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장군이 된 이등병

제2話 장군이된 이등병<199>도량 넒은 이종일 장군-94-

화이트보스 2009. 5. 20. 17:09
제2話 장군이된 이등병<199>도량 넒은 이종일 장군-94-

이주일 사단장은 목욕 중이어서 곧바로 거실로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인생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마음 내키는 대로라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최소령, 무슨 일인가?”
한참 후 사단장이 목욕탕에서 나오며 물었다.
“각하, 죄송합니다. 월북 사건이 났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왜 내 욕을 하나?”
“네?”

나는 한 번도 사단장을 욕한 적이 없는데 욕이라니, 이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첩첩산중이어서 숨이 콱 막혔다.“여소위가 월북한 후 북한 방송에 나와 나를 비난하는데 귀가 아파서 못 들을 지경이라는 거야.”

사단장에 따르면 한국군의 통신 감청부대가 북한 방송을 청취했는데 여소위가 사단장이 몹쓸 짓을 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월북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죄송합니다.”“죄송, 죄송 하지 마라. 그놈은 여기 있어도 군법회의 감이야. 그자가 넘어갔지만 죄짓고 월북했으니 북에서도 쓸모없게 돼. 이용만 당하고 비참하게 깨져. 대대장은 용기 잃지 말고 열심히 하라!”

사단장은 양주 한 병까지 주며 마시고 힘내라고 했다.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사단장실을 물러 나왔다. 이는 후일 내가 사단장을 하면서 지휘통솔상의 좋은 교훈적 지침이 됐다.
이런 사고가 났을 때 나는 과연 용서할까. 월북 사건은 다른 무엇보다 우리 군 사기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것만은 막는 것이 각 부대의 통솔 지침인데, 이사단장은 넓은 도량으로 나를 감싸 안아 준 것이다.
몇 해 전 나는 이장군을 어느 회식 석상에서 만난 일이 있다. 그때 이장군을 찾아가 “사단장님이 저를 용서해 주셔서 제가 장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이장군은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고 웃으며 건배를 제의했다. 그 잔 속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돼 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감회에 젖었다. 용서란 이렇게 사람을 성숙시키고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7년 동안 5개 대대장을 하며 최장기 동일 직위 수행자가 되다 보니(전시 체제 때는 연대장 두 번, 사단장 세 번, 참모총장을 하다 군단장을 한 경우가 있었지만 군 질서가 잡혀 가던 때의 내 경우는 드문 일이다) 엄청난 사건·사고를 보고 겪었다.그중 6군단 포병 977대대장으로 복무할 때 또 육군사에 최대 오점을 남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58년 6군단 포병 977대대장으로서 한·미 1군단에 작전 배속된 28사단 휘하에 들어가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28사단장 서정철(육사2기)준장은 엄격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또 성격도 괴팍하다는 평판이었다. 사단 브리핑 때 대대장급 지휘관이 실수하자 단상으로 올라오도록 해서 발로 차는가 하면 길바닥에서도 지휘관을 세워 놓고 행인이 보거나 말거나 지휘봉으로 갈긴다는 소문이 난 그런 장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단장이 장교들을 모아 놓고 훈시했다.

“현대 장교는 반드시 세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는 운전을 해야 하고, 둘째는 영어를 해야 하며, 셋째는 타자를 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교 자격이 없다. 3개월의 기간을 줄테니 모든 장교는 이를 준비하라. 3개월 후 반드시 테스트하겠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4.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