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話 장군이된 이등병<195>맹장 수술과 기합-90- | |
1954년 2월, 나는 훈련을 받다 갑자기 쓰러졌다. 배가 아프더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왔다. 부랴부랴 앰뷸런스가 오고 나는 군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진단 결과 급성 맹장염이었다. 빨리 수술해야 생명을 건질 수 있다고 말할 때 나는 겁이 덜컥 났다. 포연이 자욱한 6·25 전장(춘천 전투)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어도 겁나지 않던 내가 만리이역에서 수술받다 죽으면 억울해서 어쩌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 고국에 있는 아내가 임신 9개월에 접어들면서 날마다 눈물 젖은 편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얼마나 신경이 날카로웠던지 나는 전신 마취를 했어도 메스와 가위로 살을 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한참 후에야 정신을 놓았다. 봉합 수술을 마친 몇 시간 후 나는 의식이 돌아왔다. 온전히 제정신이 돌아온 얼마 후 간호 장교가 물이 가득 담긴 링거병 두 개를 가지고 왔다. 1시간 내에 이 물을 모두 마시라는 것이었다. 나는 물이 잘못 배달된 줄 알았다. 한국에서는 방귀가 나와야 수술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데 여기서는 뚱딴지 같이 1시간 내에 물을 3000cc나 마시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잘못 온 것으로 알고 마시지 않고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 그랬더니 의사가 이를 발견하고 몹시 화를 냈다. 그가 원장(중령)에게 보고하는 것 같더니 잠시 후 원장이 의사 4~5명을 대동하고 병실로 쫓아왔다. “왜 물을 마시지 않는가.” “이것이 내 물인가. 그렇다면 잘못 생각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수술이 끝나면 가스가 나와야 수술이 성공했다고 보고 그 뒤에 물을 마신다. 그러니 마시지 않겠다.” 원장이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가더니 40분쯤 후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한국 의학 서적과 일본 서적을 갖고 내 앞에 섰다. “알고 보니 당신 말이 맞다. 그러나 미국식은 다르다. 한국식은 맹장 부위를 짧게(5cm 정도) 잘라 내지만 미국은 그보다 몇 배 길게 잘라 낸다. 그러므로 물을 마시지 않으면 입술이 부르트고 사정없이 부을 것이다. 이것을 참을 수 있나?”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이 가장 안심이 되는 지식 아니겠는가. 나는 한국식을 고집했다. 아니나 다를까 1시간 가량 지나자 입술이 부르트기 시작하더니 입 안에 콩알 같은 것이 무수히 튀어 올랐다. 물을 마시고 열을 식혀야 하는데 한국식을 고집하다가 낭패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부터 ‘수난’이 들이닥쳤다. 담당 의사가 호스로 연결해 꽂은 링거병을 들고 있도록 했는데 30분쯤 지나자 이것이 기합이라는 것을 알았다. 팔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 이곳저곳의 병상에서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또 위생병이 소변을 받아 가야 하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오지않자 옆의 환자들이 급하면 천천히 걸어가서 보고 오라고 권유했다. 부축해도 걷기가 힘든데 혼자 팔에 꽂힌 호스와 링거병을 들고 수술 부위를 부여잡고 걷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러나 시도해 보기로 했다. 옆구리를 감싸고 높은 침대에서 혼자 내려올 때 창자가 모조리 쏟아지는 것 같고, 또 혼자 긴 복도를 걷는데 4~5분이면 갔다 올 거리를 30분이나 걸려서야 다녀왔다. 미국의 수술 방법은 크게 자르고 확실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는 어떤 것이라도 고이 간직해야 하고 부득이 잘라 낸다 하더라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문화의 차이가 이런 수모를 겪게 한 것이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 겸 인물전문기자> 2004.0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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