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바다로 세계로!

<373>바다로 세계로! -3-가장 길었던 48시간-2

화이트보스 2009. 5. 27. 21:16

<373>바다로 세계로! -3-가장 길었던 48시간-2

국가의 명운이 바람 앞의 등불 같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해군참모총장과 작전참모가 자리를 비운 것은 공교로운 일이었다. 해군의 숙원이었던 PC(Patrol Craft:고속 초계정) 3척을 도입하기 위해 미국에 출장 간 사이 상황이 벌어졌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당시만 해도 우리 해군이 보유한 PC는 701함 한 척뿐이었다.

뒤에 상세히 언급하겠지만 이 함정의 도입이 조금만 빨랐던들 그렇게 마음 졸이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최고 책임자는 없어도 긴급 상황 대처는 시급했다. 오전 7시를 앞두고 회의실은 나처럼 급히 달려온 본부 참모들로 속속 자리가 메워졌다.

참모총장 직무대리는 김영철 대령이 수행 중이었고, 인사국장 김일병 대령, 작전국장 대리 김용호 소령, 함정국장 이종오 중령, 감찰감 정동호 소령, 법무감 오응선 소령, 정훈감 송흥국 소령, 정보감 본인, 통신감 한득순 소령, 헌병감 김태숙 소령, 의무감 박양원 중령 등이 작전회의 멤버였다.

“오늘 새벽 4시30분 강원도 동해안 옥계 방면에 인민군이 상륙해 내륙으로 이동 중입니다. 해안 지역에서는 이들 말고도 다른 적군이 계속 상륙을 시도하고 있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인근 해역에 509정을 급파했습니다. 같은 시간 38선 상의 모든 전선에서 지상군도 적과 교전 중이라는 정보가 있습니다.”

작전국장 대리 김소령의 상황 보고에 접한 우리는 전면전이 벌어졌다고 판단, 오전 9시를 기해 전 해군에 비상사태를 선포키로 결정했다. 그 뒤로는 구체적인 정보에 목말라 암중 모색하듯 우리끼리 의견을 교환할 수밖에 없었다.

통신감 한소령은 인민군 공군력에 많은 관심을 표했다. 과연 그들의 공군이 즉각 서울을 공격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대처가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인민군은 서울을 공습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군은 지상에 대공포도 없고 공군의 요격 능력도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공군력에 대한 판단은 정보부서의 일이기에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해군본부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 아닙니까. 해군본부가 적의 공습을 받으면 제일 먼저 본부 옥상에 있는 통신 시설이 파괴될 텐데, 그러면 작전 지휘를 어떻게 합니까.”

내 보고에 통신감 한소령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랬다. 전신 전화 통신망이 훼손되면 작전 지휘는 불가능해진다. 진해 통제부의 통신 시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본부가 작전지휘권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예하부대에 넘길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육군이 과연 언제까지 서울을 지켜 줄 것인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정부 발표와 달리 전선은 갈수록 밀리기만 하는 것 같았다. 각 참모들이 작전참모실의 견해를 궁금해 하자 김소령은 꽉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국군이 수도 서울을 몇 시간이나 지킬 수 있겠습니까. 탱크를 앞세운 인민군 10개 사단 병력이 물밀듯 쏟아져 내려오는데 국군의 애국심과 충성심이 아무리 드높다 하지만, 글쎄요….”

비관적인 전망이었다. 회의 참석 전 육군본부에 전령을 보내 파악한 상황을 근거로 한 보고 한 마디로 회의 분위기는 침통해지기 시작했다. 놀라움과 분노,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교차되는 공기 속에서도 결론은 있어야 했다.

<정리=문창재 (언론인)>

2006.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