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군 작전참모 시절 새로운 제도를 만든 것만은 아니었다. 그때 나는 세 가지 부대 경쟁제도를 없앴다. 모름지기 모든 경쟁제도는 합리적으로 이뤄져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직접 감독이 가능한 하급제대 중심의 것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직과 허위보고를 하는 습성을 기르게 될 염려가 있다.
1950년대 육군에서는 ‘전투사단 대항 무장행군 경기대회’라는 것이 연례행사로 개최돼 왔다. 말이 행군이지 목표지점에 최단시간에 골인해야 하기 때문에 완전군장을 한 1개 소대가 20㎞를 소대장 이하 전원이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시종 구보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단에서는 연중 사단 교육대에 곱절의 인원을 뽑아 이들에게 특별급식을 하면서 무장행군만을 시키곤 했다. 이렇게 무장하고 뛰다 보면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하는데 한 명이라도 낙오병이 생기면 안되기 때문에 쥐가 난 다리를 대검으로 찔러가며 뛰는 경우도 있었다. 사단장 이하 전 장병이 이렇게 무리를 하는 것은 이것으로 전 사단의 서열이 평가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철원지역 2사단 작전참모 시절 무리와 비교육적 요소가 있음을 알면서도 우승을 목표로 노력해 각 사단 대표로 20개 소대가 출전한 무장행군 경기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당연히 사단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이런 불합리한 경쟁제도에 회의감을 갖고 있던 터라 이의 폐단을 들어 육본에 중지할 것을 건의, 나중에 제도상으로 이 무장행군 경기대회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
두 번째로 없앤 것은 60년대까지 지속된 전군 사격대회, 한·미 사격대회, 밴플리트 장군배 쟁탈 사격대회 등 전군 범위의 사격대회다. 내가 야전군 작전참모로 보직돼 이런 제도의 실효성을 점검해본 결과 무장행군 경기대회에서와 같은 폐단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단이 우승하면 그것이 사단장의 성적으로 간주되고 그 사단장의 승진과도 관련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당연한 결과지만 불시에 표본추출법에 의해 대상을 선발, 측정해보니 부대의 사격 성적은 사격대회 성적과 일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단마다 사격선수로 선발된 인원만이 연중 실탄사격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투란 선발된 특정선수가 도맡아 하는 것이 아니다. 적은 사격선수가 지키고 있는 곳으로만 오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없앤 것은 부대이동 및 교대제도다. 역시 1군 작전참모 시절에 보니 20여 개 사단이 기한만 되면 무조건 동서남북으로 부대를 이동시켜 교대하는 것이었다. 이 또한 백해무익했다. 왜냐하면 부대교대의 경험을 쌓은 장교·하사관들이 다음 교대 때는 사단에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훈련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심지어 부대교대 때면 사단의 돼지우리까지 뜯어가 자원낭비도 심했다.
또 후방으로 부대가 이동하면 나무가 귀해 산에서 온통 벌목해 가져가기도 했다. 그 때문에 부대이동에 대비해 미리 나무를 베어 놓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돼지우리를 짓고 부수시설에 사용했다. 그래서 나는 부대교대제도의 중지와 더불어 군에서 그런 행위를 못하게 했다.
처음 육본 정책회의에 건의했을 때 참모부장들은 왜 일거리를 만드느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나는 준사관 자녀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7∼8번이나 옮겨 다녀야 하는 실태의 통계를 내 건의하는 등 소신으로 관철시켰다. 물론 참모총장이나 지휘관의 필요에 의한 부대교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까닭없이 정기적으로 부대를 교대하는 것은 고쳐야 할 제도였다.
<정리=김 당 오마이뉴스 기자>
<이재전 예·육군중장·前전쟁기념사업회장·現한자교육진흥회장dangkim@empal.com>
2003.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