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2.02 11:43 | 수정 : 2014.02.02 12:46
-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한국민속촌에서는 공연이 열린다. 말의 해를 맞아 마상무예 공연은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 중 하나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월 10일 오후 3시. 해가 높이 떠도 좀처럼 수은주가 올라가지 않는 춥고 궂은 날씨 속에서도 경기도 용인 한국민속촌 민속마을 한복판에 있는 마상무예 공연장에는 관람객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리는 공연장에는 공연을 준비하는 말들이 굽을 울리는 가운데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높아졌다.
마상무예를 처음 보는 기자 옆에서 권세라 한국민속촌 마케팅팀 주임은 “말의 해이기 때문에 특별히 마상무예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많다”며 관람객의 열기를 설명했다. 20분간의 마상무예 공연이 끝나고 흩어지는 사람 중에는 “민속촌에 볼거리 진짜 많다”며 감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막 시작한 연인인 듯 팔짱을 꼭 낀 20대 남녀 커플이었다.
기자는 20년도 전에 가족들과 함께 한국민속촌을 찾은 적이 있다. 당시 한국민속촌에서 볼거리라곤 전통 가옥과 조그만 기념품 가게가 전부였다. 명절을 앞두고 제기차기며 투호놀이판이 펼쳐졌지만, 규모며 진행 과정이 경복궁이나 박물관 앞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민속촌은 변화했다. 가장 큰 변화는 한국민속촌을 홍보하기 시작한 트위터의 등장이다.
한국민속촌의 트위터는 SNS 우수 활용 사례로 매번 언급된다. ‘아씨’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기체후일향만강 하셨사옵니까. 아침 문안 인사 드리겠나이다”는 말로 매일 아침 민속촌의 행사와 근황을 팔로어들에게 알린다. 작년 5월에는 트위터를 통해 민속촌에서 기르기로 한 진돗개 이름을 공모하기도 했다. 네티즌들이 내놓은 후보는 ‘이리오시개’ ‘팥들었슈’ ‘우리문화 푸르개푸르개’같이 재기 넘치는 이름들이었다. 결국 진돗개의 이름은 ‘풍월이’로 낙점돼, 현재 건설 중인 진도 가옥 앞에 집을 짓고 ‘근무 중’이다.
요즘 민속촌에는 20~40대 젊은 관람객이 한층 늘었다. 민속촌에서 만난 김성규(60) 한국민속촌 사장은 기자에게 “지난 10년간 관람객이 줄어들고 있었지만 최근 2년간은 소폭 증가하거나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며 “대신 20~40대 젊은 관람객이 훨씬 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국민속촌의 관람객 이용만족도 조사를 보면 2012년 20~40대 관람객은 63%를 차지했지만, 2013년에는 81%까지 증가했다. 김 사장은 “무엇보다 한국민속촌에 볼거리, 즐길거리가 훨씬 많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누구나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젊은 민속촌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민속촌의 변화는 작년 4월 있었던 ‘웰컴투조선’ 행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캐릭터들이 민속촌 곳곳을 돌아다니며 관람객과 함께 소통하던 ‘웰컴투조선’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캐릭터는 거지였다. 김은정 한국민속촌 마케팅팀 팀장은 “아르바이트 교육생을 거지 캐릭터로 투입했는데, 지나가던 관람객에게 구걸하기도 하고 양반집 문 앞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는 통에 관람객의 흥을 돋웠다”고 말했다.
거지는 외국인 관람객에게 “한 푼만 줍쇼”라며 구걸을 해 얻은 10달러 지폐를 인사하는 어린이에게 용돈 삼아 건네기도 했고, 장돌뱅이는 관람객 사이를 누비며 물건을 파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김 팀장은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서 민속촌이 가진 자산들을 충분히 활용하려는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 한국민속촌의 소 ‘복순이’가 일하는 논은 겨울이면 얼음썰매장으로 변한다. 어린 아이들과 부모가 모두 좋아하는 놀이터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옛 모습 그대로의 한복을 입고 두레박을 지고 지나가는 민속촌 ‘직원’들이 오가는 가운데, 한국민속촌의 변화를 설명하던 김성규 사장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10~20년 전 민속촌은 지금 모습과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민속촌은 1974년 10월 3일 문을 열었다. 올해가 40주년인 셈이다.
