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바다로 세계로!

<381>바다로 세계로! -11- 대한해협 해전-5

화이트보스 2009. 5. 27. 21:19
<381>바다로 세계로! -11- 대한해협 해전-5

갑판 위에서 갑자기 함성이 터졌다. 만세소리가 요란했다. 적선 앞 갑판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주포 한 발이 적선에 명중한 것이다.

또 함성이 터졌다. 또 명중이었다. 이번에는 기관실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자신감을 얻은 수병들은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없는 듯 기계적으로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기관총 사수들도 정신없이 쏘았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쏜 탓이었으리라. 약협이 눌어붙어 격발이 되지 않자 사수들은 탄우 속에서 몸을 숨기지도 않고 약실을 청소해 다시 사격 자세를 취했다.

그래도 적선은 큰 타격을 입지 않은 듯 응사가 멈추지 않았다. 포탄을 다섯 발 이상 맞고도 끄떡 없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안 되겠다. 수평선을 때려라. 상체는 아무리 맞아도 소용 없으니 흘수 아래에 구멍을 내야 격침된다.”

최함장은 비상 대책을 내놓았다. 조준점을 변경해 홀수 아래를 쏘려면 더 근접해야 한다. 1.7㎞까지 접근하면서 10여 발을 더 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명중률은 높았다. 동시에 상체도 공격했다.

900m까지 접근했을 때 적선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선체가 기우뚱거리며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주포가 마스트에 명중해 30㎝ 굵기의 마스트가 부러져 균형을 잃은 것이다. 해전에서 마스트를 명중시키는 것은 흔하지 않은 포격 기술이다.

“만세, 만세, 만세!”

어지러운 만세소리와 함성으로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했다. 이때 백두산함에서도 동요가 일어났다. 너무 접근한 탓에 적탄을 맞은 것이다. 85㎜ 포탄 한 발이 백두산함 조타실을 관통하며 나침반(자이로 컴퍼스)을 부수고 3명의 승조원에게 중상을 입혔다. 김종식 소위는 왼쪽 발꿈치가 날아갔고 김창학 삼등병조와 전병익 이등병조는 복부와 다리 관통상을 입었다.

그래도 그들은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전이등병조는 피가 콸콸 쏟아지는 상처를 한 손으로 틀어막으며 한 손으로 전화기를 들고 있었고, 김삼등병조는 조타간을 움켜잡고 있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부상자들은 즉시 병사 식당으로 옮겨져 응급치료가 시작됐다.

군의관 김이현 중위는 응급처치를 하면서 먹은 것을 토하기 시작했다. 배멀미로 고생하다가 창자가 터져 나온 부상병을 목격하자 비위가 상했던 모양이었다. 이를 바라보던 최소위는 빈 깡통을 가져오라고 해 김중위 목에 그것을 걸어 줬다.

“갑판사관님, 적선은 어떻게 됐습니까?”
출혈이 심해 정신이 혼미해져 가면서도 부상자들은 전황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걱정마라. 적선은 침몰 중이다.”

그제서야 그들은 안심이라는 듯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는 “물, 물”을 외쳤다. 피를 너무 흘려 수분이 빠져나가면 목이 타는 법이다.

최소위에게서 물컵을 받아든 그들은 희미한 목소리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김삼등병조는 “끝까지 같이 싸우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 끝에 스르르 눈이 감기고 고개가 밑으로 꺾였다.

“전수병! 정신 차려, 김창학 눈을 떠 봐.”
전우들이 큰 소리로 외쳐도 그들은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정리=문창재 (언론인)>

2006.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