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9.13 23:31
'복지·공정'의 시대 정신에 업힌 '대선후보 안철수'는 존재하지만
당선돼도 경제 위기 풀기 어렵고 현실 정치 亂場선 리더십 부족
정치적 벼락출세, 폐해 남길 것… 예측 불가능의 험로가 눈앞에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안철수 원장은 복지와 공정이란 시대정신의 호랑이 등에 업혀 있다. 보수가 이끄는 앙시앙 레짐(구체제)에 대한 불신·불안·불만이 합쳐져 거대한 분노로 폭발하기 직전인 2012년의 한국 사회는 만약 자연인(自然人) 안철수가 없었다면 또 다른 안철수를 만들어 냈을 게 틀림없다. 따라서 그의 출마 여부와 상관없이 대권으로 가는 길의 상수(常數)로서 '안철수는 있다.' 동시에 폭풍 전야(前夜) 같은 지금은 '안철수는 없다'가 본격적으로 성찰되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명제가 서로 형용모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으로서의 안 원장이 거품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안철수는 있고', 통절한 사회현상으로서의 안철수도 엄존하지만 만약 안 원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시민은 머지않아 '안철수는 없다'는 걸 체감하게 될 터이다.
첫째,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시민의 기대를 한몸에 안고 혜성같이 등장한 '대통령 안철수'도 경제 위기는 풀기 어렵다. 노무현과 오바마의 경우가 입증하듯 불꽃처럼 빛난 한순간의 집합적 행복감 뒤에 남는 건 민초(民草)들의 팍팍한 삶이다. 고립된 대통령이 고군분투(孤軍奮鬪)해도 전(全) 지구적 경제공황 속의 한국 경제는 흔들리고 청년들의 일자리는 정체될 것이다. 분배와 복지의 기대치를 한껏 높여놓은 안철수 정부가 감당키 어려운 상황이다. 재벌과 양극화의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기를 원하는 지지층의 기대가 좌절될 때 사회적 긴장은 더욱 증폭된다.
둘째, '소통과 공감의 멘토 안철수'는 피 터지는 권력 투쟁으로 점철된 현실 정치의 난장(亂場)에선 역부족이다. 다수당인 야당 새누리당은 두 눈에 불을 켠 채 정당 기반이 없는 안철수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부딪히고 복합 갈등이 난마처럼 얽힌 현실은 통 큰 타협과 통합의 정치력을 요구한다. 처참한 MB의 실패에서 보듯 홀로 결정하고 지시하는 CEO 리더십에는 낯선 덕목이다. 공직과 정당 경험 부재에다 반(反)정치 성향까지 가진 '대통령 안철수'가 골치 아픈 정당정치를 건너뛰어 대중에게 호소하는 디지털 직접민주주의의 미혹(迷惑) 속에 길을 잃으면 한국 민주주의의 총체적 위기를 부를 수 있다.
셋째, 너무나 오래 뜸을 들인 출마 과정이 증명하듯 안철수 원장은 돌다리를 두드리면서도 건너가길 주저하는 스타일이다. 체제 모순으로 흔들리지만 절대 무기인 핵(核)을 가진 북한의 존재가 함축하는 한반도의 불확실성을 다룰 민주적 결단의 리더십에 못 미친다. 우유부단한 리더십으로 시민의 생명과 국가 안보를 책임지긴 쉽지 않으며, 국가 공동체의 생사(生死)를 가를 결정적 순간에 지도자의 유약함은 재앙을 부른다.
넷째, '대통령 안철수'의 등장은 한탕주의 사회문화와 이어진 정치 만능(萬能)론을 조장할 것이다. 어느 곳이든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성숙한 사회다. 안 원장의 정치적 벼락출세는 현실 정치가 사회의 다른 영역과 유능한 인재(人才)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초토화시키는 한국적 소용돌이 정치의 폐해를 확대재생산한다.
이처럼 경제·정치·외교안보·사회문화의 잣대로 '민주적이면서도 강력한 대통령 안철수'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진단은 기우(杞憂)에 불과할까? 민생고(民生苦)가 하늘을 찌른 노무현과 이명박의 시대에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걸 감안하면 이런 진단이 지나친 예단(豫斷)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정 운영 준비가 안철수 원장보다 훨씬 깊고 넓었던 노무현·이명박 정부조차 통치력 빈곤으로 나라를 어지럽힌 걸 보면 '안철수 정부'의 앞날은 한마디로 예측 불가의 험로(險路)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집권이 불의(不義) 그 자체라고 믿는 이들에겐 '안철수는 없다' 담론이 악담(惡談)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이를 쓴소리 삼아 안 원장이 자신의 약점을 돌아보는 용기와 상상력을 가진다면 역설적으로 '안철수는 있다' 패러다임이 한 단계 격상된다. 평범한 시민 입장에서 안 원장의 진짜 문제는 당선 가능성 여부가 아니라 '집권 이후'다. 구세주가 불가능한 우리 풍토에서 '정치적 메시아 대망론'보다 허망한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