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 흑묘백묘론과 조조의 구현령(求賢令) |
- 태평성세엔 덕성,난세엔 허물보다 능력이 중요하다는 등소평과 조조 |
하태형 칼럼, 2011-06-22 오전 07:5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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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바와 같이, ‘홍전론(紅專論)’이란 모택동주석의 ‘又紅又專’ 개념,즉 이데올로기(紅)도 중요하고, 또한 국가발전을 위한 전문성(專)도 중요하다는 개념입니다.사람을 쓸 때 개인의 덕성과 능력, 공히 중요하게 본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등소평 시대로 접어들면서는 달라집니다. 그는 ‘不管黑猫白猫,能捉老鼠的就是好猫’,즉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그뿐, 그 색깔이 희건 검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로서 개인능력만을 보겠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천명하였고,그 이후 중국은 눈부신 경제성장 궤도를 질주하게 됩니다. 사실, 국가의 지도자가 공공연히 이러한 정책을 천명하기는 쉽지 않으며,그런 점에서 등소평이란 인물의 위대성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런데, 이 유명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의 시조격이 바로 우리가 지금 <출사표>등을 논하고 있는 삼국시대 조조(曹操)라는 점은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조조(曹操)가 천하의 인재를 구하려 애를 썼다는 것은 일전에 <단가행(短歌行)>이란 시(詩)를 소개하면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인재를 구하는 칙령을 3차례나 발표하는데,특기할 점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능력 제일주의로 사람을 뽑을 뿐,그 사람의 청빈함이나 덕성 등은 보지 않겠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유교적 전통이 이어져오는 중국에서 이러한 시책을 공공연히 밝히고 시행한다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시책이었을 것입니다. 조조(曹操) 스스로도, 이러한 시책을 펴는 이유는 ‘治平尙德行 有事賞功能(태평성세에는 덕성을 봐야 하지만,난세에는 재능이 우선한다.)’는 말로서, 비상시임이 그 이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건안(建安) 8년 경신(庚申) 발표한 포고령 중에서) 조조는 건안(建安) 15년(AD 210), 그 유명한 <구현령(求賢令)>을 발표합니다.예로부터 천명을 받아 임금이 되었거나 또는 중흥(中興)한 임금 중에서,일찍이 현인(賢人), 군자(君子)를 얻어 그들과 더불어 천하를 다스리지 않은 자가 있었던가! 그러나 현인을 구하려 애를 써도, 그들이 은거해 있는 곳을 나오지 않는다면 만날 수 없으니,뛰어난 사람은 구할 수 없도다. 지금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아니하니,특히 현인을 급히 구해야 할 시기이라.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에 이르길,‘맹공작(孟公綽)은 (청렴한 사람이어서) 조(趙)나 위(魏)나라 같은 큰 나라의 가신이 되기에는 충분하지만,비록 적은 나라일지라도 등(滕)이나 설(薛)나라의 대부(大夫)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니, 그는)될 수 없다’고 하였다. 만약 반드시 청렴한 선비라야 등용할 수 있다면, 제 환공은 어떻게 (관중(管仲)을 등용하여)세상을 제패하였겠는가? 지금 천하에 (강태공(姜太公)처럼) 갈옷을 입었으나 옥 같은 마음을 품고서 위수(渭水)가에서 낚시질하는 자가 없겠는가? 또 (한(漢) 고조(高祖)의 책사 진평(陳平)처럼) 형수를 도적질하고 금을 받았지만,(자신을 알아보고 천거한) 위무지(魏無知)를 만나지 못한 자가 없겠는가?그대들도 나를 돕고자 한다면, 비록 흠결이 있는 자(仄陋(측루))라도,오직 재능만 보고 천거하여, 내가 그들을 얻어 기용할 수 있도록 하라. (自古受命及中興之君,曷嘗不得賢人君子與之共治天下者乎!