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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金 대화록' 지운 '참 나쁜 사람들'

화이트보스 2013. 7. 30. 14:50

'盧-金 대화록' 지운 '참 나쁜 사람들'

  • 류근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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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7.30 03:04

    다시 '전두환, 노무현' 판인가
    민주화도 두 진영 싸움 못깨… 결국 서로 다른 歷史觀의 충돌
    본색 드러낸 386 NL의 對北觀… 검찰이 이번 사건 실상 밝혀야 '그들만의 80년대' 넘어서

    
	류근일 언론인
    류근일 언론인
    한국 현대사는 아직도 80년대의 악몽에 가위눌려 있다. 요즘 신문은 온통 '전두환, 노무현' 판이니 말이다. 왜 이렇게 됐나? 시대가 바뀌었어도 그때의 관성(慣性)이 여전히 현재를 볼모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제정(帝政) 러시아 황제 차르의 비밀경찰과 볼셰비키 혁명가들은 극(極)과 극이었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투의 역설적 공생 관계에 있었다. 한국에서도 전두환 탄압 체제가 험악해질수록 386 NL(민족해방 계열)이 힘을 얻었고, 386 NL이 힘을 얻을수록 전두환 탄압 체제가 험악해졌다. 극과 극의 역설적 공생이었다.

    이렇게 해서 짜인 전두환-386 NL의 대진표(對陣表)는 우리 현대사가 만들어 낸 최악의 조합(組合)이었다. 수비하는 쪽 주력이 전두환, 공격하는 쪽 주력이 NL.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이데올로기 부문의 싸움이 막장 드라마로 간 꼴이었다. 유신 체제 다음엔 민주회복? 이건 근사했다. 그러나 전두환 다음엔 NL? 이건 아니었다. 1987년의 민주화로 다행히 그런 외통수엔 출구가 생겼다.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80년대 갈등 구조의 한 축(軸), 전두환 현상은 '죽은 권력'이 되었다. 그 일족이 지금 그토록 추상같은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어도 그를 동정하는 여론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축, 386-노무현 현상은 다르다. 노무현 사후 그 추모 세력은 한때 폐족(廢族)임을 자처한 적이 있으나 이내 다시 화려하게 복귀했다. '80년대의 추억'과, 그것이 엮은 '추억의 공유'가 질겼기 때문이다.

    '요즘의 전두환 현상'은 그래서 별 큰 저항 없이 검찰의 칼끝에서 시나브로 사그라질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노무현 현상'은 여야 사이에서, 민주당 안에서, 이념 전선에서 권력투쟁과 노선투쟁을 집요하게 이어갈 것이다. 그들의 종속이론은 한국의 발전상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이 어떻게 달라졌든 그들의 신앙화된 집념만은 "내 배 째라"는 식이다.

    그들은 그러나 자신들만의 우물 안에서 민심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투쟁으로 자살골들을 계속 질러 넣었다. 결과는 지난해 총선, 대선 때 그들의 연전연패였다. 자신들의 아집, 폐쇄성, 도그마, 그리고 대한민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그들의 '미움의 역사관' 탓이었다.

    '요즘의 노무현 현상' 핵심에 있는 것도 표면상으론 그의 'NLL=괴물' 발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에 드러난 그의 야릇한 역사관이다. 그는 김정일이 "남쪽엔 자주성이 없다"고 시비하자 이렇게 말했다. "(수도 한복판에서 미군을) 보냈고… 나갑니다… 2011년 되면… 그래서 자꾸 너희들 뭐 하냐, 이렇게만 보지 마시고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 이렇게 보시면…."

    그는 김정일이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라고 알아주기 바라는 대신,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자주엔 각자 나름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국제협력을 자강(自强)의 자원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이렇게 보시면…." 이게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가의, 국민의 자존(自尊) 아니었을까?

    그의 이상야릇한 역사관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 계승 세력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회의록에 NLL 포기라는 단어는 없다" "그걸 공개한 남재준 국정원장이 더 나쁘다" "원본을 폐기한 것은 이명박이다" 이명박? 그가 대체 무슨 희한한 셈법을 했기에 그걸 없앴단 소린가? 이 억지는 그러나 "노무현 지시로 'e-지원'에서 정상회담 회의록을 삭제했다"는 보도에 초라하게 빛바랬다. 남 아닌 그들 스스로 누워서 침 뱉었다는 의혹이었다.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73년,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가 백악관 내부 대화 녹음테이프를 제출받고 보니, 그 가운데 18분 30초 분량이 엉망으로 엉겨 있었다. 닉슨 대통령의 비서 로즈 매리 우즈는 그것이, 자신이 테이프를 점검했을 때 전화를 받느라고 잠시 왼팔을 뒤로 뻗치다가 녹음 장치 페달을 밟고 있던 오른발에 힘을 주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백악관 전 비서실장이었던 알렉산더 헤이그는 그것이 '참 나쁜 사람들(sinister force)'에 의해 고의로 삭제됐다고 소리쳤다.

    한국 검찰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회의록을 삭제한 '참 나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그것을 지우려 했을까? 여기에 '그들의 80년대'를 청산할 열쇠가 있다.

    [토론] NLL대화록 유출 및 실종사건 진상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