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인사 제도의 골격은 철저한 중앙 통제 인사, 공정 기회 균등, 능력 본위 진출 보장을 담보했다. 그리고 인사 관리 평가는 지휘관 부여 75점(근무 평정 40, 지휘관 추천 15, 경험한 직책 15, 상훈 5점), 개인 능력 25점(교육 15, 신체 조건 5, 기타 5점) 등 100점 만점으로 했다.
이같이 부여 점수를 주는 반면에 감점 제도도 두었는데 최고 -80점까지로 했다. 즉 낙천 사항 50, 임기 이전 해임 15, 사임원과 무보직 7, 징계(가벼운 징계) 8점의 마이너스 점수를 주기로 했다.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교육·보직·진급되도록 했고 6대 직능 분야로 관리해 소장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공개 경쟁 원칙을 적용했다. 전형적이고 철저한 직업 군인 관리로 전환한다는 것이 골격이었다.
종래 각종 선발과 진급에서 나타난 폐습을 지양하고 합리적·객관적 평가와 개인 능력·공과를 상쇄해야 한다는 기록 채점제를 도입함으로써 비로소 합리적 인사 기준이 마련되고 11개항의 평가 요소와 공개 의견을 종합해 수립된 새 인사 제도는 군 개혁 운동과 육군 발전의 기초가 됐다고 확신한다. 더불어 새 제도가 정립됨으로써 어느 누구도 떳떳할 수 있었고 이해와 승복의 문화가 정착될 수 있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이와 같은 인사 제도를 가지고 나는 군단급 이상 부대를 대상으로 순회 설명회를 가졌다. 각 조항에 대해 찬반을 묻고 이를 명문화했다. 인사 원칙이 제대로 섰으나 의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세인(육사3기·대장 예편)1군사령관을 비롯, 각군 사령관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1. 중대장·대대장 보직 기간은 최소한 2년이 돼야 한다 2. 연대장이 끝나고 진급 코스인 육군대학에 입교하는 폐습은 지양돼야 한다 3. 직능화 관리를 철저히 하라. 즉, 특수 직능인 의무·군종·법무 장교들의 진출 균형을 잡고 인사·정보·기획관리 등 병과를 초월하는 직능 관리를 객관화하라 4. 편제상 보병이 갈 수 없는데 7대 직능의 대령 공석이 있을 경우 보병이 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장군의 지명 인사는 부관·보좌관·공보관·비서실장에 한한다 5. 장교 평가 기준의 7대 요소 배점을 당해 계급 정체 기간 전부를 망라해 평균을 내 평가한다 6. 실병 지휘 능력 부여를 위해 중대장은 1, 2군에서 각 1회씩 통산 4년 이상 근무토록 한다.
당시 육사 출신은 비육사 출신에 비해 진급 속도가 배에 달했다. 즉, 소위에서 중위 진급이 3개월밖에 안 되고 대위는 1년, 소령-대령 진급 각 3년으로 16년이면 별을 다는 것이다. 내 경우 중령 9년에 대령이 됐고 대령도 8년째 하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내가 중령 시절 소위로 들어온 육사 출신이 어느새 나를 추월해 버렸다.
이런 것들을 인사 제도에 반영해 참모총장에게 최종 보고를 하게 됐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밝히고 넘어갈 것이 있다. 과원들의 노고다. 1년여 동안 인사 제도 연구 초안을 타자로 친 분량만도 한 트럭분이 넘었는데 이것을 여군인 김용자 하사가 휴일도 없이 모두 처리해냈다. 그 모습이 하도 딱해 타자병을 증원해 주겠다고 해도 인사 기밀을 유지해야 한다며 끝내 혼자 처리했다. 후일 계룡대 국군 행사장에서 그녀를 상봉한 적이 있는데 대전에서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 것을 보고 가슴 뿌듯했다.
특근 수당이나 특별 예산 지원이 없어 나는 토요일이면 금호동 집으로 과원들을 초대해 막걸리와 돼지고기를 대접하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했다.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과원들은 강한 사명감으로 묵묵히 직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최창주 대령 부인의 비평대로 이 부서는 잘 대접받지 못하는 자리라 고생한 부하들이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명색이 인사 문제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객관·공정·합리적 인사 제도를 만든 내가 그 덫에 걸려 꼼짝하지 못했고 또 나는 그럴 만한 위치에 있지 못했다. 고생한 이들을 더 이상 지원해 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가슴 아프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4.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