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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이 나라 거덜낸다

화이트보스 2010. 4. 6. 18:08

포퓰리즘이 나라 거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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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4.05 23:41 / 수정 : 2010.04.06 02:26

윤영신 경제부장

日의 '잃어버린 10년' 순식간에 재정 파탄
선심정책 난무하는 한국도 재정 무너지면 끝장

미(美) 월가와 리먼브러더스, 씨티그룹, 도요타 같은 '신화'의 침몰은 순식간이었다. 그래서 얼마 전 경영에 복귀하면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 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고가 심상치 않게 들린다. 지금의 삼성이 10년 안에 사라진다는 것은, 13위권 한국경제가 10년 안에 30위권, 50위권 밖으로 밀려 세계의 관심국에서 멀어진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버텨온 것은 수십조원을 쏟아부은 재정(財政)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과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이 회장이 말한 10년은 오히려 길어 보인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한국의 국가 재정(財政)이다. 꼭 1990년대 일본 정부가 저지른 '재정 파탄'의 전철(前轍)을 그대로 밟는 모습이다.

일본도 한때는 재정이 튼튼한 나라였다. 1990년말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채잔고 비율이 38%에 불과했다. 우리 정부가 그토록 자랑하는 우리나라 재무 상태(지난해 36%)와 비슷했다.

하지만 부자(富者) 나라 일본의 정부 곳간은 너무 쉽게 허물어졌다. 엔고(高) 여파로 불황을 겪자 나라 곳간의 자물쇠부터 열었다. 곳간을 한 번 열자 자꾸 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순식간에 빚이 불어났다. 지금 일본의 GDP 대비 국채 비율은 OECD국가들 중 최악의 수준인 220%에 달한다. 정치권과 정부가 구조조정 등을 통한 민간경제의 자생력을 키우기보다는, 재정을 살포하는 손쉬운 선심정책에 의존하다 빚쟁이 나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줄기차게 쏟아부은 재정은 고도(古都) 교토와 나라(奈良)를 콘크리트 정글로 만들고, 해변까지 콘크리트 구조물로 포위시켰다. 산등성이를 폭파해 야산에 도로를 만들고 100여개 강둑, 강바닥까지 댐을 만들었다. 지방 공무원들은 중앙정부에서 내려보낸 예산으로 '돈 잔치'를 벌이며 부패의 악취를 풍겼다. 앞으로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국토에 깔아놓은 콘크리트를 다시 부수고 자연을 원상회복시키는 데 또 엄청난 재정을 써야 할 판이다.

일본의 실패한 재정정책을 보면 한국 재정의 미래가 보인다. 우리 경제는 김영삼 정부 이후 IMF환란, IT버블, 카드대란 같은 경제위기의 파고를 재정의 힘으로 넘겨왔다. 이번 금융위기에서도 국민세금을 쏟아부어 다른 나라보다 좋은 경제 성적표를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도 이미 김대중 정부 때부터 나라 곳간이 헐리기 시작했다. 나랏돈을 뿌리는 것이 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고, 당장 경기를 떠받치기가 쉽기 때문이었다.

재정은 한번 헐어 빚을 내기 시작하면 곶감 빼먹듯 습관이 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 한번 열리면 다시 걸어 잠그기 어렵다. '재정의 단맛'을 경험한 정권과 정부 관료들은 웬만한 문제는 재정으로 해결하려는 모럴 해저드에 빠진다. 한때 잘나갔던 아르헨티나가 허망하게 무너진 것도 권력자들의 재정 중독증(中毒症)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여러 정권에 걸쳐 재정 중독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좀 나빠지고 정권 지지도가 떨어지면 툭하면 추경예산이니 재정확대니 하면서 적자(赤字)국채를 발행하고 세금을 쏟아붓는다. 지난 10여년 사이 우리도 일본처럼 지방 곳곳이 콘크리트 투성이가 됐고, 차를 구경하기 힘든 텅 빈 아스팔트 도로들이 산골짜기를 점령하고, 지방정부의 낭비벽은 극에 달하고 있다.

세종시, 혁신도시, 무상급식, 원칙 없는 각종 세금감면, 공기업을 이용한 무리한 국책사업 진행…. 여야 할 것 없이 포퓰리즘에 빠져 나랏돈을 쓰는 데만 골몰해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여서 미래가 불투명한데도 나랏빚이 느는 속도가 현기증 날 정도다.

일본경제가 예전 같지 않다 해도 여전히 세계 2위 선진국이다. 각종 제도와 원천기술, 인적 자원, 사회적 자본, 국민의식은 세계 수준급이고, 탄탄한 중견기업들이 허리를 받쳐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몇몇 대기업을 빼고 나면 중간기업층이 텅 비어 있는 취약한 경제구조에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부동산 버블은 계속 커져가고 있다. 선진국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경제, 초스피드로 고령화하는 국가의 재정이 무너지면 그걸로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10년? 재정 쏟아붓기에 브레이크를 잡지 않으면 나라가 거덜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