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발(王勃)의 이별시 '天涯若比鄰(천애약비린)' |
-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초당사걸(初唐四傑)중 한사람인 왕발 |
하태형 칼럼, 2011-08-04 오후 12:0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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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촉주(蜀州)로 부임해 가는 두소부(杜少府)를 보내며’란 시(詩)입니다. 城闕輔三秦(성궐보삼진) 삼진(三秦)에 둘러싸인 장안성(長安城)에서, 風煙望五津(풍연망오진) 바람과 안개속 촉(蜀)땅 오진(五津)을 바라본다. 與君離別意(여군이별의) 그대와 이별하는 마음이야 괴롭지만, 同是宦游人(동시환유인) 다 같이 벼슬길에 떠돌기 때문 아니겠는가... 海內存知己(해내존지기) 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있다면, 天涯若比鄰(천애약비린) 하늘 끝이라도 이웃 같으리니, 無爲在歧路(무위재기로) 이별의 갈림길에 있다하여, 兒女共沾巾(아녀공점건) 아녀자처럼 수건일랑 적시지 마세나. 이 시(詩)는 왕발(王勃)이 당(唐)의 수도인 장안(長安) 패왕부(沛王府)에서 일할 때 지은 작품으로, 어린 나이에 뜻을 편 그는 앞날이 창창하였고,이런 연유로 이 시의 분위기는 일반적인 송별시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그가 그의 친구인 두소부(杜少府: 소부는 벼슬이름.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음)에게 준 이 시는,먼저 장안(長安)과 촉(蜀)땅의 풍경묘사로 시작됩니다.장안(長安)은, 옛날 진시황이 통치한 진(秦)나라 수도였던 함양(咸陽)이 후대로 오면서 광역화된 곳입니다. 과거, 항우(項羽)는 진(秦)을 멸망시킨 뒤, 땅을 세 개로 쪼갠 후,각기 옹(雍), 새(塞), 적(翟)이라 이름붙이니, 후대에 이를 통칭하여 삼진(三秦)이라 부르게 됩니다. 한편, 오진(五津)이란, 양자강의 다섯 군데 나루터를 지칭하는 것으로,백화진(白華津), 만리진(萬里津), 강수진(江首津), 섭두진(涉頭津), 강남진(江南津)의 다섯 군데를 말하는 것인데,이들 유역은 양자강의 영향을 받아 사시사철 뿌연 안개로 싸여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장안성(長安城)에서 만리길 촉(蜀)땅이 보일리 없겠습니다만,자신이 있는 장안성(長安城)은 삼진(三秦)땅의 호위를 받으며 우뚝 솟아 있는데,친구가 떠나가며 거쳐 가야 할 만 리 길 다섯 군데 나루터는 바람과 안개 속에 묻혀 있겠구나란 상상을 표현 한 구절입니다. 그 다음, 이별이 어쩔 수 없는 벼슬살이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하는 구절뒤,이 시(詩)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기막힌 명구(名句)가 등장합니다.海內存知己(해내존지기) 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있다면,天涯若比鄰(천애약비린) 하늘 끝이라도 이웃 같으리니,먼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 단어가 등장하는데,‘천애(天涯)’와 ‘비린(比鄰)’이란 단어입니다. 먼저, ‘비린(比鄰)’이란 단어를 먼저 설명 드리면,고대 주(周)나라의 생활관습을 기록한 <주례(周禮)>의 <지관(地官).