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溫故知新

제1話 溫故知新<64>내가 겪은 6·25 (10)

화이트보스 2009. 5. 18. 20:18

제1話 溫故知新<64>내가 겪은 6·25 (10)

이재전 예·육군중장·前 전쟁기념사업회장·현 한자교육진흥회장

6·25 개전 초기의 패전 원인은 크게 전략적 요인과 전술적 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미국은 당시 ‘애치슨 선언’이라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방위구상을 통해 한국이 미 태평양지역의 방위권에서 제외됐다는 발표를 함으로써 소련과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전쟁을 도발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리라는 오판을 하게 했다. 또 당시 유엔도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세계 일곱 번째의 위험지역으로 안이한 판단을 하고 있었다.

당시 미 극동군의 주력은 제8군이었다. 그런데 사령부는 일본 도쿄(東京)에 위치하고 주력부대들인 제7사단은 홋카이도(北海道), 제1기병사단은 간토(關東)지역, 제25사단은 간사이(關西)지역, 제24사단은 규슈(九州)지역에 배치돼 주로 전후 일본 점령군으로서의 역할을 맡았고 평시체제라 부대와 병력을 모두 감소 운용해 정상적인 전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은 인민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해 남한에 500명 규모의 군사고문단만 남겨놓고 모두 철수한 상태였다. 특히 한국은 지형상 전차 운용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단 한 대의 전차도 주지 않았다. 이에 비해 적은 240여 대의 전차를 앞세워 물밀듯이 쳐내려왔다. 더구나 미국은 1950년 6월18일 덜레스 특사가 내한, 38도선 시찰까지 했으나 불과 1주 후에 벌어진 전면전 가능성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우리 측 전쟁지도부인 신성모(申性模)국방장관은 외국 상선을 타본 경험밖에 없는 비군사 전문가로 피아(彼我) 전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채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같은 허장성세(虛張聲勢)로 국민에게 그릇된 안보의식을 심어주었다. 또 50년 4월 국회는 군사정보비를 약 3분의 1로 삭감, 북한 내 공작·정보수집 등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전술적 요인으로는 우선 50년 6월9일, 즉 전쟁 발발 2주 전에 지상군의 주력인 사단의 사단장급을 전면 교체, 부대 장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전쟁을 맞은 것이다.

또 육군본부 지시에 의해 예하 모든 부대는 주말의 외출·외박, 휴가 등을 실시해 개전 초기에 각 부대는 가두방송을 통해 장병들을 비상 소집해야 했다. 또 그런 가운데 군 수뇌부는 6월24일 저녁 장교식당 준공 축하연을 열어 한·미 양국군 고급장교들은 야심할 때까지 주흥에 젖어 작취미성(昨醉未醒)인 상태로 전쟁을 맞았다.

또 5월 총선 직후라서 모든 관심이 국회에 쏠려 5월 또는 6월 위기설이 정보계통으로 보고됐으나 묵살됐다. 이에 반해 북한은 6월10일 조만식(曺晩植)선생과 거물 간첩 이주하(李舟河)·김삼룡(金三龍)의 상호 교환을 제의하는 평화공세를 통해 우리 측을 기만했다.

이와 같은 무방비 상태에서 전쟁을 맞았기 때문에 국군은 전투다운 전투도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수도 서울을 사흘 만에 내주게 되고, 적이 서울에 입성한 직후 서울시경 소속 기마경찰대의 말발굽 소리를 적의 것으로 오인, 한강 인도교를 서둘러 폭파해 막대한 병력과 장비·물자가 적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문에 개전 당시 9만8000명의 병력이 3일 만에 2만2000명으로 급감하게 된다. 또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총사령관을 지낸 송호성(宋虎聲)장군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적 치하에 남아 있다가 납북됐다.

당시 한국군 인적 구성을 보면 일본 육사 출신을 주축으로 해 광복군·중국군·만군(滿軍) 경력자들로 이뤄졌는데, 정부는 일본 육사(49기)를 나와 전투병과가 아닌 병기장교로 근무해 실전에 어두운 채병덕(蔡炳德)장군을 육군 총참모장에 임명하는 우(愚)를 범했다.

바로 이런 요인들 때문에 정부는 소위 ‘조선해방 5주년 기념일’인 8월15일까지 통일을 완성하자며 평화공세를 편 적의 흉계를 간파하지 못했다. D-데이인 6월25일은 북한의 ‘50일 작전’의 종료일인 8월15일을 기준으로 역산(逆算)한 ‘정치적으로 결정한 날’이었는데도….

<정리=김 당 오마이뉴스 기자 dangkim@empal.com>

2003.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