及其得賢也,曾不出閭巷,豈幸相遇哉?上之人不求之耳。今天下尚未定,此特求賢之急時也。「孟公綽為趙、魏老則優,不可以為滕、薛大夫。」 若必廉士而後可用,則齊桓其何以霸世!今天下得無有被褐懷玉而釣於渭濱者乎?又得無有盜嫂受金而未遇無知者乎?二三子其佐我明揚仄陋,唯才是舉,吾得而用之。) 조조(曹操)가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분명합니다.오직 능력제일주의, 그것만 보겠다는 것입니다.이점을 분명히 하기위해, 그는 2가지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 춘추시대 관중(管仲)의 예인데, 관중(管仲)은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인 포숙(鮑叔)과 장사를 같이 하였지만 항상 이익을 더 많이 챙기는 사취(私取)를 한 부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그러나, 제(齊) 환공(桓公)은 그의 능력 하나만을 보고 그를 써서,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던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 다음의 예는 더 심한 것입니다. 한고조 유방이 한초전(漢楚戰)을 벌이고 있을 때,진평(陳平)이란 인물이 위무지(魏無知)란 사람의 천거를 받아 그를 찾아옵니다.이때 그의 측근인 주발(周鉢)과 관영(灌嬰)은, 진평이 형수와 간통하고 뇌물을 받았다는 결정적 흠결이 있다고 반대하자, 유방은 위무지를 불러 왜 이렇게 흠결있는 사람을 천거했냐고 나무랍니다. 그러자, 위무지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답을 합니다. “신(臣)이 진평을 천거한 것은 그의 능력 때문이었고, 폐하께서 물으시는 것은 그의 행실이옵니다(臣所言者,能也;陛下所問者,行也). 행실이 바르다 한들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한고조는 그의 능력 하나만을 보고 그를 책사로 중임하였고,결과적으로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에서 그의 도움으로 벗어나게 됩니다. 조조(曹操)이전에도 인재를 구하는 칙령들은 한(漢)나라 때 부터 계속 발표되어 왔습니다.한(漢) 무제(武帝)의 <현량조(賢良詔)>등 전해지는 유명한 칙령들이 있습니다만,오직 능력 하나만을 보겠다는 과감한 인재등용정책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과감한 인재등용정책의 결과, 조조(曹操)는 삼국을 통일하여 기초를 닦아 놓게 되는 것입니다.이러한 조조(曹操)란 인물에 대해, 위서(魏書) 무제기(武帝記)에서는 평하길, 평(評)하여 말 한다: 한말(漢末) 천하에 대란이 일어 영웅호걸들이 아울러 봉기하니,원소(袁紹)가 4주(四州)에서 호랑이처럼 군림하니 대적할 자가 없었으나,태조(太祖: 조조)가 계략과 지모를 내어 천하를 독려하였다. 신불해(申不害)와 상앙(商鞅)의 법가(法家)의 가르침을 취하고, 한신(韓信)과 백기(白起)의 용병술을 갖추었고,관직은 재능에 따라 수여하되 각각 그 그릇에 맞게 썼으며, 사사로운 감정을 억제하고 냉정한 계산에 임하매(矯情任算) 옛 허물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마침내 황제의 정무(皇機)를 총괄하는 자리에 오르고, 대업을 이루어낸 것은 그의 밝은 지략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니, 가히 비상(非常)한 인물로 세대를 뛰어넘는 웅걸, 즉 초세지걸(超世之傑)이라 이를 만하다. (評曰:漢末,天下大亂,雄豪並起,而袁紹虎摉四州,強盛莫敵。太祖運籌演謀,鞭撻宇內,攬申、商之法術,該韓、白之奇策,官方授材,各因其器,矯情任算,不念舊惡,終能總禦皇機,克成洪業者,惟其明略最優也。抑可謂非常之人,超世之傑矣.) 라고 평하여, 그의 용인술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요즘 가끔씩 보게 되는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는,능력의 검증은 고사하고,흠집 내기에만 주력한지 오래라,이런 글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됩니다. <하태형/서예평론가/(주)소너지 대표이사/경제학박사(뉴욕 주립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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