대사도(大司徒)>편에 의하면,‘五家爲比,五比爲閭,四閭爲族,五族爲黨(다섯 집을 비(比)라 하고,다섯 비(比)가 모여 려(閭)가 되며, 4개의 려(閭)가 족(族)이 되며,다섯 족(族)이 당(黨)이 된다)’라고 고대 촌락의 단위를 세분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같은 <주례(周禮)>의 <지관(地官).수인(遂人)>편에 의하면 ‘五家爲鄰,五鄰爲里(다섯 집을 린(隣)이라 하며, 다섯 린(隣)이 리(里)가 된다’라고 하여,촌락의 단위를 다른 이름으로도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따라서 비린(比鄰)이란 단어는, 이와 같은 글자의 본래 의미를 따르자면 ‘가장 가까운 이웃’이란 뜻이 되는데, ‘비(比)’와 ‘린(鄰)’이란 글자를 조합하여,시어(詩語)에 처음 등장시킨 사람은 바로 조조(曹操)의 3남인 조식(曹植)입니다. 그는 자신의 형인 조비(曹丕)가 왕으로 등극한 뒤 황초(黃初) 4년(223),조비(曹丕)의 명에 의해 임성왕(任城王) 조창(曹彰), 백마왕(白馬王) 조표(曹彪),그리고 자기 자신인 진사왕(陳思王) 조식(曹植)이 모여 조회(朝會)하였다가,연회석상에서 자신의 바로 윗형인 조창(曹彰)이 독살당하는 변고를 겪게 됩니다. 생명의 위험을 느낀 두 사람은 황망히 각자 임지(任地)로 뿔뿔이 떠나게 되는데,그때 자신의 배 다른 동생인 조표(曹彪)에게 글을 주어, 슬픔을 억누르는 심정과 비분강개한 심정,그리고 변고는 예측할 수 없으니 옥체(玉體)를 돌볼 것을 권하는 증별시(贈別詩)를 주게 되는데,그 글이 조식(曹植)의 대표작중 하나인 <증백마왕표(贈白馬王彪)>입니다. 이 글 여섯 번째 수(首) 에서 그는,..... 丈夫志四海(장부지사해) 대장부가 사해에 뜻을 두었다면 萬里猶比隣(만리유비린) 만리도 이웃과 같다네. ..... 憂思成疾疢(우사성질진) 근심과 그리움으로 열병나는 것은, 無乃兒女仁(무내아녀인) 바로 아녀자들의 사랑 아니겠나? ..... 이라고, 조표(曹彪)를 위로합니다. 바로 이 글중, ‘丈夫志四海 萬里猶比隣(대장부가 사해에 뜻을 두었다면,만리도 이웃과 같다네.)’라며 슬픔을 억누르며 내뱉는 호언장어(豪言壯語)가 약 500년 뒤,왕발(王勃)에 의해 ‘海內存知己天涯若比鄰(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있다면,하늘 끝이라도 이웃 같으리니)’라는 명구(名句)로 재탄생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천애(天涯)’란 단어를 살펴보겠습니다. 중국 문헌상 오언시(五言詩)로서 최초로 등장하는 송별시(送別詩)는,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흉노에 항복한 장군 이릉(李陵)이,훗날 한(漢)사신으로 파견되어 왔다가 사로잡힌 소무(蘇武)와 헤어지면서 증정한 ‘이릉여소무(李陵與蘇武)’와 이에 대한 답가인 ‘소무여이릉(蘇武與李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詩)들은 후대의 위작(僞作)이란 것이 일반적인 평입니다만,여하튼 흉노에 항복하여 일생을 마친 이릉(李陵)이나, 사신으로 파견되어 왔다가 19년이란 긴 세월동안 사로잡힌 소무(蘇武)란 사람들의 기구한 운명상 만남과 이별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이 바로 이 이릉(李陵)장군을 변호하다가 한(漢) 무제(武帝)의 노여움을 사, 궁형(宮刑)에 처해지는 고사는 유명합니다. <이릉여소무(李陵與蘇武)> 첫째 수 良時不再至(양시부재지) 이같은 좋은 만남 다시 오지 않으리니, 離別在須臾(별리재수유) 잠깐 사이에 다시 이별이라네. ..... 風波一失所(풍파일실소) 풍파에 휩쓸려 제자리 잃어, 各在天一隅(각재천일우) 서로 각각 다른 하늘 끝에서 살아가겠네. ..... 