故知新 ⑮주한미군 감축과 `인계철선'

이재전 예·육군중장·前 전쟁기념사업회장·現 한자교육진흥회장

1971년 2월6일 한·미 양국 정부는 주한미군 감축 문제 및 감군(減軍) 보완책인 한국군 현대화 계획 등에 완전 합의했다고 서울·워싱턴에서 동시 발표했다.
미국의 주한 미 지상군 감축 방침에 따라 70년 7월 한·미 군사실무회담이 처음 열려 이 문제를 논의한 지 200여 일 만의 일이었다. 당시 양국 간 합의사항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71년 6월 말까지 미 보병 7사단 철수를 중심으로 주한미군 1만8000명을 감축하고 이에 따른 병력 재배치 계획의 일환으로 서부전선의 미 보병 2사단을 후방으로 돌려 북한군과 직접 대치하는 휴전선의 지상 방어 임무는 한국군이 전담토록 한다.

둘째, 미국은 한국군 현대화 5개년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약 15억 달러의 군사원조·군사차관 등을 제공키로 한다.

셋째, 양국은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 공약을 분명히 하고 한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을 분석·평가하기 위해 양국 정부의 외무·국방관계 고위 관리가 참석하는 연례안보협의회의(SCM)를 개최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미 서부전선의 미 2사단은 65년 7월1일 미 제1기갑사단과 교체된 이래 지켜오던 18마일(28.8㎞)에 달하는 비무장지대(DMZ)의 방어 진지를 한국군에 넘겨주고 후방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미 2사단 사령부는 경기도 문산(汶山)에서 동두천(東豆川)의 미 7사단 자리로 이동했다. 이로써 서부전선의 미 2사단 작전지역이 한국군 1사단에 최초로 인계됐다.

미 2사단과 한국군 간의 인계·인수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돼 71년 3월 말까지 미군은 휴전선 일대에서 철수를 완료하고 대간첩 작전지휘권을 비롯한 모든 지역의 방어 책임을 한국군에 이양했다. 이로써 한국군은 휴전 18년 만에 처음으로 155마일 휴전선 전체의 방위 임무를 맡게 됐다.

다만 예외가 있었다. 바로 판문점(板門店) 주변 500m의 경비는 종전대로 미군이 담당토록 했다. 판문점 주변에는 이곳에서 열리는 유엔군·공산측 간의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을 보호하기 위해 1개 중대(180명)의 미군 경비 병력이 잔류했다. 바로 이 공동경비구역(JSA) 경비중대가 이른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서 희생된 보니파스 대위의 이름을 본뜬 일명 `보니파스 중대'다.

미군이 서부전선을 한국군에 넘기면서도 JSA에 출입하는 철책선 입구와 이를 감시하는 두 개의 GP(Guard Post) 초소는 미군이 계속 관할토록 한 것은 주한미군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미 국방부는 이것을 `인계철선'(引繫鐵線·trip wire)이라고 불렀다.

인계철선은 지뢰·수류탄 같은 폭탄과 연결해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하는 부비 트랩(설치형 폭약)의 폭발 장치다. 그래서 한반도에서의 인계철선은 북한이 공격할 경우 자동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뜻하기도 한다. 주한미군의 존재 의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유사시 세계 제일의 군사강국인 미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하는 인계철선의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는 결정적 억제력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그런데 지난 3월18일 워싱턴 한국 특파원단의 요청으로 이뤄진 간담회에서 미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고위 관리(익명 요구)가 주한미군 재배치 논의와 관련,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고위 관리는 “미군의 후방 이동은 인계철선 역할을 피하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단호히 반박했다.

“인계철선은 20~30년 전에나 적용되던 얘기다. 미군이 먼저 죽는 것을 전제로 방어가 시작된다는 말이지만 그런 용어를 이제는 안 쓰기 바란다. 어차피 현재 지상군의 95%는 한국군이다. 따라서 대북 전쟁 억지력은 한국군에서 나온다. 한국군은 이제 세계적 수준이다.”

한·미 연합군의 `작전 계획 5027'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은 일주일 내 미 본토에서 69만여 명의 지상군과 5개 항모 전단을 파견해 반격에 나서도록 돼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자체 전력보다 유사시 막대한 후속 전력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한·미동맹의 요체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이같은 주한미군의 역할은 90년대부터 미국 내부에서 비판을 받아 왔다. 특히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반미 감정이 불거지자 미 정가에서 3만7000명의 주한미군은 `볼모'에 불과한 것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따라서 이번 발언은 한국의 방위를 위해 미군을 먼저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식 천명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다행스러운 점은 “후방으로 이동해도 미군의 자동 개입은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에 이 고위 관리가 “결국 전쟁이 일어나면 미군도 죽는다. 따라서 자동 개입이나 안보 보장에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답한 대목이다. 그러나 미 7사단 철수 및 2사단 재배치, 그리고 인계철선 역할이 30년 만에 또다시 중대한 변화를 맞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2003.03.26 정리:김당 오마이뉴스 기자 dangkim@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