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전 예·육군중장·前 전쟁기념사업회장·現 한자교육진흥회장
얼마 전 육군이 ‘사고예방 종합대책’을 각급 부대에 하달하면서 네 가지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시행한 것을 국방일보에서 읽은 적이 있다. 병사 간의 올바른 관계 설정을 재확인하고 구타 및 가혹행위, 언어폭력, 성군기 위반행위 금지 등을 일반명령화해 재강조한 행동강령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분대장을 제외한 병 상호 간에는 명령이나 지시·간섭을 금지한다’는 첫째 강령이다.
사실 이런 내용은 육군이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군인복무규율에 규정된 것이다. 현행 군인복무규율 제15조에 ‘군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구타·폭언 및 가혹행위 등 사적 제재를 행하여서는 아니되며, 사적 제재를 일으킬 수 있는 행위를 하여서도 아니된다’며 ‘지휘관 및 상관은 병영생활의 지도 또는 군기 확립을 구실로 구타·폭언, 기타 가혹행위가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부하를 지도·감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인의 계급은 이등병에서 대장까지 19개 등급인데 군에서는 계급이 높은 사람이 상급자 또는 상서열자(上序列者)가 된다. 그러나 상급자나 상서열자라고 해서 명령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명령권은 명령복종 관계에 있는 상관(上官)만이 갖는 것으로 군인복무규율이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병사가 자신의 계급 또는 서열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해서 하위 계급자 또는 하위 서열의 병사에게 명령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이 군인복무규율을 처음 작업하기 시작한 것은 1964년으로 건군 20주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그때만 해도 창군 초기에 마땅히 명문화되고 확립돼 있어야 할 건군이념이라든지, 국군의 사명, 그리고 군의 성격 등이 설정돼 있지 않거나 불명확한 채로 있었다. 그런 관계로 정예(精銳)군대를 육성하기 위한 기본이 되는 병영생활의 규범이 각 군 또는 부대별로, 심지어 해당 부대 지휘관 개인의 군대경험이나 배경·성격 또는 방침에 따라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매우 구구하게 실행돼 오고 있다.
이에 당시 김성은(金聖恩·특임·해병중장 예편)국방부장관은 이러한 실정을 간파해 “빠른 시일 내에 우리 국군이 지향해야 할 목표와 군인으로서 지켜야 할 정신적 자세, 그리고 병영생활 전반에 걸친 세부 규율 등을 제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역설하면서 국방부 내에 각 군의 고급장교로 구성된 군사제도연구위원회를 설치했다.
이들이 4개월여의 짧은 시간에 각고의 노력과 연구 끝에 군인복무규율 초안을 만들어 냈고, 이 초안을 가지고 일정기간 전군으로 하여금 시행케 한 후 최종적인 수정작업을 해 국무회의 의결과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66년 3월15일 대통령령 제2465호로 전군에 공포된 것이 오늘날 전군 장병들의 일상생활과 행동거지에 있어 규범으로 삼고 있는 군인복무규율의 기본서로 탄생한 것이다.
당시 나는 임충식(任忠植·육사1·대장 예편·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 역임)중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10명의 기초위원 중 한 사람으로 그 후 ‘군인복무규율의 제정 경위 및 해설서’를 집필했다. 그런 관계로 군에서 ‘군인복무규율’ 하면 나를 떠올릴 정도가 됐는데 나는 단지 육·해·공군에서 선정된 10명의 위원 중 한 구성원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나는 그 후 시대의 변화에 따른 군인복무규율의 수정안을 수 차례 제정할 때도 각 군·학계·법조계 대표들과 함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특전을 누린 바 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상황에 걸맞은 군인복무규율의 수정이나 각 조항에 담겨 있는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은 내용이 아니라 이 조항 속에 담겨 있는 도도한 정신과 이를 몸소 실천하려는 의지와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군대는 무장한 강력한 실천 집단이기 때문이다.
<정리=김 당 오마이뉴스 기자 dangkim@empal.com>
2003.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