흔히 국가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한국민속촌은 전 한국고미술협회 회장인 김정웅씨가 세운 사기업이다. 개촌 1년 만에 김씨가 문화재보호법으로 구속된 후 조원관광진흥 정영삼 회장이 한국민속촌을 인수했다. 이후 40년간 변화의 폭이 적던 한국민속촌에 일대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2년 전 김성규 사장이 부임하고 나서부터이다.
김성규 사장은 “사실 민속촌의 경영을 맡기 전에는 직접 와볼 일이 별로 없었다”고 솔직히 말했다. “마지막으로 온 것이 1994년이니까 벌써 20년 전이지요. 20년 만에 민속촌에 와봤는데 기억했던 모습과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자료를 보니 최근 10년간 입장객 수가 줄고 있더군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패스트푸드 기업 KFC나 버거킹, 의류 업체인 폴로나 빈폴 등을 거치며 경영 경험을 쌓아온 김 사장은 조직을 개편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원래 민속촌은 옛 유물을 담당하는 학예사들로만 짜여 있는 느슨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었어요. 여기에 마케팅팀과 전통문화 기획팀을 신설해 본격적으로 홍보, 마케팅에 힘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민속촌 마케팅팀 대부분은 20~30대 젊은 직원들이다. 김 사장은 “민속촌의 미래는 결국 젊은층에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민속촌을 문화재 보호 구역이 아니라 ‘전통문화 테마파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0~30대 젊은 관람객이 좋은 인상을 받고 돌아가면,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가정을 꾸리고 나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올 겁니다. 그러려면 민속촌은 누구나 와서 즐겁게 놀다가 갈 수 있는 테마파크가 돼야 해요. 전통 가옥을 보존해 놓은 정적인 공간 말고, 직접 들어와 참여하고 즐기는 동적인 공간 말입니다.”
40주년을 맞아 새롭게 만든 한국민속촌 브랜드와 슬로건에도 변화의 의지가 담겨 있다. ‘즐거운 전통과의 행복한 공존’은 과거와 현재, 전통과 생활이 어우러지는 한국민속촌과 우리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이고, ‘Re-tradition’은 전통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전통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가꿔 나가자는 의지다. 김 사장은 그래서 한국민속촌을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 세 가지를 고루 갖춘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민속촌 자체가 볼거리로 가득 찬 곳이다. 99칸에 달하는 양반가는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남부 지방 민가, 북부 지방 민가 등 일반적인 공간은 물론이거니와 제주도 민가, 진도 가옥 등 각 지방의 특색 있는 전통 가옥 형태도 재현돼 있다. 또 다른 볼거리는 하루에 두 번 있는 전통 공연들이다.
기자가 한국민속촌을 찾은 날은, 하루 종일 영하권의 추위에 외출하는 사람도 드물던 날이었다. 그런데도 민속마을 한복판에 있는 공연장에서는 농악 공연과 줄타기, 마상무예 공연이 정해진 시간에 열렸다. 권세라 한국민속촌 마케팅팀 주임은 “관람객이 많은 날에는, 민속마을에서 이런저런 구경을 하다가도 공연이 시작한다는 안내멘트가 들리면 사람으로 가득 차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최근에는 ‘테마파크’로 발돋움하려는 경영 방침에 따라 민속마을 남쪽에 놀이마을이라는 것이 새로 생겼다. 놀이마을의 대표 시설은 ‘귀신전’이다. 여름이면 가끔 열리던 귀신 전시관을 상설 개설한 것이다. 김성규 사장은 “귀신전을 열기 위해 기획팀원들이 전국 각지의 설화, 민화를 수개월간 공부했다”며 “우리나라에만 있는 귀신들을 설명하고 보여주는데, 어린 아이들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이 귀신전을 관람하며 가장 관심을 보이는 귀신은 측간 귀신. 재래식 화장실 아래에서 튀어나오는 측간 귀신에 놀라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사이에서 히잡을 쓴 무슬림 관광객이 신기한 듯 영어 안내문을 읽어내려가는 모습도 보였다.
