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장군이 된 이등병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20>주부식 단속 -115-

화이트보스 2009. 5. 20. 17:16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20>주부식 단속 -115-

5사단 포병사령관으로 부임(1967년 1월)하자마자 나는 참으로 이상한 광경을 하나 발견했다. 병영이 온통 고함으로 산골짜기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이다. 이 고함에 산새들이 놀라 달아날 지경이었다. 위병소의 위병들이 출입자를 대할 때마다 큰 소리로 외치는데 가까이 있으면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최창주 사단 참모장에게 물었다.

“장병들이 귀먹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소리들이 큽니까.”

“사단장 각하의 지시요. 소리가 작으면 지휘관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취급해요. 사단장 각하는 순찰 마지막에 신병교육대를 들르시는데 그놈들이 가장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오. 소리가 우렁차야 부대가 살아 있다는 거지. 위병소의 위병이 ‘보초 근무 이상 무!’를 외칠 때 쩌렁쩌렁 울리면 대단히 기분 좋아하시지. 그래서 위병소에는 목소리 큰 녀석들을 골라 배정하오.”

조문환 사단장은 내가 부임 신고를 하자 “용기 없는 놈은 내 부하가 아니다. 전투사단의 능력을 갖추기 위해 무섭게 훈련시키고, 다음으로 엄하게 군기를 확립하고, 세 번째로는 철저히 정량 급식을 한다”며 이를 따르라고 말했다.

조장군의 지론은 부대는 활기차게 살아 있어야 하고 팔팔하게 움직여야 한다. 산속에 조용히 있다면 절을 지어야지 야전군 부대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침울한 부대는 전선에 투입되기도 전에 지리멸렬해진다는 것, 그것은 그가 오랜 군생활에서 얻은 지휘철학이었다.

조사단장은 철저히 정량 급식을 했다. 내가 부임 인사를 마치고 포병사령부로 가려고 하자 조사단장이 지시했다.

“당신이 포병사령부로 가거든 비밀 문서 창고에 가서 앞으로 먹게 될 쇠고기가 전량 제대로 보관되고 있는지, 보초도 잘 서고 있는지 점검하시오.”

군사 비밀 문서가 보관된 창고에 쇠고기를 저장해 두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고, 그러나 사단장의 첫 지시인지라 문서 창고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문서 창고 앞에는 복수 무장병이 보초를 서고 있고, 철조망이 이중으로 처져 있었으며, 창고 문에는 묵직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보초병 옆에 경고 표시판이 있었는데 지휘관과 일직 사령 외에는 어느 누구도 출입할 수 없으며 위반시 발포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열쇠를 받아 들고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목이 잘린 쇠머리며 큼직한 등심과 안심, 그리고 다리와 쇠꼬리 등이 커다란 양철통에 담겨 바닥에 놓여 있었다. 서류 창고가 육류 창고가 돼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참담한 심정이 됐다.

조장군은 쇠고기가 몇 g 병사들에게 배당됐는지 주간 급식 메뉴표를 직접 확인하면서 병사들이 먹는 국에 들어가는 것을 일직 사령이 지휘·감독하도록 하고 있었다. 소문대로 철저히 부대를 관리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혀를 내둘렀다.

조장군은 자신의 식사도 장교의 정량 급식을 지켰다. 이를 보고 나도 만약 사단장이 된다면 이 세 가지 지침을 꼭 따르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졌다.

나는 64년 육본 기획 담당 장교로 있을 때 당시 장교 보직처장이었던 박현식(육사6기·중장 예편·치안본부장) 장군에게 배포된 일일 동향 보고(정보)를 본 적이 있다. 보고서를 읽고 난 뒤 박처장이 처연히 말했다.

“지금 군이 극도로 빈곤해 사병들이 먹어야 할 주부식을 간부들이 뺏어 먹고 있다니 한심하오. 사단에서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사단장 이하 지휘관과 참모들이 자기들 관사로 살코기를 뭉툭뭉툭 잘라 빼내고 병사들은 소가 목욕한 물만 마신다고 하니 이게 말이나 되오. 그러니 최갑석 중령, 철저한 급양·급식을 강조하는 항목을 추가로 넣는 게 어때?”

그러면서 장교단의 각성을 촉구해야 한다고 흥분하던 박장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4.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