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서 어려울 때는 우산을 있는 대로 뿌려서 잠재력 있는 기업을 살리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제 비가 그쳤으니 우산을 줘도 효과가 없는(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가급적 가려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수 중소기업이 제대로 클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우산장수` 노릇을 자처하는 윤용로
기업은행장의 고심 섞인 발언이다.
김정태 하나은행장도 마찬가지다. 하반기 최대 과제로 기업 구조조정을 서슴없이 꼽는다.
이번주(10~14일)는 중소기업들의 축제격인 중소기업 주간이다. 그러나 부실 중소기업에는 올해가 먹구름이 밀려오는 한 해가 될지 모른다.
◆ 높아지는 중기 구조조정 목소리
= 시중은행장들이 하나같이 중소기업 중심의 기업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다. 유동성 위기가 지났으니 빌려줬던 우산을 되돌려받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게 은행 내 시각이다.
우선 우산을 가장 많이 빌려줬던
기업은행이 가장 바쁠 수밖에 없다.
기업은행은 작년 가을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했던 자체 중소기업 평가를 올해 600개 이상으로 늘린다는 내부 방침을 최근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사 대상 기업 리스트도 이미 만들어 1차로 150개 기업에 대한 평가를 진행 중이다.
작년 평가 대상 300개 기업 중 50개가 워크아웃, 40개가 퇴출로 직행한 점을 고려하면 올해는 부실 중소기업이 대량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
기은 측 관계자는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준 지점장들이 실적을 걱정해 기업 상태를 보고하지 않는 문제를 고려해 부실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해 최근 지점장이 `자진 신고`할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신한 등 다른 시중은행들도 기업 여신심사 과정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7~8월께 강도 높은 중소기업 구조조정에 착수할 전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에 대한 평가가 끝나는 대로 500억원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평가를 시작할 예정"이라며 "7~8월 사이에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하반기 중기 대량퇴출 가능성
= 금융권과 당국의 이 같은 시각 변화는 시장이 안정됐을 때 부실을 도려내자는 의미가 있다.
실제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중소기업 비중은 2003년 24.1%에서 2008년 35.7%로 뛰었다.
위기와 무관하게 중소기업 자체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얘기다.
연구개발(R&D)과 교육훈련에 대한 투자도 극히 부진하다. 산업기술재단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종업원 300~999명인 중소기업 평균 연구개발비 비중은 불과 1.11%에 머물렀다. 1000명 이상 기업의 R&D 투자비중 4.97%의 5분의 1 수준이다.
한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당국 지원책도 필요하지만 부실 중소기업은 과감히 격리ㆍ퇴출시키는 선례가 나와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래저래 중소기업에 올해는 글로벌 위기 당시만큼 팍팍한 시절이 될 전망이다.
[김태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