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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하면…

화이트보스 2012. 9. 13. 11:35

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하면…

기사입력 2012-09-13 03:00:00 기사수정 2012-09-1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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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자동차가 등장하자 영국의 마차 제조업자들은 정부에 자동차 규제를 요구했다. “도로를 망친다” “말이 놀라 마차 운행이 위험하다”는 주장이 먹혀들어 1865년 적기(赤旗)조례(Red Flag Act)가 탄생했다. 적기조례란 빨간 깃발을 든 사람이 적어도 자동차 55m 전방에서 말을 타거나 걸으면서 통행인에게 경고해야 한다는 법령. 자동차 1대에 3명의 승무원이 있을 것, 마차보다 빠르지 않도록 최고속도를 시속 6.4km로, 시가지에서는 3.2km로 할 것 같은 규제도 덧붙였다. 이런 식의 대응으로 마차는 수명을 좀 연장했지만 결국 다 망했다.

▷2001년 7월 정부는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 등의 셔틀버스 운행을 금지했다. 이 조치 후에도 고객들은 시내버스를 타고 재래시장에 가지 않았다. 대신 승용차를 끌고 대형마트에 갔다. 이제 한꺼번에 많은 상품을 운반할 수 있게 되자 손님당 구입액(객단가·客單價)이 23∼29% 늘어났다. 고객 차량도 1.8∼2배로 늘어나 마트 주변 교통이 크게 혼잡해졌다. 반면 마트 소속 셔틀버스 운전사 3000여 명은 일자리를 잃었다.

▷지식경제부의 용역조사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들이 대형마트를 상대로 월 2회 휴일을 강제했지만 휴일에 전통시장 매출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일부 전통시장은 대형마트 휴일에 매출이 오히려 줄었다.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하면 전통시장을 되살릴 수 있다’는 지자체의 예상이 잘 안 맞는 것 같다. 한편 AC닐슨의 이번 조사와 달리 최근 서울시 조사에선 대형마트 규제 이후 전통시장 상인 36.5%가 매출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혼란스럽다. 용역업체들이 돈을 주는 기관의 의도에 맞추어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형마트가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위협적인 것은 소비자에게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다양한 구색으로 제공하는 까닭이다. 유통혁신을 막으면 손해는 소비자가 본다. 대형마트 휴일 강제를 월 2회에서 4회까지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 14건이나 발의돼 있다. 이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대형마트 규제만으론 전통시장이 살아나기 어렵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의 진입을 늦출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다. 어떤 업종이든 상황 변화에 적응해 자기 변신을 해야 생존 가능하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