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장군이 된 이등병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13> ‘기합 대장’의 베트남 파병-108 -

화이트보스 2009. 5. 20. 17:14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13> ‘기합 대장’의 베트남 파병-108 -

참모총장실에 들어간 조문환 장군이 통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안에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격론을 벌이다가 잠잠해지는 것 같기도 한데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조장군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왠지 겁이 났다. 조장군이 무엇에 단단히 걸려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조장군은 육본에서 악명이 높았다. ‘기합 대장’으로 널리 통했다. 초대 공수단(현 특전사) 단장 출신으로 무섭게 부하를 다뤄 누구나 기피한다는 장군이었다.

6군단 참모장 시절 참모들과 함께 사령부의 군기를 잡는 과정에서 기합 장군으로 악명을 떨쳤고 육본 기획처장 근무 때도 복도에서 만나는 부하(대령급이라 해도)의 경례 태도나 복장, 걸음걸이가 거슬리면 그 자리에서 기합을 줘 당사자를 곤혹스럽게 한 인물이었다. 업무 보고차 기획처장실을 찾는 참모들도 들어가기 꺼릴 정도였다.

거구로서 유도 4단에 생김새도 범상인데다 눈이 부리부리해 더욱 강인한 인상을 주는 장군인데 실제로 그가 눈을 한 번 뜨면 어느 누구도 오금이 저려 주눅 들 정도였다.

그런 조장군이 참모총장실에 들어가 한 시간이 넘도록 꼼짝 않고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말 큰 낭패를 본다고 생각하며 나는 한쪽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조장군 못지않게 조바심을 쳤다. 입 안이 바작바작 타고 가슴은 조마조마했다. 그러던 한참 후 총장실에서 쿵쾅 소리가 나더니 조장군이 밖으로 퉁기듯이 나왔다. 조장군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가자고!” 그는 몹시 흥분된 걸음걸이로 빠르게 기획처장실로 향했다. 나도 초조한 마음으로 조장군을 뒤따랐다.

“이봐, 최중령. 날더러 베트남에 가라는 거야!” 그가 의자에 털썩 앉자마자 토해내듯 말했다.

“베트남이요? 비둘기부대장으로는 김○○ 장군이 내정되지 않았습니까?”

“그러게 말이야!” 그러면서 그는 테이블 바닥을 쾅 치며 말했다.

“김○○ 장군더러 베트남에 가라고 했더니 꾀병으로 비겁하게 못 가겠다고 했다는 거야. 그래서 참모회의 때 누구 용감한 장군 없나, 하고 추천하라고 하니까 너도나도 조문환이가 적임자라고 했다는 거지.

그래서 나를 부르셨는데 불쑥 ‘베트남에 가겠소?’하고 묻는 거야. 그래서 ‘총장 각하,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십시오’ 했지. 그랬더니 ‘그래, 좋아. 거기 앉아서 생각해’ 라며 테이블 옆 소파에 앉아 생각하라는 거야. 어르신도 성질이 급해. 그래서 소파에 앉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할 뿐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는 거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생각해 보았지만 가슴만 막히는 거야. 그래서 벌떡 일어나 ‘각하, 가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고 말았어.

그러자 총장 각하가 껄껄 웃으면서 ‘과연 듣던 대로구먼. 됐어, 됐어’ 하시고는 곧바로 청와대로 핫라인을 연결해 대통령 각하와 통화하는 거야. 베트남에 갈 지휘자가 나왔으며, 조문환이라는 장군이며, 대통령 각하의 기대에 부응할 자격을 갖춘 장군이라고 보고하시더군.”

이렇게 단숨에 말하고 조장군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포트의 물을 컵에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일을 저지르고 말았는데 어떡하면 좋지?”

그는 흥분한 나머지 손마저 떨고 있었다. 하긴 단군 이래 처음으로 해외 원정을 가는 부대장이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역사적 임무를 띠는 당사자로서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은 뻔한 이치였다. 그래서 존경하던 김○○ 장군도 기피하지 않았는가(그는 그길로 전역한 것으로 안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4.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