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국제시장≫을 보며 그냥 마구 울었다

화이트보스 2014. 12. 29. 11:09

≪국제시장≫을 보며 그냥 마구 울었다

글 | 김성동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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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제시장 중 흥남 철수 장면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 친구들과 이브날은 함께해야 한다는 아이들에게 ‘쌩까인’ 우리 50대 초반의 부부는 극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버림받은(?) 우리 부부는 이미 서글픔은 충분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누가 건드려만 주면 마구 울음을 울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데, 울었다. 정말 울었다. 서글픔에서가 아니라 그냥 마구 울었다.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에서, 13살 터울의 큰형에 대한 미안함에서 우리는 아니, 나는 마구 울었다. 곁에서 울던 아내도 아마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장녀인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울었을 것이다.
 
 내 아내는 장녀이기 때문에 동생들에게 많이 양보하며 자란 사람이었고 6남매의 막내인 나는 형들과 누나들로부터 많은 것을 양보 받으며 살아온 처지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울음은 ‘슬픈 울음’이 아니라 ‘개운한 울음’이었다.

 크리스 마스 이브날 용산 CGV에서 만난 영화 ≪국제시장≫은 우리 부부를 그렇게 울렸다. 영화의 줄거리야 이미 수없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배우 김윤진(영자 역)의 어색한 사투리를 흠잡고 싶지 않다. 그 흠은 정말 어디까지나 전체 흐름상 옥에 티처럼 사소한 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흥남 철수 중 벌어지는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 부자간 묵직한 별리의 고통이, 가족을 위해서 광부가 되어 독일로 떠나야 했고 월남으로 가야 했던 가장(家長) 덕수의 선택이 너무 깊게 가슴을 적셔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온국민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에서 덕수가 흥남 철수 중 헤어졌던 여동생을 만나는 장면은 슬픔을 넘어 먹먹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집 거실에서 온가족이 모여 웃고 떠드는 가운데 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덕수는 아버지가 흥남 철수 중 걸쳐 주었던 아버지의 겉옷을 붙잡고 통곡한다. 헤어질 때 아버지가 자신을 대신해서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잘 보살피라는 그 말을 잘 지켰다고 독백하며 흐느낀다. 가장으로서 힘들었다는 고백도 함께.

 두 시간여의 영화가 끝나고 우리 부부는 비척비척 극장을 나왔다. 아내가 내게 말했다.
 “가장으로서 그 동안 힘들었어?”
 나는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내가 또 혼잣말 하듯 말했다.
 “우리는 부모 세대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살아온 것 같아.”
 그 혼잣말에 내가 대답했다. 우리 부부는 아들만 둘을 두었다.
 “그래서 우리 아들들한테 그 빚 갚고 있는 중이잖아. 이 녀석들 우리한테 고마워하라고 다음에 강제로 끌고 와서 이 영화 또 볼까?”
 "......"
 내가 또 말했다.
 “그 애들 또래 때 우리가 지금 느끼는 이런 고마움을 느꼈나? 이 다음에 걔들이 우리 나이가 됐을 때 그때 가서나 미안해하라고 그래야겠지?  돌아가신 내 부모님처럼 우리는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그 영화의 여운을 느끼며 우리는 오랫동안 걸었다. 아마 우리 앞에 손잡고 걸어가고 있는 우리 또래의 부부도 우리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 영화는 나와 우리 이웃의 삶이 녹아든 대한민국 현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