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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 집에 들이닥친 北 보안원, 손찌검까지 하며…

화이트보스 2013. 8. 23. 14:59

'첫날밤' 집에 들이닥친 北 보안원, 손찌검까지 하며…

  • 박진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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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8.23 03:07 | 수정 : 2013.08.23 11:00

    북한에선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탈북자들과 거의 매일 통화하고 함께 밥 먹으면서 전해들은 몇가지 북한 내부 실상(實相) 에피소드들입니다.

    ◇가정집에서 전기밥솥, 전기난로 등 사용을 불시검문해 단속·처벌

    대한민국도 올 여름 전력난을 겪고 있습니다만, 북한은 사정이 훨씬 심각합니다.

    눈이 내리던 2005년 2월 북한 평양시 보통강구역 유경동의 한 가정집에서 있었던 실화(實話)입니다.
    “죄송합니다. 대학생인 딸이 공부하면서 홀아버지 공대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앞으론 두 번 다시 쓰지 않겠으니 사정 좀 봐주십시오”
    60대의 김모씨가 새파랗게 젊은 전기검열원들에게 눈물로 통사정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대학생이던 김씨의 딸이 시험공부를 하다 새벽에 전기가 들어온 틈을 타 전기밥솥에 밥을 안쳤습니다. 10분쯤 지났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인민반장(우리의 통·반장에 해당)은 각종 검열 때마다 “반장이에요”라고 말하며 미리 단속이 나왔음을 알려줬는데, 이날은 그냥 “나야”라고 하더랍니다.
    김씨의 딸은 아무런 의심 없이 문을 열었는데, 인민반장 뒤에는 검열원 2명이 서있었고, 아버지 김씨는 외국산 크라운 담배 두 보루를 주면서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처벌을 면했다고 합니다.
    
	[클릭! 취재 인사이드] '첫날밤' 집에 들이닥친 北 보안원, 손찌검까지 하며…

    단속 나온 검열원들은 북한에서 전기밥솥, 전기장판, 전기난로 등 전기(電氣) 제품의 사용을 단속·처벌하는 ‘전기 검열대’ 대원들입니다. ‘전기 검열대’는 인민보안성 주관하에 보위부·검찰 합동 조직으로 도박·사기·매춘에서부터 고리대·미신행위·서구 및 한류(韓流) 추종 등 풍속 범죄까지 단속하는 ‘비(非)사회주의 그루빠’의 한 조직입니다.

    ‘비사회주의 그루빠’는 간부들의 뇌물수수·월권행위·인사청탁 같은 비리부터 일반 주민들의 과도한 전기 사용과 불법 체류 단속까지 단속하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도 평양에 사는 게 꿈”…배급 특혜에다 우월한 選民 의식

    평양에서는 전기를 몰래 쓰다 적발되면 시외로 추방됩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수도(首都) 평양에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들 합니다. 평양 시민은 다른 시·도 주민에 비해 전기·식량 등 배급 등에서 혜택을 많이 받고 ‘수도 시민’이라는 우월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북에서 평양에 살았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한답니다.
    
	평양거리 모습/ 조선일보DB
    평양거리 모습/ 조선일보DB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다른 시도에서 평양에 가려면 통행증이 있어야 하는데, 통행증을 신청하면 보통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평양 주변 진입로에서는 군 초소만 평균 4개씩 거쳐야 하고 짐 수색, 몸 수색을 받아야 합니다.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은 전기 사정 때문에 기차가 가다서다를 반복해 2~3일 이상 걸려야 평양에 도착할수 있습니다.

    평양 시민 여부는 결혼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평양 사람이 지방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다, 평양 사람들이 지방에서 사는 것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선지 평양 사람과 지방 사람의 결혼이 성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평안남도 숙천군에서 살았던 탈북자 안모씨는 “평양 사람인 남자친구와 7년 동안 연애를 하고 애까지 가졌지만 남자친구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로 끝내 헤어졌다”며 “지방 사람이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못하고 아빠 없이 자란 아이가 불쌍하다”고 말했습니다.

    ◇평양도 하루 평균 2시간만 전기 공급…엘리베이터 중단돼 아파트 40층까지 걸어다녀

    북한 주민들이 꿈에 그리는 평양이지만, 열악한 전기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평양시는 하루 평균 2시간 정도 전기가 들어옵니다. 지방은 30분~1시간 정도만 전기가 공급됩니다. 하지만 김일성·김정일 생일 등 북한 최대 명절엔 평양시에 24시간 전기가 공급됩니다. 이런 날이면 모든 가정에서 전기 제품을 일제히 가동해 아파트 전체가 정전(停電)될 때가 많습니다.

    전기가 공급돼도 소비 전력량이 많은 전기밥솥, 전기장판 등은 사용이 금지되며, 이를 확인하려고 검열대가 단속하러 다닙니다. 전기검열대원들에게 적발됐던 김씨의 딸은 “시장에서는 전기밥솥과 장판을 공개적으로 팔게 하면서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것은 금지하는 게 북한 사회”라고 했습니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다보니 고층 아파트 주민들은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운행하지 않아 고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립니다.
    40층 아파트에 살았던 탈북자 A씨는 “집까지 오르내리는 데만 1시간 이상 걸려 70세 어머니는 평소엔 바깥 출입을 못하고 명절 때만 외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탈북자 B씨는 “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어머니를 25층 집까지 모시고 가는데 엘리베이터가 운행하지 않아 업고 올라가다 끝내 15층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맞았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아 고층 집 베란다에서 양동이에 석탄이나 생필품 등을 담아 밧줄로 끌어올리는 광경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김일성 동상에만 전기가 들어온 모습/ 뉴포커스 제공
    김일성 동상에만 전기가 들어온 모습/ 뉴포커스 제공
    반면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이나, 김일성·김정일 동상 등에는 24시간 불이 켜져 있고 고위 간부들의 주택은 정전이라는 것을 모른다고 합니다.

