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올해 첫 출장지는 중국이었다. 올해 최 회장의 중국 출장은 유난히 잦을 전망이다. 바로 SK그룹의 중국 사업을 총괄할 통합법인 ‘SK차이나(가칭)’ 설립 때문.
이를 위해 최태원 회장은 지난 연말 조직 개편을 시사하고 대규모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7월 출범 예정인 중국 통합법인의 초대 총괄 사장에는 박영호 SK㈜ 사장이 임명됐다. 그는 그룹 지주회사인 SK㈜ 대표이사를 겸직하면서 중국시장 공략의 선봉장 역할을 맡게 됐다.
박 사장은 그룹 안팎에서 최태원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소와 SK경영경제연구소장을 거친 기업 시스템 분야 전문가로, 최태원 회장과는 시카고대 동문이다. 2003년 SK글로벌 사태 이후 SK그룹의 지주사 전환 청사진을 그리는 데도 참여했다. 따라서 중국 사업 개편에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미 SK그룹의 중국 사업 개편은 진행 중이다. 13개 계열사의 96개 중국 법인을 단일 헤드쿼터 아래에 통합하는 작업이다. SK그룹 관계자는 “7월 초까지는 SK차이나를 설립하고 13개 계열사를 그 아래에 두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SK차이나 대표에 중량급 인사를 선임하고 중국 사업 재편에 나선 것은 최 회장이 그동안의 중국 사업 실적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최태원 회장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참가해서도 중국 사업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91년 중국에 처음 진출했지만, 그동안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게 사실이다.
SK텔레콤차이나, SKN차이나홀딩스, SK C&C시스템스 등 중국 내 주요 계열사들이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표 참조).
‘SK차이나’ 설립하고 영점서 새출발 그룹의 대표기업인 SK텔레콤은 중국의 통신사업에 직접 투자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 바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중국 2대 통신사인 차이나유니콤 보유 지분을 매각했다. SK텔레콤은 2006년 7월 차이나유니콤의 홍콩상장법인 차이나유니콤리미티드가 발행한 전환사채 매입을 통해 중국 통신시장에 직접 진출하려 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싸이월드는 국외 진출 첫 대상지로 중국을 선택했지만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했다. 그 밖에 사업들 또한 매출이 소규모에 그치는 등 기대에 못 미친 게 사실이다.
그룹 측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중국 사업을 관리하기 위해 SK에너지, SK텔레콤 등 9개 계열사가 공동 출자한 ‘SK차이나’를 설립했다. 하지만 실제 사업들은 계열사별로 이뤄져왔다. SK그룹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과의 50 대 50 합작 과정에서 여러 계열사들이 별도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러다 보니 여러 지역에 걸쳐 비슷한 법인들이 산재하면서 사업 컨트롤이 잘 이뤄지지 못했다는 반성이 있었다”고 밝혔다.
SK의 주력사업인 통신과 에너지 분야에 대한 중국 당국의 규제와 간섭이 심한 점 또한 걸림돌이었다.
방향은 최 회장은 올 상반기에 통합법인 설립에 대한 조직 개편 절차를 마무리 짓겠다는 방침이다. 또 SK차이나(가칭)의 ‘10+10(매년 매출 10% 성장과 10%대 영업이익률 유지)’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도 마련 중이다.
박영호 사장도 “조직, 구조 등 원점에서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한 새 판을 짜겠다”고 각오를 밝힌 바 있다.
SK차이나는 그룹 전체의 중국 사업을 총괄하는 동시에 계열사들의 중국 내 헤드쿼터를 통합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형식은 지주사 모델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SK에너지 관계자는 “상당수 인력이 추가로 중국으로 이전하게 될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SK차이나는 단순히 국외 본부 기능을 넘어서 인사·재무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자율권을 부여받는다. 현지에서 신사업을 물색하고, 마케팅·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미 구체적인 밑그림은 완성된 상태로 주요 계열사들의 중국 내 홀딩 컴퍼니는 모두 ‘SK차이나’ 아래에 들어가게 된다. 인사나 지분 관계 정리 등이 남은 과제다. 계열사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SK텔레콤은 최근 CIC(Company in Company) 중 하나인 C&I(컨버전스·인터넷) 부문을 중국으로 옮겼다. SK에너지가 화학사업 부문 CIC를 중국으로 이전한다는 소문도 있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이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SK네트웍스는 스피드메이트와 소비재 플랫폼 등을 중국 헤드쿼터 밑에 두는 조직 정비를 마친 상태다.
사업구조만 개편하는 게 아니다. 계열사별로 나눠진 연구개발 부문도 중국에서만큼은 통합한다. TIC를 신설하고 SK에너지 출신 박상훈 사장을 센터장으로 선임했다. 박상훈 사장은 화학 분야 전문가다. 따라서 SK의 중국 사업 중심이 화학 분야로 바뀔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SK에너지의 중국 내 아스팔트사업은 성공적이었다. 93년 중국에 아스팔트를 수출하기 시작한 이래, 지난해 1000만톤을 넘어서며 대표적인 대중국 수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성공적인 사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다음 단계로 화학, 소비재, 패션 분야 관련 조직도 단계적으로 중국에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 화학 분야에선 나프타 분해 공장의 중국 투자 확대가 유력시된다. 김재중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아스팔트와 윤활유 등 일부 사업이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상태에서 나프타 분해 등 사업을 중국에서 더 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국이 최대 수요처인 만큼 현재로선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전망은 일단 업계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그동안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삼겠다는 SK그룹의 선언적 발표는 있었지만, 개별 사업에 있어서는 국내에서 성공한 모델을 중국에 그대로 심는 전략을 택해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번 사업 재편으로 한국과 중국 간 본사-지사 개념이 사라지고 철저한 현지화가 이뤄진다면 SK의 중국 사업은 재도약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이동섭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 사업이 워낙 퍼져 있고, 계열사들이 많아 일종의 위계질서가 필요했다”면서 “컨트롤타워를 두고 교통정리를 하면 사업 성장성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분석했다.
최태원 회장의 중국 사업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 또한 플러스 요인이다. 최 회장은 매달 중국 현지에서 사업 전략 중간보고를 받기로 했다. 필요하다면 더 많은 핵심인력들이 중국으로 보내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통신사업 등 IT의 경우, 중국 사업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A애널리스트는 “한국에서의 콘텐츠나 이동통신 시스템 등을 통해 SK C&C 등과 함께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이지만 통신업의 특성상 대규모 매출을 일으키기는 힘들 것”이라 단언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관계자는 “자동차용 원격제어나 모바일 포털사업 등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차근차근 사업 기회를 넓혀나갈 것”이라 답했다.
일각에선 최신원 SKC 회장의 분가설과 함께 SK의 중국 사업 재편 그림에서 SKC는 빠질 것이란 소문도 있다. SK그룹과 SKC 관계자는 “사실무근”이라면서 “몇 개 중국 현지 합작법인이 빠질 수는 있지만 SK차이나 구도 아래 13개 계열사 모두 들어간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