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군, 전북 무장에서 영광으로 진격…항쟁세력 확장
1만여명 영광관아 점령하고 조정에 폐정요구 郡誌에 동학농민운동·근대사 등 체계적 정리 타지역 비해 연구 활발하나 유적관리는 소홀 정택근·김범진씨등 노력으로 동학연구 성과 커
전남 영광지역은 동학농민투쟁이 최초로 발발한 전북 무장에 인접해 있던 관계로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전봉준 등은 1894년 음력 3월 무장대접주 손화중과 함께 무장에서 전면적인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이후 이들은 음력 4월 초순 황토현에서 전라감영군을 격파한 다음 전라도 서해안 지역으로 이동해 배후의 관군세력을 물리치고 동조세력을 끌어 모았다.
동학교도와 농민군들은 정읍과 흥덕,고창, 무장, 영광, 함평을 차례로 점령했다. 1894년 음력 4월 12일 동학농민군은 전북 무장에서 영광으로 진출했다. 이 때 동학농민군의 수는 1만여 명에 달했다. 동학농민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영광군수 민영수(閔泳壽)는 법성포 조창에서 세곡을 배에 싣고 칠산 앞바다로 도망 가버렸다. 때문에 동학농민군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영광관아를 점령했다.
농민군들은 영광관아를 점령하고 나흘을 머물렀다. 낮에는 창과 검을 사용하는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밤에는 동학경전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또 한편으로는 관군의 공격에 대비해 짚과 진흙으로 성을 보수하기도 했다. 영광관아에 머물면서 법성포 조창에 보관 중이던 쌀을 실어오기도 했다. 농민군들은 영광 인근 각 지역으로 통문을 보내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영광으로 와 합류할 것을 알렸다. 당시 영광관아에 모여있던 동학혁명군의 수는 1만2천명에서 1만4천명 사이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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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군들은 이 때 자신들을 토벌하러 온 초토사에게 자신들의 봉기목적을 알리고 대원군의 감국(監國)을 요구했다. 농민군은 4월 16일 창의소(倡義所)명의로 완영유진소(完營留陣所)에 통문을 보내고 자신들이 일어선 것은 탐관오리의 축출에 있는 만큼 군사를 물릴 것을 요구했다. 또한 대원군의 복귀를 주장했다. 농민군들은 영광에 머물면서 내부의 전열을 다지는한편 외부적으로는 자신들의 대의명분과 봉기의 당위성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농민군은 경군(京軍)이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절반은 영광에 남고 절반은 함평으로 향했다. 농민군은 당초 나주를 공격하려 했으나 수성군들의 대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전해듣고 함평으로 발길을 돌렸다. 4월 16일 수성통장 정만기(鄭萬基)를 처형한 뒤 오전에 영광을 출발한 농민군 6천~7천여명은 이날 오후 함평에 도착해 함평관아를 점령하고 집강소를 설치했다.
동학농민군들이 영광에서 함평으로 이동한 것은 영광과 함평의 동학도들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학농민군들은 일단 함평을 점령해야 나주 공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영광과 함평의 동학농민군은 무장의 동학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동학농민군의 선봉역할을 맡을 때가 많았다. 이들의 긴밀한 관계는 동학란기록 상편 순문선봉진등록에 실린 함평의 동학 거괴(巨魁) 이화진(李化辰)과 함께 체포된 조병묵 · 서우순 · 김문조 · 이응모 · 박준상과 김봉규 등 6명의 농민군에 대한 문초기록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영광관아는 현 영광군청 자리에 있었다. 그렇지만 영광군청 건물이나 입구 어느 곳에도 갑오년 동학혁명의 내용을 알려주는 안내문은 없다. 반면에 영광군이나 지역사학자들이 동학의 역사를 기록하고 발굴하려는 노력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하다. 동학농민혁명에 관한한 장흥,무안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행정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는 곳이 영광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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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은 2013년 5권으로 된 영광군지(靈光郡誌)를 발간했다. 군지는 5권으로 이뤄졌는데 1권의 제목은 ‘삶의 터전과 역사’로 영광의 자연과 역사를 다루고 있다. 2권은 ‘삶의 자취와 얼’로 영광의 혼을 지켜온 문화유산과 종교에 관한 것이다. 3권은 ‘성장 발전하는 영광’으로 영광스러운 영광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것이다.
4권은 ‘성씨와 지명 그리고 인물’편이다. 영광산천에서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5권은 ‘영광군 기록 문화유산’으로 기록과 사진으로 보는 영광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영광군지 편찬에는 박맹수 원광대교수와 조원래 순천대교수, 김덕진 광주대교수, 이영문 목포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의 연구 성과와 노력에 의해 훌륭한 영광군지가 발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광 출신으로 꾸준하게 영광역사를 발굴·정리하고 있는 정택근씨의 숨은 공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정씨는 2014년 겨울 현재 전남대에서 한국사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영광군지편찬위원회 수석연구원을 맡아 온갖 편찬실무업무를 진행했다.
지난 2014년 11월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도 정씨는 자료 속에 파묻혀 새로운 영광군지 발간을 위한 원고작성에 여념이 없었다. 정씨와의 짧은 인터뷰 가운데에서도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고 영광지역 동학역사를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정형택 영광문화원장도 배려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