欲因晨風發(욕인신풍발) 새벽바람 일어날 때 출발코자 하니, 送子以賤軀(송자이천구) 천한 몸이 그대를 전송하노라. <소무여이릉(蘇武與李陵)> ..... 良友遠別離(양우원리별) 좋은 벗과 먼 이별을 하게 되니, 各在天一方(각재천일방) 제각기 먼 하늘끝에서 살아가게 되네. 山海隔中州(산해격중주) 산과 바다, 중원을 가로 막아서, 相去悠且長(상거유차장) 서로 떨어짐이 아득하고도 멀기만 하여라. ..... 願君崇令德(원군숭영덕) 원컨대 그대 좋은 덕 높이어, 隨時愛景光(수시애경광) 때를 좆아 시간을 아끼시길 바라네... 여기서 주목할 구절은 ‘各在天一隅(각재천일우)’와 그 답가(答歌)인 ‘各在天一方(각재천일방)’입니다. 지금의 몽고와 장안의 거리를 생각하면, 그 뜻인 ‘각자 다른 하늘 끝에서 살아가겠네’란 표현이 가슴에 와 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벗과의 이별을 뜻하는 최초의 ‘송별시(送別詩)’는 한(漢)나라 말엽, 작가미상의 <고시19수(古詩十九首)>로 이어집니다. <고시19수(古詩十九首)>중 첫 번째인 <行行重行行(행행중행행: ‘가고가고 또 가고’)>을 보면, ..... 相去萬餘里(상거만여리) 서로의 거리가 만 여리나 되니, 各在天一涯(각재천일애) 각기 다른 하늘 끝에 있게 되었네. 道里阻且長(도로저차장) 길이 막혀있고, 또 머니, 會面安可知(회면안가지) 서로 얼굴 다시 볼 날을 어떻게 기약 할 수 있겠나? ..... 라고 하여, ‘各在天一涯(각재천일애)’란 표현으로 재 표현 되고 있습니다. 비슷한 유형의 시(詩)로, 당(唐)나라때 신라의 승려로, 인도까지 불경을 구하러 여행을 하였다가,돈황의 동굴에서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긴 혜초(慧超)스님이,지금의 베트남에서 고국인 신라(新羅)를 그리워하며 남긴 시(詩)가 전해 옵니다. ..... 我國天岸北(아국천안북)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 他邦地角西(타방지각서) 남의 나라는 땅 끝 서쪽. 日南無有雁(일남무유안) 베트남(日南)에는 기러기도 없으니, 誰爲向林飛(수위향비림) 누가 나를 위해 (소식 전하러) 계림(鷄林)으로 날아갈 수 있으리오? 이처럼 ‘天隅(천우)’, ‘천방(天方)’, ‘천애(天涯)’, ‘천안(天岸)’ 모두 같은 뜻의 다른 표현입니다만,왕발(王勃)은 운율을 감안해 ‘천애(天涯)’란 단어를 골라,조식(曹植)의 ‘萬里猶比隣(만리유비린)’을 ‘天涯若比鄰(천애약비린)’이란 표현으로 편곡해 냅니다. 海內存知己(해내존지기) 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있다면,天涯若比鄰(천애약비린) 각자 하늘 끝에 떨어져 살더라도 이웃 같지 않겠는가? 20세 초반 젊은 시인(詩人)의 패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시(詩)에서는 이별시(離別詩)에서 흔히 보이는, 슬프고 실의에 잠긴 멍한 정서대신 진취적이고 호방한 정신이 가득 차 있으며, 뜨거운 우정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바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명구(名句)중 하나인 이유이기도 합니다.인터넷이 발달되어, 글들이 세계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소통되는 지금,‘天涯若比鄰(천애약비린)’이란 표현은 더욱 실감납니다. <하태형/서예평론가/(주)소너지 대표이사/서울대 경영대 졸 경제학 박사(뉴욕 주립大)>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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