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단장의 훈화를 듣고 대단히 감동했다. 사람들이 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교육 방침은 현대전의 지휘관으로서 바람직한 것이다. 그는 영어도 잘하고 머리가 명석한 장군으로도 정평이 났다.
나는 포병 소위 시절부터 운전을 익혔기 때문에 운전에는 자신이 있었다. 포병의 경우 관측장교(소위)에게까지 전용 지프가 배당됐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운전면허를 딸 수 있었다.
이윽고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서정철 사단장이 예고 없이 977대대를 방문했다.
“대대장은 운전 배웠나?”
“넷, 배웠습니다.”
“그러면 예하 포대 훈련장으로 차를 몬다.”
나는 사단장을 옆에 태우고 훈련장으로 갔다. 곁눈으로 사단장 동태를 살피니 만족감을 표시하는 표정이 엿보였다. 훈련장에 도착하자 그 사이 사단장은 졸고 있었다.
“각하,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어디야?”
“훈련장입니다.”
“그럼 돌아가.”
나는 다시 차를 몰아 사단장 CP로 돌아왔다. 이때도 사단장은 졸고 있었다. 차가 멈추자 깨어나더니 말했다.
“귀관이 차를 잘 몰았기 때문에 나는 편히 자면서 왔다.”
그다음 주 사단 참모회의에 참석하니 사단장이 훈시했다.
“977대대장은 운전이 완벽하다. 최갑석 대대장은 단상으로 올라오라.”
나는 사단 편제 부대가 아니라 군단 소속 포병으로서 사단의 화력을 지원하기 위해 배속됐을 뿐 직접 사단장 지휘를 받지 않는 위치였다(작전 지휘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예속 부대 이상으로 지휘를 받으며 이를 이행했다. 그 점이 좋게 보였는지 모른다. 나는 분에 넘치는 박수를 받았다.
이 무렵 한미 1군단(군단장 투르도 중장)에서 작전 배속된 28사단에 전투정찰대 운영 시범 훈련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때 28사단은 6군단에 배속되기도 했다. 6군단장 백인엽(군영·군단장·중장 예편)중장은 배속돼 온 28사단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였는지) 강력한 지휘 검열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28사단장은 한미 1군단장의 지시인 시범 훈련과 까다로운 6군단의 지휘 검열을 모두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하는 일로 골머리를 앓았다. 결국 그것이 예하 부대로 떨어졌고 각 부대는 과도하리 만큼 강훈련과 지휘 검열을 받아야 했다.
훈련 시범을 담당한 정구영(중령·육사8기)대대장은 연일 녹초가 됐다. 그러나 사단장은 목표를 달성해야 했기 때문에 미비점을 지적하며 대대장을 호되게 질책했다.
그날도 훈련 상태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사단장이 대대장을 앞세우고 직접 훈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대대장이 앞서고 사단장이 뒤따르며 “시범이 며칠 안 남았는데 그래도 맨정신인가?”하며 호통 쳤다. 앞서 걷던 정중령은 잔뜩 긴장한 탓인지 뒤따르는 사단장이 권총을 뽑아 들어 ‘찰칵’ 탄환을 장전한 것으로 알고(정중령의 주장), 그가 먼저 뒤돌아서서 사단장을 향해 권총을 발사해 버렸다. 사단장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이 사건은 우리 군 사상 초유의 하극상으로 기록되고, 그 충격은 전군에 영향을 끼쳤다. 전군은 사기가 극도로 저하된 것이다.
정중령은 군법회의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사단장이 자신에게 심한 모욕을 주며 권총을 장전하는 소리를 듣고 순간적으로 방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 사단장의 권총에는 실탄이 장전된 바도 없고 또 실탄도 없었다. 정중령은 과잉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사단장의 호통에 자기를 죽이는 줄 착각, 그만 먼저 권총을 발사했다는 군법회의의 판결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4.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