예전과 현재 한국민속촌의 가장 큰 차이라면 즐길거리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김성규 사장은 “한국민속촌은 과거와 역사를 박제해서 보존하는 야외박물관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통의 놀이터’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전통이란 낡거나 고루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없는 것을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민속촌에 오는 관람객 모두가 느꼈으면 했습니다.”
‘웰컴투조선’이나 ‘500 얼음땡’은 그런 목적에서 생겨난 시즌 행사다. 김 사장은 “한국민속촌에서는 사극 촬영을 많이 하는데, 보통 관람객은 멀찌감치 그 장면을 구경하게 된다”며 “전통 그대로의 민속촌 환경을 활용하는 행사가 열렸으면 했다”고 말했다. 김은정 팀장은 “사장님도 함께하는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수시로 갖는데, 그중에 누가 ‘민속촌에서 갑자기 거지가 구걸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냈다”며 “‘500 얼음땡’이나 우리 부모세대가 즐기던 옛 놀이를 함께 즐기는 ‘추억의 그때 그 놀이’ 행사도 모두 젊은 사람 입장에서 있었으면 하는 행사를 실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500 얼음땡’ 행사에 참여한 사람 중 90%는 20대였다.
요즘 테마파크며 박물관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체험 행사도 한국민속촌에서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김 사장은 민속촌 직원들을 “여기 사시는 어르신”이라고 표현하지만 민속촌 내부 건물에는 난방시설이 깔리지 않아 숙식이 어렵다. 대신 직원들은 출퇴근하면서 각자의 일터에서 각자 맡은 일을 한다. 민속마을 남쪽, 충현서원과 남부 지방 민가를 가르는 강에서는 매일같이 나룻배가 다닌다. 나룻배는 민속촌 직원들이 일하다 빤 듯한 빨랫감을 잔뜩 싣고 이쪽저쪽을 오가는데, 권세라 주임은 “‘나룻배 어르신’ 역시 이곳 생활이 수십 년인 분”이라고 말했다.
‘나룻배 어르신’처럼 민속촌 곳곳에서는 민속촌 터줏대감 격인 60~80대 노인 18명이 전통문화 재현을 책임지고 있다. 양조장의 이정동 장인은 올해 72살, 벌써 40년째 민속촌에서 파는 동동주를 책임지고 있다. 이정동 장인이 만드는 동동주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70대인 농악단장 정인삼 장인 역시 40년 동안 매일 풍물 공연을 펼쳐왔다. 유기공방에는 쌍둥이 형제 김상구·상국 장인이 놋쇠를 두들긴다.
한국민속촌에서 작년 12월 28일부터 올 설연휴가 끝나는 2월 2일까지 열리는 ‘설맞이 복잔치’ 역시 갖가지 체험 행사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지신밟기나 달집태우기 등의 행사는 민속촌 곳곳에서 열린다. 권세라 주임은 “젊은 사람도 즐겨 찾는 곳이 토정비결을 보는 민가인데, 가끔은 일하던 민속촌 직원들도 ‘올해 운수는 어떠려나’라면서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면적만 99만㎡(약 30만평)에 이르는 드넓은 직장을 가진 한국민속촌 직원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은 민속촌 가장 안쪽에 있는 장터다. 김성규 사장이 “꼭 음식 한번 맛보고 가라”고 강조한 장터 음식들은 보통의 테마파크와는 다른 질을 자랑한다. 장터를 총괄하는 이순복 조리장은 발효 음식 전문가다. 가장 먼저 나온 음식은 무형문화재인 민속촌의 동동주. 민속촌의 동동주는 탁주가 아니다. 맑은 약주에 가까운 색이 이채로운 동동주는 6개월간 발효를 거친 것이라고 한다.
