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바다로 세계로!

<380>바다로 세계로! -10- 대한해협 해전-4

화이트보스 2009. 5. 27. 21:19
<380>바다로 세계로! -10- 대한해협 해전-4

밤 11시40분 백두산 함상회의가 소집됐다. 8명의 장교가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주로 괴선박 병력의 정체에 관해 의견이 교환됐다.

“얼굴 모습과 몸집으로 보아 동양인이 분명하다. 동양인이라면 일본군일 수는 없는 일이고, 중공군도 이 항로로 지나갈 일은 없다. 그렇다면 인민군 아니고는 답이 없다.”

최함장은 장교들의 의견을 모아 이런 결론을 내리고, 확인을 위해 주포 한 발을 발사토록 명령했다.

“적이면 응사할 것이고, 아니면 의사 표시가 있을 것이다. 본부에 사격하겠다고 보고하라.”

최함장의 지시로 그 상황이 보고됐고, 그것이 해군본부 격침 명령의 근거가 됐다. 당연히 신성모 장관에게도 보고됐다.

“자 이제부터 전쟁이다. 김일성 공산당은 우리 민족의 적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자.”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학병으로 징집돼 일본군 포병 소위까지 올랐던 최함장은 짧은 훈화에 이어 전원 전투 배치를 명했다. 그러고는 결의를 다지는 건배를 제의했다.

“이것이 우리가 마지막 보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우리 건배로 이 순간을 기념하자. 야, 당번병 냉수라도 가져 와!”

배에 술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냉수로라도 건배하자는 제의에 좌중은 일순 숙연한 분위기가 됐다. 당번병이 물컵을 돌리고 주전자로 냉수를 가득 부었다.

말없이 냉수 한 잔을 들이켜고 제 위치로 돌아간 갑판사관 최영섭 소위는 항해부 포술부 수병 25명을 집합시키고 짧은 지시를 하달했다. “전원 신속히 새 내복과 작업복으로 갈아입도록! 죽더라도 깨끗한 몸으로 죽어야 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시작한 전투였다. 등화관제 명령이 내려져 캄캄한 갑판 위에서 사격 준비를 마쳤다.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적선의 좌현쪽으로 항로를 바꾸어 유효 사거리 안으로 적선에 접근했을 때, 포술부 책임자 최소위는 정말 포탄이 발사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이 됐다. 왜냐하면 백두산함 도입 이후 단 한 번도 실탄 사격 훈련을 해 본 일이 없던 것이다. 돈이 없어 실탄을 100발밖에 사오지 못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사격 연습에 쓸 수 있었겠는가.

“사격 명령을 내리니까 정말 포탄이 날아가대요. 참 신기합디다.”

그렇게 첫 발이 발사되자 적선에서 즉각 반응이 일어났다. 우두두두, 마치 나뭇잎에 굵은 빗방울 쏟아지는 소리처럼 기관총탄이 날아왔다. 어두워서 거리 측정을 잘못했는지 총탄은 모두 바다에 떨어졌다. 가랑비가 내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적선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그들도 등화관제를 했으나 좌현쪽의 등 하나가 꺼지지 않았다. 그것은 백두산에 좋은 표적이 돼 주었다.

사격 거리를 측정하는 척도수 최갑식 삼조는 한 쪽 눈을 감고 적선의 불빛을 향해 거리를 가늠했고, 전병익 삼조는 3인치 포탄을 포신에 장전하기 바빴다. 적탄을 피하기 위해 속력을 최대한으로 높이면서 적선의 항해 방향에 따라 수시로 주포의 위치를 맞추었다.

두 배 사이에 날아다니는 포탄과 기관총탄의 탄적은 마치 불꽃놀이 같았다. 촛불처럼 밝은 곡선을 그리며 거친 바다의 어둠을 수놓았다.

그렇지만 포술부원들은 감상에 젖을 틈이 없었다. 탄환이 적선 주위 바다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포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포탄에 제발 명중해 다오. 다들 그렇게 애원하는 심정이었다.

<정리=문창재(언론인)>

2006.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