    북한의 연간 발전량은 수력 125억㎾h, 화력 110억㎾h 등 총 235억㎾h로 한국 발전량 4479억㎾h의 5.2%에 불과합니다. 북한에는 크고 작은 수력발전소 49개와 화력발전소 9개가 있지만 개·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송·배전 시설도 낡아 발전을 하더라도 손실량이 많다고 합니다.

    전기 부족 때문에 생활용수를 얻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아파트의 경우 전기 모터를 돌려 물을 고층(高層)에 보내줘야 하는데 이게 여의치 않다는 것이죠.
    탈북자 C씨는 “25층 아파트의 10층 정도까지만 물이 나온다”며 “아랫집에 부탁해 호스로 복도에서 큰 물통에 물을 받아 나르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물 나오는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직장인들은 물을 틀어놓고 출근했다가 물이 넘쳐 아랫집에 물이 새서 싸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옷차림, 머리, 가방, 음식까지 무차별 단속…지구상 最惡의 人權 실종 지역

    북한에는 전기 검열대 외에 녹화물 검열대, 도로 규찰대, 학생 규찰대, 시장 검열대, 숙박 검열대 등 각종 검열대들이 각 시·군·구역(우리나라의 ‘구’에 해당)마다 깔려 있습니다.

    
	북한의 한 장마당 풍경. 남한 드라마 CD는 이러한 장마당 등에서 팔려나간다./출처=조선일보 DB
    북한의 한 장마당 풍경. 남한 드라마 CD는 이러한 장마당 등에서 팔려나간다./출처=조선일보 DB

    ‘녹화물 검열대’는 영장도 없이 아무 집이나 들어가 DVD, 비디오테이프 등 영상 녹화물을 수색하는 것입니다. 한 탈북자는 “한국 영상물은 두말할 것 없고 합법적으로 승인된 영상이 들어있는 테이프도 보안소에서 찍은 도장이 없으면 회수당한다”고 했습니다.

    학생 규찰대나 도로 규찰대는 학생과 주민들의 옷차림이나 헤어 스타일, 어투 등 ‘한류풍(韓流風)’을 단속·통제합니다. 가방 수색도 수시로 합니다. 단속에 걸리면 청년동맹, 여맹 등 자신이 속한 분야의 조직에 끌려가 비판서를 쓰거나 강제노동을 하며 심한 경우엔 강제 구금시설인 교화소에까지 끌려갑니다.

    주로 보안원(우리의 경찰에 해당)들로 이뤄져 있는 ‘시장 검열대’는 시장에서 불법 물건을 팔거나 환전해 주는 사람들을 단속하는데, 적발된 주민들은 물건과 돈을 몰수당하고 지역 보안소에 끌려가 취조를 당합니다.

    탈북자 D씨는 “1990년대 후반에는 시장 검열대가 총까지 소지하고 나와서 군량미 한 가마니를 훔쳤다고 시장에서 농민을 쏴죽인 적도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다른 탈북자 E씨는 “시장에서 ‘인조고기밥’을 팔다가 단속에 걸렸는데 아들뻘 되는 보안원이 ‘이년, 저년’ 하면서 음식물을 모두 길에 버렸다”며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음식물을 발로 밟고 보안소에 끌고가 밤새 취조를 한 다음날에야 풀어줬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인기있는 인조고기 밥/ 조선일보DB
    북한에서 인기있는 인조고기 밥/ 조선일보DB
    인조고기는 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로 만드는데 맛이 쫄깃쫄깃합니다. 순대처럼 인조고기 사이에 밥을 넣은 뒤 양념을 바른 것이죠. 위생상 문제는 있지만 상1개당 북한 돈 200원(한화 30원) 정도 하는데, 10개 이상 먹으면 포만감을 느낄 수 있어 북한 주민들이 즐겨먹는 식품인데도 마음대로 단속하는 것이지요.

    숙박 검열은 타지역 사람이 그 관할 인민반에 신고하지 않고 체류하는 것을 막기위해 벌이는 단속인데, 일반 가정집을 대상으로 주로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 신분증과 여행 증명서 등을 확인합니다.

    탈북자 한모씨는 “결혼 첫날 밤 보안원들이 집에 들이닥쳐 결혼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혼 부부를 보안소에 끌고 갔다”며 “남편이 항의하다 손찌검까지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북한에선 이런 각종 검열대뿐 아니라 학교와 직장 등에도 보위부에서 숨겨둔 ‘프락치’들이 있어서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틈날 때마다 한국과 미국은 인권(人權)이 제대로 보장돼 있지 않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막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를 밤새 취조하고, 옷도 마음대로 못 입게 하고, 말도 편하게 할 수 없는 ‘검열 천국’은 지금 지구상에 북한 하나 뿐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