이순복 조리장은 “원래 술을 발효시키면 가벼운 밥알이 맑은 술 위로 떠오르는데, 이걸 건져낸 것이 동동주”라면서 “부근의 어르신 중에는 동동주만 마시러 민속촌에 입장하시는 분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1년에 7만그릇 이상 팔리는 민속촌의 자랑거리 장국밥은 직접 말린 시래기를 넣어 만들었다. 이 조리장은 “민속촌 음식 중에는 조미료가 들어가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남녀노소, 외국인까지 오는 곳인 만큼 정말 전통적인 맛을 그대로 살려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순복 조리장이 5년 전 민속촌 장터를 책임지게 된 것은, 민속촌의 변화와 맞물려 진행된 일이다. 이 조리장은 부임하자마자 수십 개에 달하던 메뉴를 다 없애고 21개만 남겼다. “요즘 한식은 퓨전이라는 말로 쉽게 뚝딱 만드는 것이 많은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음식을 정성으로 내야 한다는 생각에 할 수 있는 21개 메뉴만 남겼어요.”
그중에는 외국인과 어린아이를 겨냥한 메뉴도 있다. 이 조리장이 직접 디자인한 화덕에서는 꼬치구이를 만들어 파는데, 꼬치구이에 들어가는 고기를 숙성하는 데만 며칠이 걸린다. “밥은 이천쌀, 콩가루를 만드는 콩은 강원도 산지에서 직접 가져오고요. 김치는 뒷산에 토굴 세 개를 만들어 겨우내 익힙니다.”
장터라고 해서 먹는 일에만 집중할 수 없다. 장터 한복판에서는 매일 두 번 떡메치기를 한다. 관람객도 더러 참여해 만든 떡에 콩가루를 묻혀 따끈따끈한 인절미를 내놓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랑할 만한 것이 순대인데, 순대만 만드는 장인도 계세요. 돼지 내장을 직접 따서 부추며 각종 양념을 넣어 내놓는 것입니다.”
순대뿐 아니라 민속촌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엿이나 동동주도 매일 장인들이 직접 만들어낸다. 권세라 주임은 “가끔 직원들이 야근하다가 순대가 먹고 싶다고 가위바위보 내기를 해서 장터로 올라오면, 이미 다 팔리고 없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이순복 조리장의 얘기를 어깨너머로 듣고 있던 관람객 한 명은 “내가 순대를 먹으려고 용인까지 왔는데, 오늘 다 팔렸다고 해서 허탈하다”며 거들기도 했다. 이 조리장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교관 중에는 부근을 찾을 때마다 한국민속촌에 와 음식을 먹고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한국민속촌 직원들은 한결같이 “지금 민속촌은 보면 볼수록 새로운 곳”이라고 말했다. “한쪽에는 네티즌들이 이름을 지어준 소 ‘복순이’가 직접 밭을 매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그 밭이 얼음썰매장으로 변신하죠. 옹기체험장에는 어린 아이들이 직접 만든 컵과 그릇이 매일 구워지고, 잘 찾아보면 노새가 매여 있는 민가도 있어요. 내삼문 근처에서는 해마다 장승 결혼식도 열려요. 사계절 모습도 다 달라 직원들도 가끔 풍경에 감탄합니다.” 권세라 주임은 “눈이 내리면 사장님까지 싸리비를 들고 나와 눈을 치우는 이곳은 어느 직장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낼 수 있는 곳 같다”며 자랑했다.
민속촌이 낡고 고루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젊고 창의적인 테마파크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은 직원 채용 지원 열기에서도 알 수 있다. 2012년 민속촌은 처음으로 공채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200명이던 공채 1기 지원자는 작년 3기 모집 시 820명으로 늘어났다. 올해 10월 3일, 한국민속촌 개관 40주년을 맞아 더욱 활발한 변화를 꾀할 예정이다. 김성규 사장은 “민속촌이 지향하는 ‘전통문화 테마파크’라는 공간은 세계 어디를 가도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라며 “장기적으로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알기 위해서 꼭 한번 찾아가야 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